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리는 맘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조승희'를 검색했다. 그때가 2002년이니까 벌써 20년이나 지났는데 언니가 나를 기억이나 할까? 심지어 겨우 한학기 다니고 다른 학교로 떠났던나를?2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을 터인데. 심지어 난 떠나온 사람이니까 언니를기억하는 걸 지도 몰라.언니가 누구냐고 하면 어쩌지.흠, 근데 아무리생각해도 그정도면 언니가 나를 기억 못 할 정도는 아니야. 기억 못 하면 별수 없지 뭐.
내겐 용기가 필요했다. 연애하는 청춘마냥 설레는 맘으로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고연락이 닿았다. 언니는 반갑게 내 연락을 받아주었고 심지어 공연 때 홍보강연도 안듣게 해 주었으며나 포함 내 지인들의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것도맨 앞자리로.....
20년 전 내 추억의 한 페이지를 꺼내 본다.종합대 시절은 4개월 남짓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젊은 시절 청춘의집합소같은 소중한 시간으로 내겐 기억되어 있다. 그리운 내 스무 살 시절. 2002년 월드컵 경기마다 붉은 티 입고 대학후문에서 응원하던 날들. 내 미래에 대한 고민들로 방황하고 고뇌하던 시간들.노래패에 들어가 투쟁하고 노래하던 나날들.센 말투에 놀랐었지만 그만큼이나 뼛속까지 따뜻하던 마음씨의 광주사람들.그 따땃했던 인간미는 왜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20년 전 언니와 나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대학후문에서 함께 밥을 먹고 스티커 사진을 찍던 신입생 셋. 그랬던 우리가 이제는 교사, 개그우먼이 되었고 주영이는 아마도 간호사가 되었을게다.(내가 반수 해서 학교를 옮기자 다음 해 휴학 후 수능을 다시 보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불투명하고 불완전했지만 즐거웠던 그 시절. 나는 언니를 참 좋아했었다. 언니는 지금도 웃기고 말을 잘하지만 그때도 유쾌했고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었다. 난 반수 후 결국 다른 대학에 가게되었지만 다른 친구를 통해 언니 소식을 묻곤 했었고, 개그우먼 공채에 합격한 언니와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도 없이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살았다,
언니를 만나기 전날, 선물로 줄 모주를 사고 주문제작한 피켓을 찾아오면서 어찌나 설레고 즐겁던지. 내가 연애할 때도 이런 기분이었나? 기억나지 않는 기분이었다. 밤엔 커피를 마신 것처럼 두근거려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서랍 속에 있는 20년 전의 나를 꺼내보러 가는 기분이었달까.
언니는 무대 위, 나는 관객이 되어 그 공연을 감상한다.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을 되돌아갔다가 다시 현실로 온다. 꿈인가 싶기도 하다.
올해로 내 나이 마흔. 내 인생의 중간지점 스무 살에 인연이 닿았던 승희 언니. 그리고 딱 그만큼 20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녀의 공연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20년 동안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구나. 길이 정해진 특수학교와는 다르게 종합대를 졸업하면 삶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는것. 대학동기들과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기에 생경한 느낌이었다.
각자 다른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 우리 20년 뒤에 다시 마주칠 수 있겠지. 언니가 유재석 같은 유명인사가 되어 나 따위 만나주지도 못할 만큼 바쁜 사람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서운하지 않을 테다. 나 역시 그에 버금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기에.
언니의 자유롭고 열정적인 삶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린다. 삶의 모습은 다양하거늘. 그래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어? 난 오늘도 언니덕에 용기를 한 점 더 얻었다.
조승희!! 분명 몇 년 뒤엔 대스타가 될 것이야! 난 믿어 의심치 않아. 멀리 있지만 항상 응원할게!! 언니 화이팅♡나도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