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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Oct 04. 2020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1평

마흔 한살에 집을 구입했다. 서른에 독립했으니 꼬박 10년만이다. 

'영끌'이다 뭐다 해도 집장만 하기 힘든 세상에 누가 들으면 대단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내가 구입한 집은 지방에 있는 실평수 11평짜리 작은 아파트다. 방과 거실 구분이 모호한, 오히려 넓은 원룸이라고 부르는게 더 어울릴 주택이다. 


친구들과 만나면 집은 늘 화제다. 40대의 자연스러운 주제다. 사실 20대 시절처럼 친구들과 미래의 꿈이나 연애 같은 얘기들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오고 싶은데, 이젠 꿈같은 건 없어졌고 연애도 흥미롭지가 않은 나이가 됐나보다. 모두들 주식과 아파트 얘기를 한다.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고, 서울 아파트를 샀더니 벌써 몇억이 올랐다는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 집으로 오는 길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사려면 지금 이 집이 열개이상 있어야 한다니!

'비교는 기쁨을 훔쳐가는 도둑'이라고 루즈벨트는 말했지만, 친구의 아파트 매매값에 어쩔 수 없이 기가 죽어버린다. 도대체 나는 언제쯤 숫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학창시절에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등수에 집착했고, 직장에서는 승진순위에 연연한다. 연봉 액수와 내가 사는 집값에 따라 나의 어깨는 펴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찌됐건 등기부 등본에 적힌 내 이름을 보면 행복하다. 등기는 무주택자에서 드디어 탈출했다는 증명서다. 서울 아파트의 1/10밖에 안된다해도, 그마저도 은행 소유가 몇평이 있다는 사실은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거였구나. 종이 쪼가리 한장이 이렇게 큰 위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 1~2년마다 집을 보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이사 때마다 여자 혼자 있다고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이사짐 센터 아저씨들을 만날 필요도 없다. 

몇년 전 직장 근처 원룸에 살 때였다. 집주인이 빚을 못 갚아 건물 전체가 경매로 넘어갔다. 부동산은 계약서만 쓰면 끝나는 줄 알았던 나는 확정일자 같은건 애초 받아놓지도 않았다. 그제서야 부랴 부랴 알아봤지만, 이럴 경우 확정일자 순으로 보증금을 받는다는 얘기밖에 들을 수 없었다. 그나마 얼마 안되는 나의 전재산을 날릴 판이었다. 큰 맘먹고 집주인에게 전화했는데 집주인은 다짜고짜 나에게 심한 욕을 퍼부어댔다. 이게 바로 집없는 설움이라는 거구나.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은건 그때 부터 였다. 



30대에는 유목민처럼 옮겨다니는 삶을 좋아했다. 집이라는 존재가 삶의 올가미 같았다. 보통의 직장인이 전용면적 85제곱미터인 서울 소재 아파트를 사려면 월급 한푼 안쓰고 15년 가까이 모아야 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지. 그럴바에 난 15년동안 월급 펑펑 쓰며 살아야겠다.     



그런데 마흔살이 가까워오자 주변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 곧 마흔인데, 결혼도 안하고 집도 없이 뭐했어?"

지인들의 걱정 속에는 그나이 먹을 때까지 도대체 뭐했냐는 한심과 무시가 숨겨있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집 없는 설움이 뭔지 잘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신경꺼주세요' 

 


내가 집을 구입하자 나보다 더 좋아한 건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이제서야 기를 펴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 전까지 나는 부모님에게 부끄러운 존재였다니! 

"우리 딸이 철부지 인줄 알았는데 이번에 아파트까지 구입했더라구. 따박따박 월급도 받고 집도 있겠다 남자들이 줄을 섰는데, 내가 그냥 혼자 살라고 했어"  

실제로 남자들이 줄을 서지도 않고, 은행 아니었으면 집도 못샀을 상황인데도 딸이 집을 산걸 엄마는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던가보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면 바로 침실 끝이 보이는 11평의 아담한 아파트지만, 이 곳은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행복한 공간이다. 머그컵 하나도 오로지 내 취향으로만 채워진 이 공간은 온전히 나만의 세계이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천국이다. 이제 천정 조명을 바꾸고 벽에 페인트를 칠해도 집주인에게 허락받을 일이 없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이래서 다들 악착같이 집을 사려고 하는거구나.  


내 집이 생긴 뒤로 한가지 버릇이 생겼는데, 며칠 집을 비울 때면 집과 작별인사를 나눈다는 것이다. '일주일간 여행다녀오는데 그동안 잘있어'

누가 보면 우스꽝스럽다 생각하겠지만, 내 취향이 가득 담긴 집은 또 다른 나다. 나의 분신을 두고 가는 느낌이랄까.  



'시민불복종운동가' 헨리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2년간 홀로 살았다. 

 "홀로있음 속에서 자기 자신과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발견하지 못했다"

- 1852년 편지에서-


혼자 산다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해줄 자신만의 오두막이 필요하다. 그 집이 좋은 브랜드의 아파트거나 비싼 전원주택일 필요는 없다. 그저 작은 공간이라도 나와 친해질 수 있을만큼의 공간이면 충분하다. 

11평의 공간은 나에게는 가장 평온한 오두막이자, 내 삶의 가장 좋은 친구다. 그래서 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책상 한켠에 작은 트리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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