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넷플릭스는 싼 게 매력이었다. IPTV 및 케이블 TV 등이 매우 비싼 미국에서 월 X달러만으로 온갖 방송을 볼 수 있는 넷플릭스는 명백하게 싸고 좋은 제품이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문제가 생겼다. 그간 영화들을 제공하던 영화사들이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주지 않으면 다 빼버리겠다고 협박을 한다. 거절할 수 없는 돈을 제공할 수 없던 넷플릭스는 롸끈한 신작이 아니라 괜찮을 만한 구작을 소비자한테 보여준다. "어 볼 게 없네?!" 가 아니라 "어 이런 게 있었네? 재밌네?" 라는 와우포인트가 생긴다.
생각해보면,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올 때도 그랬다. 그들이 내세운 무기는 무엇보다 개인화였다. 그런데 한국은 개인화가 씨알도 먹히지 않던 시장이다. 한국의 가장 성공한 서비스 장르는 음원 서비스인데, 한국 음원 서비스는 타 서비스와 달리 MASS 차트가 참으로 잘 발달됐다. 전통 콘텐츠 시장인 드라마를 보더라도 한국은 일종의 '대세 효과'가 분명히 있던 콘텐츠 시장이기도 했다.
즉,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한테 지금 좋은 것' 내지 '지금 가장 인기 좋은 게 뭐예요?' 인 시장. 사실 유튜브도 그렇다. 갓고리즘이 조회수 100따리로 데려다주는 경우는 없긴 하다. 너가 좋아할 법한 콘텐츠 = 너랑 비슷한 애들이 많이 본 콘텐츠 = 많이 본 콘텐츠니까 뭐.
사람들은 더이상 넷플릭스를 강력한 추천엔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재밌는 콘텐츠가 많은 곳 or 서비스가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전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맡는다. 후자는 인기 차트가 증명한다. 웨이브 및 티빙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도 인기 많다. 의외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힘을 못 쓰고, 한국 드라마가 힘을 쓰는 시장이다.
서비스도 진화한다. 유럽에서 넷플릭스는 전통 tv처럼 시간표에 따라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채널 기능을 추가했다. 미국에서 fast laughs라는 유사 틱톡서비스 기능을 추가한다.
넷플릭스만의 특징은 아니다. 버즈피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낄낄대는 콘텐츠에서 출발해, 뉴스도 가고, 섹스 이야기도 하고, 커머스도 한다. 플랫폼과 사용자의 변화에 따라,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화한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우리는 초심을 잃어야 한다는 것.
넷플릭스가 저렴한 가격이라는 초심에만 집중했다면 가격을 올리지 못했을 테다. 추천에만 집중했다면 오리지널에 대한 투자를 회피했을 테다. 단순 오리지널 콘텐츠에만 집중했다면 유럽에서 채널 프로그래밍, 미국에서 FAST LAUGHS 등 서비스 측면에서 진화는 꿈꾸지 못했을 테다.
결국은 본질이다. 프로듀서 싸이는 이를 본심으로 표현했는데, 비슷하다. 추구하는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답할 수 있다면, 환경에 맞춰 진화하고 변수에 따라 대응할 수 있다.
꺾이지 않으려는 대나무는 부러진다. 부러지면 기회가 오지 않는다. 바람에 따라 흔들려도 꿋꿋하게 자라나 열매를 맺으면, 그걸로 장땡이다. 틀에 갇히지 말고, 틀 바깥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기.
기회는 타석에 자주 들어설 때만 생긴다. 끊임없이 변하고, 끊임없이 타석에 들어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