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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an 28. 2021

《성취예측모형》은 어디서 온 물건인가?

누가 어떤 직무에서 어느 정도 성취할 것인지를 미리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물론 일과 적성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을 테지만,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적성에 맞은 일이라 해도 어떤 인물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사전에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윤석열이 저렇게까지 나쁜 행동을 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감사원장 최재형과 그 감사관들이 저렇게 못된 방식의 감사권한을 휘두르리라고 누가 예견했겠는가? 감사권한도 중요한 공적자원인데 그렇게 낭비해도 되는가? 대법원장 김명수는 또 뭔가? 법원의 판결은 왜 이리도 상식에서 벗어나는가? 이들은 왜 그렇게 쉽게 주권자인 시민의 일반의지(general will)를 배신할까? 정말 사람 속을 알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진짜 적성검사를 해보면 될까? MBTI? Big 5? DISC?, 에니어그램? 다 좋다.     


도예, 조각, 그림, 작곡, 시·소설, 평론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것은 적성이 매우 중요하다. 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생애를 걸쳐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워런 버핏이나 짐 로저스 같은 투자를 좋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투자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비슷한 방법으로 투자한다. 그들이 많은 돈을 벌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행복한 삶을 산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해서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성취예측모형》을 만나면서     


내 경우를 말해야겠다.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강원도 시골에서의 가난은 끔찍했다. 무상교육이었던 교대를 졸업하고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초등교사로 복무해야 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취직이 잘 되는 경영학을 택해 야간대학을 다녔다. 주경야독을 한 셈이다. 70년대 대부분의 과목들은 일본책으로 공부한 나이 든 교수들이 강의했는데, 재무관리와 투자론은 달랐다. 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교수들이 영어를 반쯤 섞어가면서 새로운 이론을 가르쳤다. CAPM과 옵션이론 등을 배웠다. 새롭고 신기했다. 많은 학생들이 환호했는데 나도 그랬다. 미국에서 원전을 가지고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처럼 야간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다들 가난했다. 미국 대학에는 예나 지금이나 돈이 꽤 들었는데 언감생심이었다.     


투자론에 의하면, 나처럼 지금은 당장 돈이 없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유능한 사람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해서 투자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 내가 성공해서 몇 배의 수익을 돌려주는 파생상품을 만들면 성공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당시 나는 그럴 자신이 있었지만, 겉으로 말하진 않았다. 그랬다가는 미친놈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 지금 돌아보면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젊은 시절 치기 어린 상상이었다.     


그런 허망한 이론을 배우면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교직 기간도 끝나자 박정희의 유신시대도 막을 내렸다. 광주의 5·18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 교직을 떠나 한국은행으로 옮겼다. 한은에서도 내가 배운 경영학은 별로 사용되지 않았고 어디나 그렇듯이 직장은 나름대로의 규정, 관행, 논리가 따로 있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배운 경영학 이론은 거의 쓸모없었다.     


나는 늘 운이 좋았다. 독일 유학 중 경영학이라는 실용 학문이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시험 치는 학문은 지루하고 따분했는데 독일 대학은 달랐다. 인사조직이론을 공부할 때 들이쉬는 공기는 마치 솜사탕이 입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학습량 때문에 육체는 고통스러웠으나 정신은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였다.      


인사조직이론 중 대학에서 실무까지 깊이 배울 수 없는 분야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역량진단(competency assessment) 실무와 직무분석(job analysis) 실무였다. 이 두 분야의 실무는 별도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마침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훈련받는 동안, 나 자신을 깨달았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거듭남의 체험이라고나 할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떤 역량요소를 어느 정도로 발휘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구적 역량군은 대체로 평균을 약간 상회하지만, 추상화 역량군 중에서 미래지향성(Forward Looking, FL)은 비교적 높은데, 목적지향적 역량군 중에서 대인영향력(Impact & Influence, IMP)은 낮은 수준이라는 것도 알았다(두 번째 도표 참조).     


이게 무슨 뜻이냐? 분석적·개념적 사고력은 평균수준이고, 5년 내지 10년 이상 멀리 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성향은 괜찮은 수준인데(즉, 단기 이익에만 급급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 의도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여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성향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 인간의 타고난 성향은 잘 바뀌지 않는다.     


내 삶을 돌아보면 실제로 그랬다. 나는 늘 미래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예를 들면 이랬다. 80년대 한국은행 각 과에 PC를 한 대씩 보급해 주었다. 과원들이 다들 시큰둥하게 쳐다보기에 내 책상에다 놓고 이리저리 자판을 두들겨봤다. 타자를 칠 줄 몰라 옆에 있던 타이피스트에게 배워가면서 쳤던 기억이 있다. 아, 앞으로는 이런 시대가 올 것이다! 이때 열 손가락 타법을 익혔다. 독수리타법으로 익힌 사람은 멀리 보는 눈이 부족한 사람들일 것이다. 바둑이든 골프든 뭐든 정석을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오래간다.     


젊은 시절, 부모를 봉양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우리 세대는 다 그랬지만, 존속과 비속을 모두 챙겨야 했다. 내가 늙으면 절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준비해야 했다. 아이들도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우리 부부도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도록 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 살아야 한다. 이런 삶은 미리 준비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먼 미래를 보고 준비하지 않는다. 미래지향성(Forward Looking, FL)이 낮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가르쳐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역량요소(competency factor)라 부른다. 고위공직자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지금 준비하는 성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래지향성이 매우 중요하다.      


60대 후반의 내 또래들은 IT 다루는 것을 힘들어한다. 나이 들수록 IT도구 활용을 하위직에 맡기고 직접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시대에 뒤떨어진다. 물론 나는 직업상 이런 도구들을 많이 다루었지만 워드, 한글, 파워포인트, 엑셀 등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했다. 요즘은 파이널 컷도 배워서 간단한 영상편집도 할 수 있다. 장래에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한다든지, 손자들을 위한 영상편집도 해보려고 배웠다. 모든 걸 내가 직접 한다. 그렇게 늘 미래를 준비한다. 그것도 먼 미래를 향하여.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70년대 박정희 유신시절에는 초등교사로 복무했고,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는 한국은행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해외연수나 유학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나는 미리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서독연방은행 연수기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은 내에는 독일연수를 준비하는 직원은 극히 소수였고 나는 언제라도 연수나 유학을 떠날 수 있는 독일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내가 독일 연수와 유학을 가는 건 당연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멀리 보고 미리 준비하는 일은 혼자서도 잘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렇다고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냐? 전혀 그렇지 않다. 강골이 아니라서 조금만 무리하면 몸에 반응이 온다. 만사가 귀찮아지면서 앓아눕는다. 귀차니스트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유학시절, 나이 들면 여행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캠핑 장비를 싣고 애들은 뒷자리에 태우고 꾸역꾸역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때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내 나이가 80이 되면 어떻게 될까? 뭘 하고 있을까? 그때 심심하지 않으려면 지금은 뭘 준비해 두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한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죽었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나는 늘 그렇다. 왜 그러냐고? 나도 모른다. 젊은 시절부터 그랬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좀 피곤하다. 이런 성향도 타고난 것이다. 한은을 떠나 컨설팅사업을 할 때 고객사 임직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알아들을 때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설득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대인영향력(Impact & Influence, IMP)이 꽝이라서 그렇다. 세일즈에는 젬병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그랬다. 몇 차례 직장을 옮겼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그냥 그곳을 떠났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면서까지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이 나를 아주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집에 들어오면 파김치가 된다.     


이런 성향으로 태어났음에도 젊은 시절엔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난에서 벗어나야 했고, 사회적으로 출세를 지향하는 욕심덩어리였다. 그러나 유학 중 역량 관련 훈련을 받으면서 나의 타고난 역량은 그런 내 욕망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욕망이 역량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내 역량이 곧 타고난 성향이고 이것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 욕망, 역량, 탐욕에 대하여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욕망이 역량을 능가할 때 문제가 생긴다. 이런 경우를 탐욕이라 부른다. 탐욕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물들까지 괴롭히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의 수준으로 탐욕을 낮추는 것을 절제라 한다. 인간에게 절제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자신의 역량수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욕망과 탐욕을 구분하지 못하면, 탐욕을 역량수준이 감당할 만큼의 욕망으로 절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정리해보자. 자신의 역량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욕망하되, 그 수준을 넘어서면 탐욕에 사로잡히게 되고,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과 공동체에까지 해악을 끼친다. 그러니까 욕망과 탐욕의 경계선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성취예측모형》이다.      


《성취예측모형》을 학습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나의 타고난 역량수준은 어디까지인가? 나는 어디까지 욕망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나는 어떤 일에 행복해하는가? 나는 어떤 상태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갖는가? 나는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가?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한다. 나아가 스스로 답을 찾는다.     


인간의 비극적 드라마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를 보라. 한국 현대정치사의 비극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이다. 이 주인공을 탄생시킨 인물들은 모두 지금의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에 모여 있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인식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역량을 넘어서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재벌과 결탁했고, 조중동이라는 재벌하수인들을 활용하여 그들의 탐욕을 맘껏 충족시키려 했다. 그들은 권력을 차지했고 선전·선동으로 그것을 유지했다. 그들의 탐욕은 충족되었을지 모르나 그 드라마의 결말은 언제나 비참했다.      


윤석열은 자신의 역량에 비해 욕망이 너무 크다. 탐욕이 그를 지배한다는 말이다. 그는 여전히 비상식과 몰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인식 능력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그 주변 인물들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흐른다.     


▶ 과거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불타는 탐욕 속으로 무리하게 던져 넣는 사람들이 있다. 앞서 말했던 독재자들이 그랬는데, 이들이 만약 《성취예측모형》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들이 원했던 드라마의 결말은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독일은 지금 아홉 번째 연방총리를 앙겔라 메르켈이 맡고 있다. 이전 8명 모두 해피엔딩이었다. 16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내년에 퇴임하는 메르켈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행정부 수반으로 있었던 사람은 문재인을 포함하여 12명이다. 이전 11명 중에 해피엔딩이 몇 명이었는가 생각해보라. 대부분의 결말이 비참했다. 물론 《성취예측모형》이 없었다는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것이 큰 요인이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나치에 저항하다 살아남은 독일 지식인들은 다시는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독일형 인사조직이론을 만들었다. 《직무분석》을 통한 엄격한 직무설계와 《성취예측모형》을 통한 인재선발이 그 핵심이다. 이것이 제대로 실행되면 국정농단, 사법농단, 검찰농단, 감사농단 등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직무분석》에 관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 글의 주제인 《성취예측모형》으로 한정하자. 만약 윤석열의 과거를 면밀히 조사해서 분석했더라면, 조국과 추미애, 그리고 시민들이 이렇게까지 희생하고 고생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김명수, 최재형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들은 그렇게 높은 고위공직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전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단을 부리는 자들의 과거를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애꿎은 공직자들과 시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 자, 이제 이 글의 결론을 얘기해보자.     


사실 역량모형(competency model)은 서구의 컨설팅시장에서는 꽤 장사가 되는 비즈니스 아이템이다. 규모가 있는 인사컨설팅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모형을 개발해서 실무에 활용하지만, 저작권 때문에 개념정의, 코딩절차, 알고리즘 등의 차이가 조금씩 있을 뿐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      


이 《성취예측모형》은 독일어권과 영어권에서 개발된 역량모형과 한국에서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한국화를 위해 내가 직접 개발한 것이다. 《Achievement Prediction Model, APM》이라고 이름을 멋지게 붙였을 뿐 기본적인 개념, 절차, 알고리즘 등은 동일하다. 다만 우리 실정에 맞도록 한국형(한국어)에 부합하는 조정을 조금씩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독일어, 영어, 한국어 버전이 1/3씩 섞여있다고 봐야 한다.     


나는 왜 지금까지 역량개념을 가르치고, 모형을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까지 알려주려고 노력해왔느냐? 이제 은퇴한 마당에 이런 일을 공개적으로 알려서 한국 사회도 〈사람 보는 안목〉을 기르도록 하고, 조금 더 괜찮은 일꾼들을 고위공직에 등용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성취예측모형》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하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 아직은 우리 정치인들을 코딩한 데이터가 많지 않아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고위공직자와 그 후보들을 대략 20여 명의 과거를 조사했다. 코딩한 잠정적인 결론은 대략 60선 이상은 돼야 고위공직에 적합하고, 50선에서 60선 사이에 있다면 좀 조심해야 하며, 50선 이하는 부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50선 이하의 인물을 뽑으면 시민들이 고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세 번째 도표 참조)     


왜 그런지는 시간 나는 대로 또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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