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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Dec 10. 2023

자유 시간

제주 한달살기(23년 늦여름~)

제주도에 온 지 7일 차, 일주일이 되었다.


그동안 매일같이 나가 놀았더니 즐겁기도 했지만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어제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제주동문시장에서 정신없는 야시장 저녁 체험을 하고 제주도를 관통해 숙소로 돌아오는데, 한라산 옆구리를 타고 지나가는 그 도로가 칠흑같이 어두웠다. 쌍라이트를 켜고 반대편에서 차가 오는 것 같으면 급하게 끄기를 반복했다. 초긴장 상태로 운전을 하며 옆에서 같이 긴장한 남편과 내일은 하루종일 집에서 쉬기로 했다.

​깜깜한 제주의 밤이 첫째는 낯설었는지 ‘무서워 무서워’를 반복하다 잠이 들었고, 둘째는 편안함을 느꼈는지 조용히 잠에 들었다. 8시쯤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 잠든 애들을 눕히고, 우리는 일찍 주어진 육퇴를 각자의 방식대로 즐겼다. 나는 운동을 하고, 일기를 쓰고, 책은 옆에 가져다 두기만 하고 들춰보진 못했다. 남편은 계란 스크램블을 만들고 한라산 한 병을 깠고, 티비에서 나오는 군대 배경의 드라마 1,2회 연속 방송분을 열심히 봤다.


다음 날인 오늘, 일찍 잠든 애들은 역시나 6시가 좀 넘은 시간에 일찌감치 깼다. 숙소에 머문 지 일주일 남짓 되니 아이들은 어느새 적응을 마친 듯했다. 첫째는 일어나자마자 ‘밖에 나갈래’ 하며 마당으로 나가 수도를 틀고 물을 뿌리며 놀고, 아직 말을 못 하는 둘째는 손가락질하며 밖에 나가자고 한다. 마당으로 나간 둘째는 주인 분들이 사는 옆집의 쪽문을 가리키며 장군이(진돗개)를 보러 가자고 또 손짓한다. 강아지를 참 좋아하는 둘째는 장군이만 보면 그렇게 평소에 보이지 않던 소리 나는 웃음을 보인다. 그 웃음에 졸린 나도 따라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마당에서 한바탕 놀고 둘째는 아침 낮잠에 들었고, 첫째는 물에 흠뻑 젖어 아침 목욕을 했다. 항상 저녁에 목욕하고 티비(만화)를 봤는데, 목욕을 마친 첫째는 만화를 보여달라고 했고, 좀 쉬고 싶었던 우리는 ‘조금만 보는 거야’ 하며 못 이기는 척 허락했다.


그렇게 둘째는 낮잠을 자고, 첫째는 티비에 집중하는 고요한 휴식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자주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천사같이 자상해지는 남편은, 나보고 집 근처 가고 싶어 하던 카페에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그럴까?!’ 하며 부리나케 준비하고 ‘혹시 급한 일 생기면 전화해!’라는 빈말을 하고 나왔다.


숙소 근처에 찾아둔 카페가 있었다. 걸어가기는 애매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알맞은 시간’이라는 카페였다. 감귤농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라는데, 너무 예쁜 모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라테도 4가지(우유 커피, 진한 우유 커피, 시나몬 우유 커피, 알맞떼)나 있었다. 고심 끝에 나는 시나몬 우유 커피를 시켰다.


‘와-맛있다.’

(그런데 양이 너무 적다. 일기를 한창 쓰고 있는 지금 다 먹어버려서 한잔 더 시켜 먹고 싶다. 남편도 없으니 몰래 가능할 것 같은데.. 시켜?) (안 시켰음)

카페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있으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에서는 우리 숙소도 그렇고,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참 좋다. 창문 밖에 햇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초록초록한 나뭇잎들이 마치 내 눈을 토닥토닥해주는 기분이다. 좀 전에는 토닥이 너무 셌는지, 눈물도 찔끔 나려 했다.


카페 주인 부부는 같은 회사에서 만나 2010년 결혼을 하고, 2016년에 제주에 왔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만의 것을 해보고 싶었고, 그 지역이 제주였으면 해서 무작정 이주해 이 창고를 만났어요.

라고 카페 안내 탬플릿에 적혀있다.

어떤 업종의 회사였을까? 분명 디자인이나 예술 관련된 곳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카페 인테리어도, 탬플릿 디자인도, 카페 이름이나 메뉴판도 센스가 넘친다. 궁금한데 나가면서 슬쩍 물어볼까? E와 I를 왔다 갔다 하는 요즘은 좀 머뭇거리게 되는 일이다. (조용히 나왔음)

가만-히 카페에 앉아 생각했다.

제주도에 출발하기 전 들었던 마인드풀 세미나에서는 ‘기쁨존에 들어가는 일’을 많이 하라고 했는데, 나에게 그런 일이 무엇일까? 대충 생각했을 때는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것들이 생각나는데, 혹시 내가 모르는 것들도 있지 않을까?

경험을 해 봐야 알 텐데. 어쩌면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은 매우 작은 일부일 수도 있다.


얼마 전에도 우리 엄마는 제주도 출발 전전날에 꾸역꾸역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펴고, 청첩장 모임도 나가려는 딸을 보고 ‘너는 애가 둘인데 어떻게 하고 싶은 걸 다 하니?’라고 구박했지만, 어쩌지.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애 둘이라고 하고 싶은걸 참고 살아야 한다면, 그건 또 더더욱 서럽고 싫다.


나는 계속해서 하고 싶은 것들을 꾸역꾸역 해내면서, 내가 진심으로 미소 짓고 (둘째가 장군이를 보고 웃는 것처럼) 기뻐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반복하며 살고 싶다.


 (브런치 작가도 도전한!)  지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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