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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Feb 26. 2024

일반인문 CCXXV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 죽은 자의 나레이션, 비극속 기적? 기적속 비극?

Two spokesmen for the Roman Catholic Archdiocese of New York said yesterday that the survivors of a plane crash in the Chilean Andes two months ago “acted justifiably” when they ate parts of bodies of dead companions to keep from starving to death.

Msgr. Austin Vaughan and the Rev. William Smith, pro fessors of theology at St. Jo seph's Seminary in Yonkers, declared in a statement issued in response to inquiries: “A person is permitted to eat dead human flesh if there is no feasi ble alternative for survival.”

뉴욕 로마 가톨릭 대교구의 두 대변인은 어제 두 달 전 칠레 안데스 산맥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의 생존자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죽은 동료의 시신 일부를 먹었을 때 "정당하게 행동했다"고 말했습니다.

용커스에 있는 세인트 조셉 신학교의 신학 교수인 오스틴 본 신부와 윌리엄 스미스 목사는 문의에 대한 답변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면 죽은 사람의 살을 먹는 것은 허용된다."

-1972.12.28 The New York Times

1972년 10월13일 우루과이의 ‘올드 크리스천스’ 럭비팀과 일행 45명을 태운 전세비행기가 친선경기차 칠레로 가던 도중 안데스 산맥 한가운데로 추락했습니다. 

스물두 살의 평범한 청년 난도 파라도가 의식불명 상태에서 사흘 만에 깨어났을 때는 처참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사고로 난도의 어머니, 그와 좌석을 바꿔 앉은 가장 친한 친구 판치토 등 13명이 즉사했으며 중상을 입은 여동생도 사고 8일째 되던 날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생존자들은 영하 40도 가까운 추위와 희박한 공기, 타는 듯한 갈증과 싸워가며 죽은 동료의 살을 먹으면서 버텨야 했습니다.

그마저도 줄어들어 누군가 죽어야만 먹을 것이 생기는 끔찍한 상황이 언제 발생할지 몰랐습니다. 

관계당국의 수색작업은 취소됐고, 3차례에 걸친 주변 원정도 실패했고 설상가상으로 눈사태가 비행기를 덮치는등의 돌발 상황으로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어갔습니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난도는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친구 로베르토와 함께 제대로 된 등산장비 하나 없이 럭비화를 신고 해발 5,000m의 안데스를 넘는 무모한 도전에 나서 10일간 100㎞를 걸었고, 마침내 한 농부와 조우, 구조 요청에 성공합니다. 

72일간의 처절한 사투를 이겨낸 생존자는 16명. 

이 ‘기적의 생환’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피어스 폴 리드의 베스트셀러 ‘얼라이브’(1973)와 1993년 에단 호크 주연의 동명 영화(Alive: The Miracle Of The Andes)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Parrado, Nando 난도 파라도는 72일간의 사투 끝에 기적적으로 생환했지만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많은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2006년, 가슴 깊숙이 묻어둔 그날의 참담함, 공포, 상실은 30여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마침내 하나의 깨달음이 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난도의 위대한 귀환 Miracle in the Andes : 72 days on the mountain and my long trek home

누구에게나 시련은 운명처럼 찾아온다. 난도에게도 그렇고 자기 아이를 치어 죽인 한 여성에게도 그랬다. 
 난도의 이야기가 상실과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선사하는 것은 고통의 모양은 다르지만 심원한 곳에서 본질은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난도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녀는 안데스의 차가운 바람을 맞아본 적도 없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곧 ‘그녀의’ 이야기가 되었다

-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에필로그 中


그리고 에단호크 주연의 1993년 영화 얼라이브 개봉 이후 20년 만에 같은 실화를 다루는 작품,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Society of the Snow이 개봉되었습니다.

같은 사건을 다룬 작품이었던 얼라이브때문인지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극적 요소가 두드러졌던 전작과 달리 담백하고 사실적입니다. 

100시간이 넘는 생존자 인터뷰를 녹음하며 초기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 사진과 영상도 적재적소에 활용했습니다. 

이륙 전 비행장에서 웃는 사진, 조난당한 이들이 카메라로 추억을 남기는 장면, 극적인 구조 당시 영상 등은 안타까움과 환희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메가폰을 잡은 Juan Antonio Bayona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오퍼나지, 더 임파서블, 몬스터 콜, 그리고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까지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크게 성공하고 찬사를 받은 작품들을 고루고루 만들어 왔는데 5년 만에 실화 재난 생존 드라마로 돌아온것입니다.

영화 제목은 생존자들을 일컫는 말로, 영화는 파블로 비에르시가 쓴 저서 ‘더 스노 소사이어티(원어명 ‘LA SOCIEDAD DE LA NIEVE’)’를 원작으로 만들었습니다. 

비에르시는 여러 생존자들과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습니다.

영화의 전작이었던 얼라이브와 비교되는 점은 생존을 위해 식인을 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할지 딜레마에 빠지지만 삶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 로베르트는 거부감을 느낄 모든 이들을 배려해 가장 먼저 칼을 집어들어 마냥 이기적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존중과 배려를 실천에 옮기며 선택에 당위를 부여하고, 삶을 향한 의지도 입체적으로 부각시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을 떠날 수 없는 죄책감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화는 서서히 웃음이 깃들며 평화를 누리는 생존자들 사이에서 엄습하는 비극을 암시하기도 화자의 깊은 곳에서 흔들리는 생존자들의 속내를 꺼내내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납니다.

특이한 점은 실화를 다룬 영화의 화자는 회고록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는 식으로 보통 생존자를 세우는데 이 영화의 나레이션은 사망자 29명 중 마지막 사망자인 누마입니다.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인육을 거부한 비주류였던 누마를 화자로 내세운것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펼치려는 선택이라 생각이 듭니다.

보통 생존물에서 사망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묻히는경우가 일반적인데, 점점 죽어가는 와중에 누마가 자기 시신을 기증하며 친구들의 생환을 염원하듯 감독은 사망자들에게도 역할과 의지가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깊은 산속의 추위는 대단히 공격적이고 악마적인 존재이다. 추위는 사람의 피부를 불태우고 살갗을 베어버린다. 

신체 곳곳의 세포까지 스며들어와 뼈를 부숴 버릴 것 같은 강력한 힘으로 사람을 짓누른다. 

비행기 동체는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바람으로부터 보호를 해주기는 했지만, 동체 안의 공기는 그래도 너무나 차가웠다. 밤중에 잠을 청하기 위해 누워 있으려면 이빨이 서로 부딪쳐 딱딱 소리를 냈고 몸은 심하게 떨려 목과 어깨의 근육이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 
 -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안데스의 추위에 대한 묘사

누마는 25살의 미래의 변호사이자 그 누구보다 투철하게 신을 믿는 종교인으로 누구도 참을 수 없었던 식인을 거부하고 끝내 굶어 죽는 걸 택합니다. 

인육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마음과 죽더라도 인육을 먹을 수 없는 누마의 마음이 둘 다 처절하게 다가옵니다. 

생존이 우선인가, 신념이 우선인가 정답은 없고 옳고 그름도 없습니다.


영화는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 및 폐막작으로 공개됐고, 제38회 고야상에서는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넷플릭스 공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출품됐을 뿐만 아니라, 3월에 열릴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에 스페인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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