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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Jun 05. 2020

호탕함까지 갖춘 리더라면
따를 만하지 않겠는가

사기 인물 이야기(3) - 춘추전국 세번째 패자, 초장왕

초나라 장왕은 춘추시대 세번째 패자다. 

패자는 중국에서 제국 혹은 제후간 맺어지는 회맹에서 맹주가 된 자를 말한다. 제국간의 모임을 주선할 정도라면 그만큼 나라가 강성했다는 뜻으로, 춘추시대를 통틀어 패자는 5명(제 환공, 진 문공, 초 장왕, 오 합려, 월 구천을 가리킨다. 일각에서는 진 목공, 송 양공, 오 부차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에 불과하다. 



절영지연, 갓끈을 끊고 연회를 즐기다


초 장왕은 어떻게 패자가 되었을까.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그 실마리가 있다. 


하루는 초장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걸 축하하기 위해 신하들과 연회를 열었다.

다들 즐거운 마음이라 술자리는 화기애애했다. 장왕 옆에는 그의 애첩이 술시중을 들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는데 애첩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애첩은 장왕에게 울며 불이 꺼진 틈을 타 누군가 자신을 희롱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녀는 그의 갓끈을 끊어놨으니 불을 켜서 신하들의 갓끈을 확인해보면 누가 범인인지 알수 있을거라고 처벌을 요청했다. 


하지만 장왕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 갓끈을 모두 끊어버리고 기분좋게 술을 마십시다"

이에 신하들이 모두 갓끈을 끊고 연회를 이어갔다.  


3년 뒤 초나라가 진나라에 전쟁을 나갔는데 

한 장수가 선봉에서 죽기 살기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장왕이 그를 불러 물어봤다. 

"나는 너에게 특별히 잘해준것도 없는데 어찌 그렇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움에 임하느냐"


장수가 말했다. 

"저는 3년전 연회때 죽을 죄를 지었으나 왕의 관대함으로 살아났습니다.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를바 없는데 이렇게 라도 은혜를 베풀고자 합니다"


여기서 절영지연(절영지회,絶纓之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초장왕 석상(출처-네이버)


사마천 <사기>가 위대한 점이 여기에 있다. 사마천은 인물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인물에 얽힌 일화를 도입부에 배치한다. 마치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듯한 묘사가 탁월하다.  


이 일화만 봐도 초장왕이 얼마나 호탕하고 포용력 있는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왕의 여인을 탐하다니, 왕의 권위가 대단했던 고대 중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중죄다. 애첩이 갓끈을 잘랐기에 불만 켜면 범인을 바로 잡을 수 있었는데도 장왕은 끝내 신하의 잘못을 덮어준다. 


절영지연은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해주면 반드시 보답이 따른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지만, 초장왕의 에피소드만 본다면 그가 굉장히 호탕하고 관대한 리더였음을 알게 된다.  





큰 뜻을 품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


장왕에 대한 일화는 한 가지 더 있다. 

장왕은 즉위한 뒤 3년 동안 정사는 뒷전으로 하고 밤낮으로 술과 향락에만 빠져살았다. 

그가 3년간 신하들에게 내린 명령은 오직 하나였다. 

"감히 누구든 나에게 간하려는 자가 있다면 죽을 각오를 하라"  


보다 못한 대부 오거(오자서의 조부)가 장왕을 찾아갔다. 장왕은 양 옆에 미녀를 껴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거가 말했다. 

"제가 수수께끼를 하나 내겠습니다. 새 한마리가 언덕에 앉아 있는데 3년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어떤 새일까요?"

장왕이 대답했다. 

"그 새는 3년을 날지 않았으니 한번 날면 하늘을 뚫고 솟아오를 것이요, 3년을 울지 않았으니 한번 울면 천하를 뒤흔들겠구나"


하지만 이후에도 장왕이 여전히 향락에 빠져살자, 이번에는 대부 소종이 장왕을 찾았다. 

"그대는 과인이 내린 명령을 모르는가?"

소종이 대답했다. 

"소신이 죽음으로써 대왕의 실수를 깨우칠수만 있다면 백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은 즉시 일어나 술자리를 파하고 정사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심을 달래고 조직을 정비하며 춘추 세번째 패자로 거듭났다. 

불비불명(不飛不鳴),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초장왕이 3년간이나 가무음곡에 빠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태세를 관망하기 위함이었다. 

누가 간신이고, 누가 충신인지 골라내고 때를 기다린 것이다. 간신들은 왕의 방탕함을 부추겼고 충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했다. 초장왕은 간신은 내치고 오거와 소종같은 충신을 기용해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 


초장왕이 얼마나 큰 뜻을 품고 있었는지 알수 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 3년간 불비불명하면 임기태만이 되겠지만 고대 중국 사회에서는 한번 왕에 오르면 죽기 전까지 수십년간 왕위를 지키는 것이 당연했다. 

장왕은 수십년의 강건함을 위해 3년간 침착하게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큰 일을 할 사람은 뜻을 숨긴채 남모르게 준비하지만, 일단 뜻을 펼치면 큰 일을 하게 된다. 



나에게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멋진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초장왕은 늘 1, 2위를 앞다툰다. 마음속에 큰 뜻을 품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아랫사람의 실수 쯤은 눈감아 주는 호탕함까지 갖춘 리더라면 그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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