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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Mar 18.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VI 충청 공산성

열둘. 공주 공산성

금서루, 서쪽의 비단처럼 펼쳐진 문.

성은 보통 남문으로 진입해야 하지만 공주시가 착각.

서문 앞에 매표소와 주차장 조성.

서문이 정문이 된 거다.

공산성은 사적 제 12호. 면적 6만 5천 평.

주택가로 난 작은 골목길을 200m 가면 진남루.

여긴 매표소가 없다.

진남루.

남쪽의 왜놈들을 경계하겠다는 의지

475년-538년 까지 64년간 백제의 수도였지만....660년 당나라 대군 13만 인천의 덕적도 상륙.

당시 백제군은 5만.

계백장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

급한 의자왕은 사비성에서 이곳 웅진성으로 피난.

웅진성의 성주인 예식장군 배신하여 의자왕을 생포해 당나라군에 넘긴다.  

당나라 소정방은 의자왕과 백성 1만 3천 명을 포로로 이끌고 당나라로 철수 후 웅진성은 폐성.


1995년 부터 낙양 북망산에 있다는 의자왕의 묘를 찾아 나섰지만 못 찾았다.

2000년 부여 왕릉원에 의자왕의 묘로 추정되는 곳의 흙을 가져다 가묘를 만들었다.

그후 1400여년 동안 충청도는 정권을 잡아 본적이 없다.

충청 출신인 이회창에게 기회가 왔으나 같은 동네의 이인제가 방해.

그래서 충청도 사람들은 좀체로 속마음을 안 드러낸다.

그나마 '세종시'가 들어와 도약을 꿈꿀 뿐.  

매년 1, 2월. 8, 9월 농사 안 지을 때 백성 동원, 부역.

당연히 일당 없고.

일당을 주기 시작한 건 1800년 수원 화성 조성 때 정조가 처음이다.

돌에 깔려 죽고, 추위에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는다.

이런 선조들의 피눈물로 탄생한 성곽.

왕궁터가 발굴되었지만 예산이 없어 그냥 펜스만. 지금은 민가 유적 발굴 중.

길건너편엔 황새바위기념성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성지.  

'쌍수정'

1624년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곳.

난이 평정됐다는 소식에 인조는 쌍수정 앞의 두 나무를 붙잡고 창피하다고 말했다.

그래 쌍수정.

1734년 건립.

어느 날 임씨라는 농부가 찰떡을 해 인조에게 바쳤다.

임서방이 만들었으니 임절미라고 항 후 시간이 흐르면서 발음하기 좋게 인절미가 되고.


이괄.

경복궁 점령 이틀만에 이천으로 도망.

부하의 칼 맞고 목이 떨어졌다.

이괄의 본관은 고성.

멸족.  

동문 영동루.

동쪽의 벗을 반갑게 맞이하는 문.

광복루. 원래 이 누각의 이름은 '웅심각'

1949년 김구와 이시영이 공산성을 찾아 막걸리 대작.

이름을 바꾼다.

500년 제 24대 동성왕이 건립한 '임류각' 다음해 동성왕은 경호실장 백가의 칼을 맞는다.

백제판 10.26사태.

1993년 중건.

건물이 좀 무겁다.

당시 도편수 실력이 좀.

영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 군사령부. 영규대사가 이곳에서 지휘.

영규대사는 조선 최초의 승병장. 영규대사 금산성 전투에서 전사.

1776년 건립된 만하루.

강물에 떠 있는 인문학적인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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