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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바람 Sep 06. 2023

나의 오랜 벗 캐논 60D 카메라에게

< 글쓰기 강좌의 그 첫 번째 과제>- 사물에게 글쓰기

  안녕? 너무 오랜만이야. 한때는 나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았던 너를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해 두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니?

  최근에 내가 읽은 책에서 이렇게 묻더라. 내 인생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었던 소유물이 무엇이었는지. 답을 찾기 위해 내 서른아홉 인생을 돌아보았어. 예상과는 다르게 별 생각이 나지 않았어. 먼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중에 가장 비싼 것, 내 집을 마련했던 때가 떠오르더라. 물론 그때도 벅찬 감동이 있었지. 하지만 그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주었던 건 내 자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집도 아니었고, 최근 나를 청소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던 로봇 청소기도 아닌,  바로 너였어. 내 집을 마련했을 때보다 너를 내 손에 넣었을 때 더 행복했더라.

  너와 함께 어디를 갈지 궁리하며 미소 짓던 나날들. 뷰 파인더를 통해 보던 따뜻한 햇살과 내 마음을 담은 장면들. 그리고 결과물을 보며 추억하던 시간들. 사진은 그 순간을 마음속에 영원히 저장해 주더라. 그때의 기억은 두고두고 남아 추억의 상자를 열어 볼 때마다 내 마음을 뜨끈하게 해 주지. 결국 행복이란 소유의 크기에 있지 않음을 다시금 깨달았단다. 너는 그 어떤 으로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야. 나의 30대 초반. 내가 가장 행복했었던 그때.  추억들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아. 치매 환자들이 이런 기분일까?

  내가 월급을 받고 처음 캐논 40D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 난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어. 너는 40D가 아닌 60D이지 않냐고? 나에게 40D와 너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 어쩌면 너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할지도 모르겠어. 너는 내가 한 때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위해 구해주었던 카메라였고, 네 덕분에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으니까. 넌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을 함께 했잖아.

  그랬던 너였는데... 너를 내가 너무도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더라. 인도, 터키, 그리스, 필리핀, 호주, 말레이시아, 일본, 태국, 홍콩... 우리 항상 함께 했었는데... 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너의 무게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거든. 그래서 우리는 늘 함께 일수 있었지.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는 많은 일들이 내 맘처럼 되지 않았는데 속상하게도 너와 함께 하는 일도 그랬어.

  난 이의 백일사진, 돌사진도 너와 함께 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네가 그렇게 무겁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말이야. 그때는 아이가 걷기 전이었거든. 우리 아들이 자라면서 너만 보면 자꾸 앞으로 와서 너를 만지고 막더라. 협조적인 모델은 더더구나 아니었지. 작은 몸을 어찌나 날렵하게 움직이는지.  결과물은 항상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어.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너를 멀리하게 된 것 같아. 어차피 함께 하더라도 넌 방치되었고 아들 짐 챙기랴 아들 안아주랴 너의 무게감은 배가 되게 느껴지더라. 미안해. 네가 싫어져서 그런 건 아니야.

  휴직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엄마들끼리 하는 사진 모임을 나가게 되면서 다시 깨닫게 되었어. 난 너랑 떠나는 여행을 제일 좋아한다는 걸. 다시 너를 데리고 갈까도 고민을 해보았는데 요즘 새로운 친구들은 너무도 가벼워서인지, 아니면 이제는 늙어버린 너의 기능 탓인지 자꾸만 내가 너를 외롭게 하네. 내가 만약 새 친구와 친해지더라도 서운해하지는 않았으면 해. 그렇다 하더라도 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임에는 변함이 없거든. 알겠지? 밤이 깊어서 오늘은 이만 쓸게. 그래도 조만간 한 번쯤은 너랑 여행을 떠날 터이니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고. 조만간 우리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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