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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 Dec 01. 2015

별 게 다 고마울 때가 있다

요즘은 잘 익은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은 금방이다. 오늘도 잘 익은 총각김치와 배추김치가 상에 올라왔다. 김치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시큼한 총각김치가 서걱서걱 씹히는 소리마저 맛을 더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김치에 젓가락 한 번 가질 않는다.      

‘이렇게 맛난 김치를 와 안 묵노?’라고 말하려다가 이미 한두 번  내놓은 밥상머리 잔소리가 아니라 그대로 삼켰다. 맛난 거 보면 이제 가족 생각이 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가족이 맛난 거 같이 먹지 않는 것도 때로는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게 어이없을 때도 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적, 제일 먹기 싫었던 반찬이 김치였다. 반찬으로 김치를 싸 주는 날이면 그날은 도시락만 챙겨 들고 학교를 갔었다.      


가끔 깍두기를 먹다 보면 젓가락이 멈칫할 때가 있다. 선친께서는 늘 나에게 깍두기에 손도 안 간다고 핀잔을 주셨었다. 나는 단지 김치 종류가 싫어서 안 먹는 것뿐이었데, ‘아마도 씹기 싫어서 안 먹을 것’이라고 단정까지 내리셨다. 그 말이 너무나 듣기 싫어서인지 커서도 한 동안 깍두기에는 손도 대질 않았다.     


나이를 먹다 보니 식성도 변하고, 이제는 잘 익은 김치가 어느 반찬보다도 맛나다. ‘네들도 나이 먹어봐라. 김치가 맛날 거다’ 이 말을 아이들에게 하려다 다시 말 꼬리를 당겼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총각김치를 우걱우걱 씹으며 생각해 보니 그랬다. 아이들이 김치가 맛나다고 앉아 있을 미래를 생각하니 지금 김치가 안 당기고 있는 아이들이, 그리고 이 시간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 맛없는 김치 말고 치킨, 피자, 콜라 마음껏 먹어라. 때가 되면 어차피 질리고 마는 걸.. 밥 두 숟가락에 서운함이 고마움으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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