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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Mar 20. 2022

가정 호스피스를 시작하다

이제 희망을 가져도 될까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지 3일째.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는 엄마를 간호하고 싶다며 호스피스 병동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의사 말이 엄마 상태가 많이 안정되서 집으로 데려가도 된다고 하는구나"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엄마와 드디어 만나는구나. 


힘들게 선택한 호스피스 행이었다. 엄마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간 순간부터 우리의 일상은 멈췄다.  

우리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엄마 상태가 많이 안정되어 집에서 간호해도 된다니, 의사의 말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음성과 다름없었다. 이제 다시 희망을 가져도 될까



일반 병동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첫 날, 엄마는 오히려 이 낯선 환경을 좋아했다고 한다. 휴게실 때문이다. 소파만 덜렁 있고 삭막했던 일반 병동과 달리 호스피스 병동 휴게실은 큰 어항도 있고 푸릇푸릇한 화분들이 제법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진작에 이런 데로 옮기지 왜 이제왔냐고 아빠를 타박 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곳이 호스피스 병동인 줄 모른다. 통증을 완화해주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아빠는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휴게실에 데리고 왔다. 

그곳에서 엄마는 어항속 물고기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엄마는 옛날부터 물고기를 참 좋아했다. 

우리집 거실에는 늘 어항이 있었다. 엄마는 하루에도 몇번씩 어항 속 물고기들에게 말을 걸었다. 외출 후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물고기들이 잘 있는지 체크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집에 갈때는 반응이 없는 물고기들이 엄마만 오면 물속에서 요동을 친다. 

엄마는 그럴때면 이렇게 말했다. 

"물고기들도 자기를 이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안다니까"



엄마가 퇴원하는 날이다. 

한숨도 못자고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코로나로 인해 한명만 병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내가 들어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엄마를 보게 되다니.  

 

병실 문을 연 순간 앙상한 몰골의 엄마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두달 전에는 그래도 30kg 초반이었는데, 지금은 30kg도 안되보였다. 엄마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채 손만 휘휘 젓고 있었다. 

"아이고, 둘째 딸 왔능가" 

해골처럼 변해버린 엄마 얼굴을 만지며 소리내어 울었다. 

사실 밤새도록 연습했었다. 환한 얼굴로 엄마를 부르겠다고 다짐했지만 이토록 처참해진 엄마의 얼굴에 그저 눈물만 흘렀다. 

 

"엄마, 이제 집에 가자. 의사선생님이 엄마 다 나았다고 집에 가도 된다고 했어"

"이제 집에 간다고?" 

엄마는 기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한마디씩 힘겹게 내뱉었다. 두달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영양제로만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빠는 이미 짐을 다 챙겨놓고 있었다. 두달 동안의 병실 생활이어도 짐은 상당했다.  


환자복을 벗기고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올 때 입던 옷으로 갈아입혔다. 

담즙을 배설해야 하는 콧줄과 진통제, 영양제 이렇게 세개의 줄이 매달려있다보니 옷을 갈아입히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중에 하나라도 줄이 빠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환자복을 벗기니 엄마의 몸은 갈비뼈가 그대로 다 튀어 나와있었다. 눈물이 쉴새 없이 흘렀다. 그래도 엄마는 환자복을 벗으니 기분이 좋은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집에 가서 빨리 낫자"


 


 

집에서 간호한다는 의미는 호스피스가 끝났음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가정에서 호스피스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간호사는 가정 호스피스 주의사항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1. 즙이 배출되는 콧줄은 현재 엄마에게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임. 만약 콧줄이 빠질 시 즉각 병원으로 연락할 것. 하루에 한 두번씩 담즙 주머니는 비워줄 것.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담즙은 하루종일 배출된다는 걸 이때 알았다)  


2. 진통제 줄. 말기암 환자의 통증은 상상이상이다. 그래서 호스피스 즉 완화의료는 이 말기암 통증을 줄여주는데 목적이 있다. 통증만이라도 없어야 말기암 환자들이 마지막까지 평온한 정신으로 삶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진통제는 24시간 계속 투입되지만, 통증이 심해질 때는 별도 버튼을 눌러 투입량을 늘릴 수 있다. 진통제는 마약성분이지만, 말기암 환자의 경우 마약 중독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여러차레 투입이 가능함.  


3. 영양제 줄. 엄마는 음식 섭취가 안되기 때문에 영양제를 매일 넣어줘야 한다. 영양제는 하루에 한번정도 교체해줄 것. 


즉, 세개의 줄을 매단 채 엄마는 퇴원했다. 

임종 며칠 전 소변줄까지 차서 결국 네개가 됐고, 이 네개의 줄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 몸에서 뺄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나오며 엄마는 힘든데도 간호가 한명 한명에게 "고맙습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분이다. 사소한 친절에도 늘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셨다. 그래서 엄마 주변엔 늘 사람들이 많았다.  


집에 오며 엄마는 창밖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입원할때만 해도 쌀쌀했던 날씨는 따뜻한 여름이 됐고, 차로에는 울긋불긋 꽃이 피어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 듯이 "진짜 집에 가는거야?"며 몇번이나 더 물어봤다.  

"응. 드디어 우리 집에 가는거야. 집에 가니 너무 행복하다 그치?"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와 이별하기 58일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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