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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Dec 28. 2023

마치며

제주 한달살기(23년 늦여름~)

첫째가 태어난 지 딱 3년이 되는 날, 제주 한달살기를 끝내고 올라왔다.


그렇게 기대하던 한 달이 지나고 난 지금은 마치 인상 깊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여운이 깊게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다.


정말 영화 한 편처럼 위기, 절정이 있었다.

남편과 제주 한달살기를 떠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무지막지하게 싸웠으며, 둘째는 4일 동안 열이 나며 돌치레를 했다. 어떤 한 주는 관광을 온 것처럼 매일같이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고, 어떤 한 주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집, 동네에만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비가 많이 왔던 첫 주에 지렁이를 많이 본 첫째는, 차 창문에 지렁이 가족을 그렸다. 마지막 주에는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예쁘다고 고른 오름 사진 스티커를 지렁이 가족 밑에 예쁘게 붙여놨다.

차에 타면 항상 신청곡도 요청했다.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틀어줘” (아빠의 최애곡을 같이 좋아하게 된 것)

그래서 ‘걱정말아요 그대’는 거의 우리 제주 한달살기의 ost가 되었다.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말들을 많이 했다.

가령 “오늘도 하늘 너무 예쁘다.” ”아~ 너무 좋다. “ “저기 구름 봐! “ 같은 말들.

첫째는 ”우리 바닷가 갈까? “ ”조개 잡을 거야 “ “당근 색깔 구름” 같은 새로운 말들을 했다.

마지막날에는 갑자기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 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있다 보니 남편과의 대화에서도 애들이 어쨌네 저쨌네 너무 귀여웠네 하는 말들을 많이 나눴다. (둘째는 아직... 대신 많이 뛰고 많이 웃었다.)


신나게 놀다가 애들이 차에서 낮잠에 들면, 차 시동을 끄지 않은 채로 주차하고 전화 두 대를 연결해 깨나 안 깨나 지켜보며 둘만의 카페 자유시간을 즐겼다. 첫 시도는 불안했는데 울음소리가 나면 차로 후다닥 달려가 애들을 내리면 그만이었기에, 두 번 세 번 또 즐겼다.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행복했던 그 대범한 둘만의 시간이 참 좋았다.


남편은 매일 저녁 술 한 잔을 했다. 대략 소주 50%, 맥주 30%, 막걸리 20%. 나는 반 정도는 함께하고, 반 정도는 따로 놀았다. 너무 어둑해서 아늑하게 느껴지는 제주도 집에서의 육퇴 시간은 뭘 하든 참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창문을 열고 초록 초록 풍경을 구경했다. 공기가 상쾌해서 웬만한 잠은 기분 좋게 깨워주었다.


가볍게 바닷가로 나가서 정자에 돗자리를 펴놓고 여유를 즐겼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남편은 맥주를 마시고 첫째는 요구르트를 마셨다. (둘째는 물..)


아이들은 맨발로 바닷가, 잔디밭, 시멘트 바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예쁜 풍경이 보이면 무조건 사진을 찍고 기록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을 내려놓기도 했다. 한여름 같던 날씨가 돌아갈 때쯤 선선해졌다. 여름에서 가을을 보냈다.


그리고.. 네 가족 모두 아주 새까맣게 탔다.



제주도에서 좋았던 것들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어떤 것들은 돌아온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것들을 많이 찾고 싶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느꼈던 좋은 느낌들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다.





이 글도 그런 의미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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