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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000미터에 호수가 있다

실크로드 여행 - 청해성 시닝

by 봄날의여행

실크로도 첫 도시는 청해성(칭하이성, 淸海) 시닝(西宁)이다.

시닝은 시안(서안)에서 고속열차로 5시간이면 도착한다. 땅덩이가 넓은 중국에서 5시간은 거의 옆 동네 가는 수준이다. 한달 반 동안 입고 쓸 양만큼의 짐을 챙겨 시안북역으로 향했다. 배낭은 무겁지만, 생애 첫 실크로드에 대한 기대로 어느 때보다 몸이 가볍다.


시안을 벗어나자 기차밖으로는 드넓은 티베트 고원(칭짱고원)이 나타났다. 윈도우 배경화면의 실사판같은 푸른 목초지다. 티베트 고원은 청해성과 시짱자치구(티베트)사이에 있는 광할한 고원으로, 한반도의 27배나 된다. 그렇다보니 가도 가도 고원이다. 마치 밤길을 따라오는 달처럼 창밖은 티베트 고원이 계속 따라왔다.

서역의 풍경은 지금껏 상상했던 중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세상의 모든 풍경은 중국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 이는 서역풍경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낯선 풍경에 한없이 빠져있다보니 어느새 시닝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시닝행 기차 밖 풍경



시닝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놀란 모습은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시안에서 많이 보지 못했던 티베트인과 위구르인들이 제법 많았다. 거리를 걸으면 북경어보다 혀를 더 많이 굴리는 낯선 언어가 들려왔다. 아마 티베트어나 위구르어일것이다. 그러고보니 기차에서도 북경어 뒤에 비슷한 언어의 안내방송이 들렸던 듯 하다.


청해성은 시짱자치구와 신장자치구와 붙어있다. 그래서 티베트, 몽골족, 위구르족 등이 절반이 넘는다.

옛날 이 지역은 강족들의 터전이었다. 강족은 티베트인들의 조상격이다. <삼국지> 후반부의 걸출한 영웅인 강유장군도 강족출신으로 알려져있다. 현재 중국 땅덩어리의 절반은 강족을 포함해 여러 소수민족들의 땅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 소수민족들이 중국에 흡수되지 않았다면, 지금 중국 대륙면적은 세계 4위가 아니라 10위쯤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야시장골목인 모자지에(莫家街)에 들렀다. 두툼한 양꼬치와 맥주를 주문했더니, 꼬치사장이 지역 맥주를 먹어보라고 권한다. 주문했더니 왠 식용유 병 같은 곳에 맥주를 가득 담아 내준다. 보기와 다르게 술술 잘 넘어가는게 맛이 제법 좋다. '페이창 하오(非常好, 너무좋다)'를 연실내뱉으며 맥주에 취하고, 실크로드에 취한 첫날 밤이었다.



시닝의 이슬람사원, 동관청진대사
야시장에서 먹은 지역맥주와 맛좋은 꼬치




아침 7시에 시닝기차역으로 향했다. 차카염호(茶卡鹽湖)에 가기 위해서다.

남한의 7배나 되는 청해성은 유명한 호수가 두개 있다. 바로 차카염호와 청해호(淸海湖)다.

두 곳다 이동이 불편해서 두개를 묶어 여행하는 일일 투어가 많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무척 많다. 느긋해져도 되는 여행자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천천히 호수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차카염호까지는 버스와 기차가 있지만, 여름에 간다면 특별열차를 타볼 수 있다.

시닝역에서 아침 8시경 출발해 차카역에는 12시쯤 도착한다. 이 기차는 차카역에서 정차해 있다가 오후 6시경 다시 시닝으로 돌아온다.

침대열차에 누워 창 밖을 바라보면 시안에서 시닝으로 올때 봤던 티베트 고원보다 더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너무나 황량하고 거칠어서 낯선 세계에 불시착할 듯했다. <은하철도999>처럼 이 기차가 우주 속을 방황하다 낯선 행성에 내려주면 어떡하지.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차카염호까지 가는 기차밖 풍경



침대열차에 누워보는게 묘미



4시간만에 차카역에 도착했다.

차카역은 이슬람 사원처럼 둥근 돔 형태다. 중국에서 특이한 기차역을 꼽으라면 아마 차카역을 떠올릴 정도로 독특하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노란색 기차역은 황량한 주변 풍경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기차역에 내려 5분만 걸어가면 차카염호다. 기차역에서 이토록 가까운 호수라니. 차카염호는 해발 3,059m에 있는데, 그러고보니 이곳까지 기차가 온것도 참 놀랍다 싶다.




차카역





으리으리한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두가지 선택에 놓인다.

호수까지 걸어서 갈 것인가, 아니면 꼬마열차를 탈 것인가.

'뭘 그런걸 고민해'라고 말하는 듯 바로 눈 앞에 꼬마열차가 매력을 뽐내면서 지나간다.

동화에서 튀어나오는 듯 앙증맞은 모습이다. 이 기차를 타고 하늘 호수를 달릴 수 있는 기회라니! 좀 비싸지만 티켓을 구입했다. 열차는 정겨운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호수를 관통하며 천천히 달렸다. 눈 앞으로는 호수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워낙 넓다보니 중간 중간 간이역도 있고, 승객들은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호수위를 달리는 꼬마열차




호수는 파란 하늘이 그대로 반사됐다. 그래서 차카염호를 '하늘의 거울'이라 부른다. 하늘이 호수이고, 호수가 곧 하늘이었다. 마치 <호접몽(胡蝶夢)>처럼 경계가 사라져버렸다.

눈꽃으로 가득한 백색 세상이다. 그 이유는 차카염호가 소금호수이기 때문이다. 호수 바닥을 들여다보면 하얀 소금이 그대로 묻혀있다. 호수 주변은 햇빛을 머금은 소금들로 빛났다. 이곳에는 중국 전체 인구가 몇십년을 먹을 수 있는 소금이 있다고 한다고 하니, 호수 규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겨울 왕국에 온 엘사라도 된 듯 호수 이곳 저곳을 뛰어다녔다. 호수에 앉기도 하고 눕기도 했다. 뛰기도 하고, 뒷짐지고 여유롭게 걷기도 했다. 햇살은 뜨겁지만 바람은 청량했다. 하늘이 가까워 두손을 뻗으면 손끝이 구름이 닿을 것만 같았다. 잊고 있었지만 이곳은 해발 3천미터에 있는 호수다. 비행기가 이륙해서도 몇분 뒤에나 올라올 수 있는 곳을 두발로 뛰어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가 않는다.


주변에 붉은 색 옷을 입은 중국 여성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하얀 풍경의 차카염호에서 인생사진을 남기려면 붉은색 옷을 입는게 포인트라고 한다. 준비를 못한 사람들을 위해 붉은색 옷을 빌려주는 대여소까지 있었다. 확실히 붉은 옷을 입은 여인들의 모습은 순백의 호수와 무척 잘 어울렸다. 나도 갈등은 됐지만, 여행 초반부터 짐을 늘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차카염호에서 인생사진은 남기지 못했지만 두고 두고 떠올릴 인생풍경만큼은 남겨왔다.

난 오늘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하늘 호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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