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끊었다. 둘째를 가지면서 아메리카노에 입문했기에 9년 동안 마셨던 커피를 절대 못 끊을 줄 알았다. 그런 내가 커피를 끊었다.
첫 번째는 작년 코로나에 걸리면서 커피 맛이 이상해서 한, 두 달 끊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완전히 끊은 게 아니고 모임 자리가 있으면 커피를 종종 마시곤 했다. 그러다 입맛이 돌아와서 커피를 다시 마시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커피를 완전히 끊은 건 꼭 한 달 전이다. 매일 아침 그냥, 의무적으로 눈뜨면 커피를 내렸다. 그걸 마셔야 잠이 깬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하루를 버틸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서 졸리면 또 마셨다. 적게 마신 날은 하루에 한 잔, 많이 마신 날은 2~3잔이 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커피가 맛있었고, 입 안에 퍼지는 깔끔함이 좋아서 계속 마셨다.
그러다 한 달 전 아침, 계속 느끼고는 있었지만 커피가 너무 맛이 없었다. 캡슐 커피를 마시는데, 기계가 너무 익숙해서 맛이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쓴 걸 왜 마시고 있을까?'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먹던 커피를 그대로 내려놓고 그때부터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어마어마한 두통이 찾아왔다. 금단현상이라 여기고 두통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틀 동안 두통약을 6알 정도 먹은 것 같은데도 소용이 없었다. 그만큼 그동안 마셔온 카페인에 대한 저항이 엄청나다는 걸 알았다. 이틀 동안 겪은 두통은 정말 일상을 파괴할 정도여서 일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버티다 도저히 안 되겠기에 이틀째 저녁 되는 날에 혹시 하는 마음에 커피를 내려서 마셨다.
여전히 맛은 쓰고 맛이 없었는데, 입안은 익숙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걸 경험하고 나니 카페인이 무서웠다. 아무리 두통약을 먹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커피 한 잔에 싹 사라지다니!
다음날도 노심초사하며 두통이 올라오는지 살펴봤는데 없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게 한 달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수면의 질이다. 저녁에 잠을 자도 푹 잔 느낌이 없었는데, 정말 잘 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오후에 종종 오는 졸음까지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때는 10분 정도 수면을 취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공원 산책을 했더니 정말 한동안은 밤 10시면 잠이 와서 일찍 잤다. 일찍 자고 평상시처럼 일어나니 피곤함이 덜했다. 정 피곤하면 비타민을 먹었고, 그렇게 한 달을 지냈는데도 견딜만했다.
정수기 옆에 항상 나와 있던 커피 머신을 찬장으로 넣었다. 그리고 손님이 올 때만 꺼낸다.
그렇다고 아예 커피를 안 먹는 건 아니다. 아메리카노는 끊었지만 종종 매운 음식을 먹은 뒤에 믹스 커피를 한 잔씩 한다. 커피를 끊으면서 불편한 점 한 가지는 카페에 갈 때 음료를 고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거다.
항상 카페에 가면 뜨거운 아메리카노냐 아이스 아메리카노냐를 고민했었는데, 이젠 커피가 아닌 뭘 마실 건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다 또 커피를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커피를 끊을 줄 몰랐던 것처럼 다시 커피를 마시게 될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커피가 없어도 나름 괜찮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잘 견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