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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May 19. 2020

20대 때는 왜 항우에 더 끌렸을까

사기 인물 이야기(2) - 유방, 사람을 머물게 하는 인간적인 남자 

20대의 <초한지>와 마흔이 넘어 다시 읽는 <초한지>는 다가오는 '결'이 달랐다. 

특히 유방과 항우라는 인물이 그랬다.   


왜 개인적인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유방이 항우를 꺽고 초한쟁패의 승자가 됐단 말인가. 

항우는 명문가 집안의 자손으로 폭정을 일삼는 진나라를 멸하겠다는 의지가 남달랐다. '역발산기개세'라는 별명답게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싸움마다 승리했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항우는 끝이 좋지 않았으나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없었다"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평범한 영웅VS 비범한 범인(凡人)


반면 유방은 외상술이나 마시고, 걸핏하면 여자들에게 농을 걸던 한마디로 동네 건달이었다. 

말단 관리를 맡던 중 죄인을 호송하다 폭우때문에 일정이 꼬여 어부지리격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홍문의 연'에서는 번쾌와 장량에게 뒷처리를 맡기고 슬그머니 도망가기 바빴고, 항우보다 함양에 먼저 도착해서도 재물과 여자에 눈독을 들이다가 번쾌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항우는 평생 70여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단한번, 해하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결국 유방은 '내내 지다가' 단 한번의 승리로 천하를 거머쥔 것이다.   

항우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항우는 평생을 우미인(우희) 한 여인만 사랑했다. 

해하전투에서 사방이 초나라 노래소리가 들리는 중에(사면초가), 우희와 함께 불렀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저며온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뒤덮건만(역발산기개세)
시운이 불리하니 말(오추마)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구나
우희여, 우희여!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영화 <패왕별희>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유방은 사실 호색한이나 다름없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면 사족을 못썼다. 여치와 결혼한 후에도 버릇을 못고치고 척부인을 후첩으로 들였다. 척부인에 대한 총애가 얼마나 심했던지 유방이 죽은 후 태후가 된 여치는 그녀를 '인간돼지'라는 끔찍한 몰골로 만들어 복수했다. 


이제 막 사회로 진출하는 20대에겐항우가 당연히 멋있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 드라마 <초한지>. 가운데가 유방이다





하지만 사회생활 속에서 난 항우같은 인물에 지치고 상처받았다.  

알고 보니 사회에는 항우가 의외로 많았다. 

그들은 명문대학 출신의 '고스펙자'로 조직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과 비교하면 주변 사람들은 평범해진다. 불행히도 뛰어난 능력과 겸손은 공존하기 어려운지,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맹신하며 타인을 불신하는 일이 많다. 


항우 또한 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컸다.   

그의 말만 잘 들었어도 한나라 건국의 주역이 바뀌었을 지도 모를 최고의 지략가인 범증을 유방과 내통한다는 의심으로 쫒아내버리고 만다. 진평의 '반간계'로 범증이 제거된 뒤로도 항우는 인재를 모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에 의지했다. '설마 나같이 대단한 사람이 유방에게 지겠어?'라는 마음으로.  

계포와 종리매(종리매는 항우가 죽은 후 한신에게 귀의했지만) 를 제외하고는 항우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인 한신, 진평도 진작에 항우를 떠나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유방에게 귀의했다. 


유방 곁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신의 능력은 조금 부족해도 사람들과 허물없이 대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믿는 사람.

바로 유방같은 인물이다. 그리고 항우보다는 유방같은 사람이 더 좋다는 걸 알게됐다. 


유방은 패현 시절 함께 어울렸던 소하, 노관, 번쾌, 조참, 주발, 팽월, 관영, 하후영 등과 한나라 건국까지 함께 한다. 항우의 사람들은 줄어드는 반면 유방의 인적네트워크는 늘어나기만 했다.  


역사서에도 쓰여있지만 유방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늘 외상을 달아놓고 술을 마셔도 술집 주인은 유방에게 외상값을 재촉하는 일이 없었다. 유방만 왔다하면 동네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어 매상이 몇배로 뛰었기 때문이다. 

사서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저 유방의 호탕함과 유머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고 한다. 



유비가 '인'과 '의'로 사람을 모았다면 유방은 호탕함과 믿음이 장점이다.

실제로 유방은 신하가 실수해도 '그럴 수 있지'라며 넘어가는 일이 많았고, 그럴 수록 신하는 더욱 충성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지 못한 부하들을 엄중히 다스린 항우와 다른 점이다. 


한번은 이런 일화가 있다. 

유방은 위나라 무지의 추천으로 진평을 등용한다. 하지만 진평은 형수와 간통 등 행실이 좋지 못했다. 유방이 이를 지적하자 무지가 해명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그의 능력인데, 왕이 탓하는 건 그의 품행입니다. 효자의 행실이라해도 천하 쟁패를 가름하는 마당에 그게 얼마나 이득이 되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유방은 진평에게 원래보다 더 높은 중책을 맡겼다.

유방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었고, 한번 내 사람으로 받아들이면 의심하는 법이 없었다.

(한 건국 후 한신을 토사구팽시켰지만 이는 권력의 정점에 빠져든 인간의 자만심으로 약간은 다른 문제다)   

결국 진평은 '꾀주머니'라는 별명 답게 유방을 위해 수많은 지혜를 냈고, 승리를 한층 가깝게 해줬다. 


황제가 된 뒤 유방은 신하들에게 자신의 성공비결을 얘기한다. 

"책략에 있어서는 나는 자방(장량)에 미치지 못한다. 물자와 양식 등 살림살이를 챙기는데는 소하만 못하다.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전투에서는 한신을 당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을 잘 써서 그 힘을 잘 발휘할 수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2,200년이 넘은 지금 다시 항우와 유방이 대결한다해도 승자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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