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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관식 Mar 17. 2017

그놈의 신분

신분과 체면에 집착하면 실이 많게 된다

조선 개화기 때 있었던 일이다.


자하문(창의문) 밖 평창(平倉)에서 양반 자제들이 신식 군대 교육을 받을 무렵이었다. 한 중인(中人)의 교관이 이들을 훈련시키며 구령을 외쳤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중인의 교관이 관가로 끌려가 곤장을 치렀다. 이유인즉 '반말'로 "하나, 둘, 하나, 둘, 앞으로 갓! 뒤로 돌아 갓!"하고 외쳤기 때문이라고. 이후 이 교관은 그 양반의 자제들에게 이렇게 구령을 붙였다고한다.


"앞으로 가십시오, 하나, 둘, 하나 둘, 뒤로 돌아 가십시오..."


경어로 구령을 외쳤을 만큼 지엄했던 당시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씁쓸함이다.


우리는 지금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명함을 주고 받으면서도 신분을 확인한다. 상대 직위가 대표인지, 본부장인지, 과장인지를 먼저 따지고 서열화를 완성한 다음에야 비로소 두 사람 사이가 안정된다. 그러면 직위가 높은 사람은, 내 직속 상관이 아님에도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표정을 눈빛을 저도 모르게 발산하고 만다. 우선 다리를 꼬는 것도 그렇고.


어디 그뿐이랴. 같은 종친이 만나도 가장 항렬부터 따진다. 돌림자로 항렬을 확인한 후에야 서먹서먹한 사이에 안정감이 돈다. 반면, 서양에서는 직위보다 상대가 하는 일이 뭔지를 먼저 살핀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무엇을 협업할 수 있고 주고 받을 수 있는지,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떤 대화를 화제로 올릴지 판단한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 기업 명함이 유독 발달됐다고 한다.


물론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영업을 하기 위해선 상대와 어느 정도 직위를 포커판처럼 맞춰야 하는 사정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적어도 명함을 내밀 정도는 돼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사회라니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너무 격에 집착하다보면 실을 잃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적당히, 욕심없이, 때로는 거품 들어내고, 사람과 사람이 소톨하게 소통하는 사회를 기대를 져버리고 싶지 않다.


본 글은 <이규태 코너>(기린원)를 참고했습니다.



*추신 : 대문 사진은 개화기 당시 조선의 신식 군대입니다. 본 글과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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