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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offee 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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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Nov 03. 2024

coffee break…不求甚解 불구심해

; 크리스쳔 모드로 일요일을 열며…

위진남북조라는 왕실이나 권문세족들의 세력이 약해지고 신흥 군벌이 각축을 벌였으며 이민족의 침략과 농민봉기 등이 끊이질 않아 어수선한 정세의 혼란기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전원에 들어가 은둔하며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술에 취해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는 식의 풍류를 즐겼던 진(晉)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는 글을 읽고 시를 쓰는 가운데 행복을 느낀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기형식을 빌려 작가 자신의 인생관과 생활관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이라는 산문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표현하였는데 해학적인 문투가 일품이죠.

이 책은 도연명이 스물여덟 살 전후에 쓴 것으로 그가 책을 읽을 때 한자 한구의 해석에 구애받지 않고 책 속의 대의를 깨닫는 데 중점을 둔 독서법이 담겨있는데 여기에 나온 ‘不求甚解 불구심해’라는 말은 대충대충 하여 깊이 이해하지 못함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망가져가는 원인을 한,두가지로 단정 지을수는 없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려주지도 않으려 하기때문일것입니다.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성경이 대중들에게 보급된는것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던것처럼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토착종교와 적당히 믹스되고 자본주의의 맘모니즘에 깁숙히 담겨져 본래 색이 희미해졌으니 교회를 떠나는, 새로운 영입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회 안에서조차 기독교를 바로 알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죠.

기도 마지막에 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로 끝내는 기도를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그 이름을 사용해야 하는가?’ 대한 의문을 갖거나 질문을 하고 가르쳐 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은 아주 쉽고 단순한 질문인 것 같지만,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을 경우에 당황하여 선뜻 클리어하게 답변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그것도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가 아니라, 아주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나 믿음이 없어서 회의적인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 질문에 선뜻 간명하게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요? 

이는 한마디로 성경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항상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성경적인 논리로 즉시 답변할 수가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성경을 신학적으로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하니까 평신도들에게는 엄청나게 부담이 될 것 같지만, 신학도 성경을 소스(source)로 해서 체계화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쉬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상식적, 성경적, 신학적 이해가 필요 합니다.

상식적으로 아버지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아들에게 전폭적으로 모든 권한을 위임해 빈틈없는 율법(그리스도의 율법)을 적용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모든 것을 허락하신 것이고, 성경적으로는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와’ 요엘 2장 32절에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를 보면 성경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했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가장 확실한 대답은 우리의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에서 가장 확실하게 찾을 수 있는데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고(178문답),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서 180문답에서“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순종하며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가운데, 그분의 이름으로 긍휼을 구하는 것인데,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중보로부터 우리가 기도할 용기와 담대함과 힘, 그리고 기도가 수납되리라는 소망을 얻음으로써 하는 것입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개혁교회는 올바른 기도를 드리는 교회이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것은 교회가 신자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장 먼저 가르칠 내용일것입니다.

스물 여덟 젊은 시절에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에서 그는 책을 읽을 때도 한 자 한 구의 해석에 구애받기보다는 책 속의 대의를 깨닫는 데 중점을 두며, 자신의 생각과 들어맞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푹 빠져들어 행복을 누린다는 내용처럼, 크리스쳔의 입장에서, 안식일 예배 전, 바른 기도를 알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先生不知何許人, 亦不詳其姓字. 선생 부지하허인 역부상기성자

宅邊有五柳樹, 因以爲號焉. 택변유오류수 인이위호언

閑靖少言, 不慕榮利, 好讀書, 不求甚解. 한정 소언 불모영리 호독서 불구 심해

每有意會, 便欣然忘食 매유의회 편흔연망식


선생은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그 성과 자도 자세하지 않다.

집 주위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 있어 그 호로 삼았다.

한가롭고 고요하며 말이 적고 명예와 실리를 도모하지 않고 독서를 좋아하지만 깊은 해석을 구하지는 않는다

뜻 맞는 곳이 있기만 하면/기꺼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

- 도연명 陶淵明, 오류선생전 五柳先生傳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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