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병한 Jun 26. 2019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넷플릭스 오리지널 : 블랙미러

* 이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미러 시즌 5: 레이철, 잭, 애슐리 투>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 1박에 82달러
나 홀로 운전자가 카풀차로 이용하기 : 러시아워에는 8달러
인도인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 : 6250달러
미국으로 이민하는 권리 : 50만 달러
멸종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권리 : 15만 달러
의사의 휴대전화 번호 : 연간 1500달러 이상
대기에 탄소를 배출할 권리 : 1톤에 13유로
자녀의 명문대 입학허가 : 가격미정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애슐리는 아이돌 스타다. 신나는 음악과 독특한 의상으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애슐리는 변화를 시도하려 하지만 매니저인 고모는 이 반대하고 통제한다. 애슐리가 거부하자 심지어 환각제를 먹여 말을 듣도록 만든다. 하지만 애슐리는 약을 먹지 않고 모아둔다.


레이첼은 애슐리의 팬이다. 최근에 이사를 온 탓에 레이첼에게는 친구가 없다. TV에 나오는 애슐리을 보고, 애슐리의 음악을 듣는 것만이 레이첼의 취미다. 레이첼의 언니인 잭은 레이첼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레이첼은 여느 날처럼 TV를 보던 중 '애슐리 투'의 광고를 접한다.


애슐리 투는 애슐리의 인격을 본떠 만들어진 AI 소형 로봇이다. 레이첼은 생일 선물로 애슐리 투를 사달라고 조르고, 이내 선물로 받는다.


애슐리의 매니저, 고모는 애슐리가 더 이상 곡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불만이다. 애슐리 투의 매출이 예상에 못 미치자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결심한다. 이야기를 하자고 애슐리를 불러내서는, 다량의 환각제가 들어간 음식을 애슐리에게 먹인다. 애슐리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고모는 '갑각류 알레르기'라며 언론에 둘러댄다.


소식을 접한 레이첼은 충격에 빠진다. 애슐리 투도 마찬가지로 충격에 빠진다. 애슐리 투는 오류를 일으키고, 잭은 애슐리 투를 컴퓨터에 연결해 문제가 일어난 부분을 지워버린다. 동시에 애슐리 투는 실제 애슐리처럼 말하기 시작한다. 사실은 애슐리의 의식이 동일하게 복사되어 있었지만 AI처럼 기능하기 위해 일종의 제한이 걸려있었던 것이다. 잭의 삭제를 통해 애슐리는 제한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애슐리 투는 애슐리를 구하러 갈 것을 제안하고, 레이첼과 잭은 이에 응한다.


한편 애슐리는 혼수상태 침대에 묶여 뇌파를 분석하는 기계를 차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혼수상태에서도 머릿속의 뇌파 분석을 이용해 작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목소리 또한 기술을 통해 재현해냈다. 고모는 홀로그램 애슐리로 사업을 전향하기로 한다. 그야말로 실제 애슐리는 작곡하는 기계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레이첼과 잭의 도움을 받아 실제 애슐리에게 다가선 애슐리 투는 혼수상태를 유지하는 기계를 제거하여 애슐리를 깨어나도록 만든다. 그들은 홀로그램 애슐리의 투자 유치 현장을 급습하고, 고모는 좌절하게 된다.




<레이철, 잭, 애슐리 투> 이야기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애슐리 투는 결국 애슐리의 인격이었다. 인격을 사고팔아도 되는가?

2. 고모는 사업을 위해 애슐리를 혼수상태에 빠트렸다. 돈을 위해 사람을 착취해도 되는가?


두 가지 질문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돈으로 치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첫 번째 입장은 인간의 존엄성을 돈으로 치환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치환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돈은 결코 재화를 부패시키지 않고 시장가치는 비시장 가치를 몰아내지 않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존엄성을 돈으로 치환하는 일을 반대하는 것은 힘들다. 실제로 애슐리 투는 돈으로 판매된 인간의 인격이지만, 그 행위는 착취당하는 애슐리를 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애슐리 투가 친구가 없는 레이첼에게 기쁨을 선사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두 번째 입장은 인간의 존엄성은 고결하기 때문에 절대 돈으로 치환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돈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낳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돈으로 치환되는 순간, 비시장 가치는 시장가치에 잠식당할 것이라 믿는다. 쉽게 말해 사람의 장기에 값을 매기면,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장기를 매매하는 행위가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레이철, 잭, 애슐리 투>에서도 고모는 돈을 위해 애슐리를 혼수상태에 빠트린다.


흥미롭게도 작품에는 두 가지 관점이 혼재되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고모의 악행)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다른 행위(애슐리 투 판매)에 의해 저지된다. 애슐리 투가 AI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까? 동의하기 어렵다. 애슐리 투를 복제된 실제 인간으로 가정하더라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다. 두 가지 관점을 적절히 취하는 것이 좋다.




중용은 분명 진리이기에 두 가지 관점을 적절히 취하는 것이 답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아직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뭔가 조금 더 명쾌한 대답이 있을 것만 같다. 당신의 입장은 어디에 가까운가? 지금부터는 댓글로 당신의 의견을 듣겠다.

작가의 이전글 초연결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