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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Jul 18. 2022

처음으로 엄마를 위한 삶을 살다

생각해보니 이때가 처음이었다. 내 인생에서 엄마만을 생각하며 살았던 시간은.

40년이 넘게 살아오며 난 이기적 이게도 내 행복만을 생각했고, 내 기쁨만을 쫓았었다.

오롯이 엄마를 위한 시간은 단 58일간의 호스피스 기간뿐이었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往而不可追者年也(왕이불가추자년야)

去而不見子親也(거이불견자친야)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네

한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가시면 다시 뵐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이시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유랑하다가 한 남자가 몹시 슬퍼하며 울고 있는 걸 봤다. 주나라에 사는 '고어'라는 사람이었다.  

공자는 그에게 슬피 우는 까닭을 물으니 고어가 대답했다.

"첫째는 젊었을 때 학문을 좋아하여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친 것이요, 셋째는 벗과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끊은 것입니다"

고어는 이렇게 말하며 마른나무에 기댄 채 죽고 말았다.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자식은 결국 뒤늦은 후회를 하고 만다.


  



엄마를 집으로 모셔온 그날부터 우리 생활의 중심은 엄마였다.  

먼저 집 배치를 바꿨다. 

30년 가까이 산 집이라 구석구석 엄마의 손길이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아마 엄마는 당시 희미한 정신으로도 집 고추장은 어디에 있고, 금반지는 어디에 숨겨놨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익숙한 이 공간은 이제 엄마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장소가 됐다.

좀 더 환자에게 편안한 환경으로 바꾸기로 했다.  

 

눈부신 형광등 대신 엄마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간접 조명으로 바꿨고  밤에는 아예 불을 켜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혹시나 살이 쪽 빠진 얼굴을 보고 상처받을까 봐 집안의 거울을 다 치웠다. 거실에 나올 때 물론 부축하긴 하지만 넘어지지 않도록 방문턱도 없앴다. 근육이 다 사라져 작아진 엉덩이에 맞춰 어린이용 변기커버도 씌었다.

엄마는 옛날부터 목욕을 좋아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매일 샤워를 해야 잠을 잘 정도였다. 환자니까 좀 덜 씻어도 된다고 말해도 듣지 않았다. 깨끗한 게 좋다는 것이 엄마의 설명이었다.

말기 암이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예 이동식 욕조를 안방에 들여놓았다. 몸에 진통제 등 네 개의 호스가 연결되어 있어서 가급적 샤워는 자제하라는 간호사의 말에도 엄마는 기어코 목욕을 원했다.

목욕시간이 되면 언니, 나, 아빠 세명이 달라붙었다.

한 명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호스를 잡고 한 명은 엄마를 부축했고 그 사이 한 명은 비누칠을 했다. 목욕을 다 끝내면 엄마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말은 못 했지만 엄마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거다.

'내 평생 이런 호강은 처음 받아보네'


한 번은 목욕하다가 호스가 빠지는 일이 생겼다. 그것도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담즙 배출기였다. 콧줄로 연결되어있는데, 잠깐의 실수로 콧줄을 잡아당기고 만 것이다.

담즙 배출이 안되면 엄마는 금세 녹색 구토를 해댄다. 담즙은 무엇을 먹지 않아도 간에서 쉴 새 없이 만들어진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담즙이 담관을 타고 내려오지만, 엄마처럼 담도암 환자는 담즙 배출이 어려워 호스를 사용해 인위적으로 빼줘야 한다.

다행히 몸속에 고정한 부위까지 빠진 게 아니어서 다시 조심스럽게 콧줄을 콧속으로 넣긴 했지만, 그때 고통스러워하던 엄마를 보며 절대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매일 아침 눈뜨면 엄마한테 달려갔다.

"엄마, 오늘은 기분이 어때?"

"엄마, 뭐 보고 싶은 거 있어? <미스터 트롯>틀어줄까?"

"엄마,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하루 종일 엄마 엄마, 엄마 하며 쉴 새 없이 물어보고 엄마가 혹시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닐까 표정을 살폈다. 음식물 섭취를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 말들은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다.

내가 집에 올 때 울적해있으면 엄마는 밖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감기에 걸린 거냐며 이마를 만지기도 하고, 체한 건 아닌지 등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면 주방에서 맛있는 김치찌개 냄새가 흘러나온다. 엄마는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냉동실에서 두툼한 돼지고기를 꺼내 뚝딱 김치찌개를 끓여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럴 때면 난 퉁명하게 대답했다. "그냥 나 좀 내버려 둬"


그때 한 번만이라도 엄마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 나 괜찮아"라고.

엄마를 위해서 그 말 한마디 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엄마 손을 잡으면 엄마도 내 손을 잡았다. 말을 안해도 알 수 있었다. 나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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