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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Dec 12. 2023

천사를 만난 이야기

제주 한달살기(23년 늦여름~)

제주도 9일 차 아침, 남편이 너무 피곤해하길래 좀 쉬라고 애들 둘을 데리고 나왔다. 아침 8시 반 이른 시간이라 어디 갈까 고민하다가, 자주 다니는 마트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건물이 떠올랐다.


15분 정도 걸려 주차를 하고 둘째를 내리는 순간, 똥냄새를 감지했다. 

‘내가 굳이 왜 이 고생을 자초했을까’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내리고 둘째를 앉혔다. 자기도 힘들다며 굳이 굳이 유모차 걸터앉은 첫째까지, 묵직한 유모차를 끌고 카페로 들어갔다.

1층에는 자리가 별로 없었고, 2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5미터는 되어 보이는 높은 층고에 계단이 길게 올라서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주문을 했다. 내가 먹을 제주 비자림 콜드브루와 첫째가 고른 한라봉 주스, 그리고 둘째에게 쥐여줄 하루 컵 과일.


혹시나 싶어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물었다. 직원 분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없다고 했는데, 뭐랄까.. 당시 나의 기분 때문인지 그 대답이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짧은 순간 머리를 재빠르게 굴렸다. 도저히 음료와 애들 둘을 데리고 올라갈 수는 없었다. 일단 유모차를 1층에 둔 채로 올라갔다.


-

2층에 올라가니 혼자 온 사람들이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마치 제주도가 아닌 느낌이었다. 서울의 이른 아침 스타벅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사람이 좀 더 적을 뿐)


나는 급하게 자리를 잡았다.

‘일단 기저귀부터 갈자.’

화장실 위치를 파악하고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하니 거부를 했다. 얼음이 가득한 잔을 보고 잔뜩 신이 난 것이다.(얼음 먹기 좋아함) 3초 정도 지켜보았다. 그래, 혼자 잘 있겠네. 빠르게 판단 후 둘째만 안고 화장실로 갔다. 다행히 기저귀 갈이대는 있었다.

둘째가 떨어지지 못하게 왼손으로 계속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기저귀에 있는 똥을 버리려는데, 변기커버에 똥이 묻어버렸다.

‘하, 내가 굳이 왜 이 고생을 자초했을까’

한 손으로 열심히 변기를 닦았다. 그 와중에 밖에 있는 첫째도 계속 신경 쓰였다. 조용한 분위기인데 혹시 울음보가 터져서 눈초리를 받는 건 아니겠지. 정신없이 빠르게 마무리를 하고 나갔다.

‘휴-’

다행히 첫째는 혼자 잘 놀고 있었다.



아기의자를 끌고 와 둘째를 앉히고 사과를 쥐여줬다. 첫째는 방울토마토를 먹으면서 내 커피를 빨대로 저어주고 나름의 방식으로 잘 놀았다. 드디어 카페에 온 듯한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사진도 찰칵, 한번 찍어주고.


그러고 나니 밑에 두고 온 유모차가 생각났다. 다시 한번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첫째에게 잘 얘기하고 애들 둘을 놓고 1층으로 후다닥 내려갔다. 유모차가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이걸 접어서 들고 올라갈 생각을 하니, 또 가지고 내려오는 게 걱정이었다.

직원분에게 옆에 살짝 두고 좀 봐달라고 하면 또 그 기계적인 찌푸림으로 안된다고 대답할까 봐 말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냥 ‘수리 중. 2층 화장실을 이용하세요’라고 붙어있는 화장실 문 앞쪽 잉여 공간에 유모차를 몰래 두고 올라왔다.


다시 또 후다닥 계단을 올라오는데, 아니.. 반대편 좌석 쪽 통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 멋진 뷰를 그제야 발견한 것이다.

조용히 잘 앉아 있는 애들에게 가서 말했다.

“ㅁㅁ아(첫째), 저기 바다 보여!”

“어디 어디?”

“저기 저기! 우리 저기로 가자!! “


애들과 자리 이동을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둘째가 앉은 아기의자를 밀고 다른 한 손으로 첫째를 잡고 이동했다. (드르르르륵- )

아이들을 앉힌 뒤, 나는 또다시 후다닥 원래 자리로 돌아가 음료와 짐을 챙겨 옮겼다.


오션 뷰 자리에서 또다시 평화의 순간이 시작됐다. 사진을 또 찰칵 찍었다.

 

뷰를 좀 더 잘 담고 싶어서 뒤로 나와 사진을 찍었다. 그때, 뒤쪽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의 아주머니 두 분과 눈이 마주쳤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묘하게 그 표정이 또 신경 쓰였다.

그 넓은 카페에서 나와 아이들이 제일 부산스럽긴 했다. 어른들만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나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두 분은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그냥 생각 없이 시선을 둔 것일 수도 있다.)


보통 애들을 데리고 다니면 어른들이 웃으면서 쳐다보거나 말을 건다. 특히나 아장아장 귀엽게 걷는 시기인 둘째는, 이맘때쯤 부쩍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내가 어쩌면 그런 친절한 시선에 익숙해진 건지도 모른다.


뭐 어쨌거나, 그렇게 평화의 순간을 즐기고 있는데..


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첫째가 컵의 2/3 정도 되던 한라봉 주스를 쏟아 버렸다. 쓰던 물수건으로 급하게 테이블은 닦았는데, 바닥에 흥건한 주스는 어떻게 치울 방법이 없었다.

나는 또 첫째한테 둘이 잠깐 있어봐 하고 1층으로 후다닥 내려갔다. 기계적인 반응이었던 그 직원한테 “저.. 죄송한데. 아기가 음료수를 쏟아서요. 좀 치워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하니 이번에는 아예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아 네 이따가 치워드릴게요”라고 한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오는데, 혼자 노트북을 하며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 나도 저렇게 카페에서 여유롭게 노트북 하고 그랬었는데…’


자리에 가 첫째에게 말했다. “이따가 카페 이모가 와서 이거 닦아줄 거야. 그때 죄송합니다- 하고 꼭 사과해야 돼. 알겠지?”

그러자 그때부터 첫째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계속 집에 가자며 달라붙고 보챘다.


나의 비자림 콜드브루는 반 정도가 남아있었다.

울상인 첫째,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 여유롭게 노트북하는 사람들


더 이상 평화를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나는 첫째를 달래며 마시던 음료수를 후다닥 들이켰다.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고, 아기띠로 둘째를 안고, 한 손으로는 쟁반을 들고 한 손으로는 첫째 손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아기의자를 밀을 손이 없었다. 쟁반을 테이블에 다시 올려놓았다. 들어온 지 20분 만이었다.



그런데 그때, 천사가 나타났다.


내가 부럽게 바라보던, 혼자 노트북을 하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그분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이거 쟁반 내려다 놓으실 거죠?”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움과 감동, 그리고 살짝 서러웠던 마음이 훅 올라와 어버버-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포근한 미소를 살짝 지어 보이며 쟁반을 들고 내려가시는 그 천사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괜히 첫째에게 말을 걸었다.

 “ㅁㅁ아, 착한 이모야가 우리 쟁반 들어주신대. 너무 고맙지? “


감사인사를 연거푸 했지만, 나의 고마움을 전하기엔 부족했다.



첫째 두 돌 때도 그랬다. 하필 제주도에서 돌치례를 맞은 첫째는 열이 내리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계속 징징댔다. 당시 비행기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 많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첫째의 발이 살짝 닿자 “아, 저기 아기 발 좀” 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첫째가 울 때마다 그 친구들이 여러 번 째려봤다. 비행하는 40분 내내 나와 남편은 죄인 같은 기분에 식은땀을 흘렸다.


드디어 비행기가 착륙하고 사람들이 나갈 준비를 하는데, 옆에 앉아있던 어린 친구가 다른 친구를 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야 네가 알려준 화이트노이즈 대박. 이거 없었으면 큰일 날 뻔-”


제주도 가는 비행기, 이때는 평온했다

얼른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힘들어하는 첫째를 안고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나가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때 옆좌석에 있던, 6-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 둘을 데리고 있는 엄마가 내게 말을 걸었었다. “에구.. 아기가 아픈가 봐요. 너무 울어서 힘드시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올라오는 걸 겨우 참았다. 그때도 카페에서 처럼 어버버-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애써 웃어 보이고 말았다.


정말 그날, 마지막 그분의 친절한 한마디 때문에 그래도 힘든 비행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생각지 못한- 아예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천사의 모습을 하고) 건네받은 따듯한 행동, 말 한마디가 순식간의 나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아, 맞다. 그래도 감사할 일이 많지. 참 감사하다.



제주의 스타벅스도, 22년도 제주발 비행도,

내게 천사 같았던 두 분을 더 오래 기억하고자 기록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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