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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다 Oct 13. 2015

마리오는 대체 늙지를 않네

마리오의 후일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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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키노피오가 마리오를 찾아와 말했다.

마리오! 마리오! 종일 누워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마리오는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저리 가. 귀찮아. 다리 아프단 말야.


키노피오가 말했다.

좋아요. 언제부터 관절염을 앓았는지는 몰라도 당신은 도통 노력을 안 하는 것 같군요. 대신 점프할 필요가 없는 일을 줄게요. 한국으로 가세요.


뭐, 한국? 그게 뭐야?


마리오는 고개를 휘저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의 눈앞에 존재감 없는 말단 사원이 서 있었다.

“한국 말이에요, 바다 건너 동쪽에 있는 나라. 거기에 일이 있으니 출장  다녀오라는데요.”


마리오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언제 내가 바깥 세상으로 나온 거지? 나오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를 썼는데!’





마리오가 우려했던 대로 점프를 하지 못하는 그는 임천당에 있어선 처리하기 힘든 골칫거리였다.

임천당은 틈새시장을 노린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리오를 한국으로 보냈다.

다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이 프로젝트의 관계자들은 마리오의 출국이 ‘재활용’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관절염 때문에 점프를 할 수 없는 마리오라니, 한시 바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시점이었던 것이다.


한국으로 온 마리오는 공중파 방송사인 SBS에서 하나의 코너를 맡았다. 한국인 개그맨 한 명이 그와 콤비를 이루어 마리오 형제를 연출하기로 했다. 프로그램 회의에서는 이런 논의가 이루어졌다.


“근데 마리오 동생 이름이 뭐야?”

“글쎄. 어차피 비슷비슷하게 생겼으니까 비슷한 이름 아냐?”

“좋아. 그럼 마리오 동생은 마리지로 하자! 그러니까 ‘마’가 돌림인 거지.”

“잠깐만요. 여기 자료에 의하면 동생 이름은 루이지라는데요?”

“뭐 그렇게 어렵냐. 그냥 마리지로 해. 어차피 창씨개명이야 일본인들이 시켰던 짓이잖아?”


마리오는 마리지를 연기하는 한국인 개그맨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시답잖은 말장난뿐인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제작은 쉬웠다. 마리오는 어눌한 말투로 속성으로 배운 한국어를 구사했다. 그들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나 왜 키가 자근지 모르게따.
그건 형이 야채를 안 먹어서 그런 거야!
야채루 머그며느 키가 자랑다느 마리오?
일단 먹어보고 얘기하란 마리지.
(합창) 마리오~ 마리지~ 우리는 마리오 형제!


프로그램이 종영하면서 마리오는 실직자가 되었다.    





마리오가 은퇴한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매서운 겨울이었다.

어쩐지 마리오의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온 마리오! 삼단 점프와 온갖 아크로바틱 묘기가 가능한 버섯 왕국의 영웅! 오늘도 피치 공주를 구하는 모험을 떠난다!*



낡은 외투를 단단히 여미고 거리를 걷던 마리오는 상가에 진열되어 있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 안에는 마리오가 벽을 차고 온갖 재주를 부리며 아름다운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저기도 내가 있구나.”


그 말은 본질적으로 틀렸다.

임천당은 훨씬 능력 있는 새로운 마리오를 오랜 기간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찾아냈다. 마리오가 보고 있는 것은 그 새로운 마리오였다.


우리의 마리오는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추위 때문은 아닌 듯했다.

부서지지 않는 별을 백 개도 넘게 모아 쿠파에게 대항하는 새로운 마리오의 모습을 보며 마리오는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마리오가 알기로 텔레비전 속의 그는 세 번째 마리오였다. 마음속으로나마 점프맨을 비웃었던 자신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저 안의 화려한 마리오도 자기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멍청한 늙은이! 관절염이라니, 난 절대 그렇게 흉한 최후를 맞지 않을 거야, 라는 식으로. 어쩌면 그 마리오를 욕하는 마리오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마리오는 사실 세 번째가 아니라 여섯 번째, 아홉 번째 마리오일지도. 이렇게 지나간 마리오가 벌써 수십 명이 될 지도.


텔레비전이 말했다.


우리의 마리오는 이제 네가 아니라 이 사람이야.

맞아, 훨씬 강해.

맞아, 보다 더 날렵하고 유연하지.

맞아, 너보다도 훨씬 성공한 영웅이야.


마리오는 서울역에서 자신의 누더기를 몸에 둘둘 감고 웅크렸다. 잠이 들면서 설핏 중얼거렸다. 텔레비전에게 단박에 쏘아붙이지 못해서 응어리 진 한마디였다.


“아니야. 그 마리오도 곧 나처럼 될 거야.”





마리오는, 그러니까 새로이 규정된 우리의 마리오는 해를 거듭할수록 강해졌다. 훨씬 커다란 버섯을 먹고 토관을 부수기도 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우주선을 타고 온갖 행성을 여행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다.

마리오는 대체 늙지를 않네!


노장의 몸으로 피치 공주를 납치하던 쿠파는 네 번째 마리오까지 함께 일했다. 그의 자리는 그보다 작고 훨씬 악해 보이는 쿠파 주니어가 대신했다. 간혹 쿠파가 쿠파 주니어와 함께 다니기도 하는데, 그것은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꼭두각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철저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왔던 쿠파는 은퇴 후에도 추앙받았다. 그는 현실 세계에 진짜 정원을 가꾸며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약속한 듯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고 마는 꽃잎들을 보며, 자신을 잃은 마리오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마도.


거기에 비하면 루이지는 너무 힘겨운 상황이었다. 충분한 재능을 갖추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지도는 너무나 낮다. 심지어 이름이 바뀌었지만 아무도 모를 정도이니…….


피치 공주는 성형수술만 아홉 번째였다. 이제 현대 의료기술로도 그녀 얼굴의 표면장력을 되찾아주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녀는 밤마다 거울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간 모아 온 모든 돈을 미용에 투자했지만,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자기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피치 공주의 행세를 하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가짜 손톱을 모조리 뜯어버리고 몇 개월 전부터 천장에 매달아 놓은 올가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흔히 버섯돌이로 알려졌던 아시아의 키노피오와 서양의 토드들이 대량으로 추방되었다. 대신 쓸 키 작고 힘없는 잔챙이들은 넘친다는 것이 설명이었다.


그중에 내가 있었다. 나는 피곤한 얼굴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동그랗고 큰 머리가 사람들의 허리에 연신 부딪혔지만 사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알고 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란 사실을. 머리가 버섯이라 해봤자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심지어 빨간 모자의 그 남자 또한 알아보는 이 없을 것이다. 지나간 것은 이렇게 쉽게 잊힌다.


나는 긴 지하도를 터덜터덜 걷다가 눈에 익은 빨간 모자를 발견했다. 구석에 구겨지듯 웅크려 있는 거지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거지의 외투를 들추었다. 거지가 신음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놀라며 말했다


“다, 당신은…….”  





* Super Mario 64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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