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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다 Oct 08. 2015

평생 주인공일 수는 없지

마리오의 후일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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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지 않는 별은 존재했다.* 다만 전설 속의 존재였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세계의 별들이 품귀 현상을 일으키자, 하늘에서 일곱 개의 별과 엑스칼리버가 내려와 쿠파의 성을 정복해 버렸다. 순식간에 본거지를 잃은 거북이 노코노코와 쿠리보들이 쿠파를 찾아왔다.


쿠파사마! 우리의 성이 함락되었어요!


정원을 가꾸며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던 쿠파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군. 마리오가 새 모험을 시작할 시기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결국 쳐들어온 건가?


쿠파는 알고 있었다. 느릿느릿한 쿠리보나 겁 많은 노코노코로는 마리오를 이길 수 없다, 그렇게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쿠파의 추종자들이 떠들썩해졌다.



모르겠어요! 하늘에서 갑자기 얼굴 달린 이상한 칼이 내려오더니 우리 성에 푹, 꽂힌 거예요!

그 칼이 험상 궂은 얼굴로 어찌나 깔깔대는지 너무 무서웠어요!


어느새 새로운 작품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쿠파는 물었다.


그래서 다친 사람은 누구지?


구석에 주저앉아있던 노코노코가 말했다. 아버지가 다치셔서…… 업고 왔는데…… 치료비도 없고…….


쿠파는 그 노코노코의 아버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그리고 품에서 얼마간의 돈을 꺼내 아들 노코노코에게 쥐어주었다. 일단 어딘가에서 은신하고 있어. 아버지 잘 모시고.

쿠파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졸개 하나하나를 살피고 사정을 들어준 뒤 돈이나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각자 은신처나 보금자리를 찾아서 숨어 있으라고 명했다. 모든 졸개가 제 갈 길을 가고 나자 쿠파는 한숨을 푹 쉬었다.


쉴 새가 없군.


쿠파는 노련한 배우답게 즉시 연기에 들어갔다. 하늘을 향해 진노의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는 버섯 왕국의 세계에 들어서서 심심하지 않은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노장의 배우로서 늘 비슷한 작품을 똑같은 연기로 대하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니냐. 그런 이미지에 시달리던 시절에서 벗어난 것이다.

게다가 꿈이었던 작은 정원도 가졌다. 여기서는 비록 패배할지언정 주연급의 역할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느닷없이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 것은 처음이었다.


내 부하들을 괴롭힌 자는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단 한 줄로 축약되어 전해졌다.

‘성을 잃은 쿠파가 마리오에게 빌붙었다’.

그것은 마리오와 쿠파가 함께하는 첫 모험이었다. 세계는 알 수 없는 힘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쿠파의 성을 지배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마리오 일행은 일곱 개의 별을 모두 모아야 했다. 부서지지 않는 별을 표현하기 위해 고가의 크리스탈이 소품으로 이용되었다. 도중에 피치 공주가 크리스탈 별을 가지고 도주하려 한 적이 있지만, 쿠파가 점잖게 저지했다.


그거 가져가면 난 널 정말로 고발할 수밖에 없다.

쳇.


쿠파는 피치 공주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제 이익을 생각하고 철저히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그녀를 쿠파는 연장자의 입장에서 되도록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피치 공주의 콧대는 갈수록 높아졌다. 그녀의 성격과 자존심은 쿠파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피치 공주는 쿠파의 점잖은 제지에 입맛을 다시며 별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들이 합심하여 세계의 평화를 구하려는 모험도 이내 끝자락에 다다랐다. 엑스칼리버가 꽂혀 있는 스산한 분위기의 성을 목전에 두고 그들은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쿠파는 조용히 마리오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느긋하게 얘기해보는 건 처음인 것 같군. 마리오 역할은 할 만 하나?”


마리오는 배를 내밀며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이에요. 나는 강하니까요.


“헌데 걱정이군. 나는 벌써부터 허리가 아파올 지경이야. 자네는 힘들지 않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얼마나 강한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네가 요즘들어 하라는 점프는 안 하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망치질이나 하길래 궁금해졌어.”


마리오는 갑자기 눈을 흡뜨고 화를 냈다.


이미지 변신이에요. 그러면 안 되나요?


“흥분하지 말게. 그냥 걱정돼서 한 말이야.”


나는 강해요. 이곳의 주인은 나라구요.


쿠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넌 강하지.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괜찮은 거냐?”


마리오는 대답했다.


나는 온 세상의 주인공이에요.


쿠파가 말했다.


 “그래,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면 지금을 즐겨.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거다. 네가 주인공이란 사실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마리오는 다시 한 번 세상을 구했다.

그리고 결국  몸져눕고 말았다. 악성 관절염이었다.


  



* Super Mario RPG : 일곱 별의 비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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