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이 내 준 숙제니까 2번씩은 써야지. 그런데 아직 잘 못 쓰니까 더 써보면 어때? "
" 싫은데... 다 썼으니까 이제 레고하고 놀 거야!!"
" 너 그러다 시험 못 봐도 괜찮아?"
" 엄마가 최선을 다하면 괜찮다고 했잖아! "
"......"
내일은 아들의 첫 받아쓰기 시험이다. 내 시험처럼 긴장되고 걱정되는데 낮은 점수를 받아올 것이 예상된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우리 아들은 의지의 한국인. 자기 의지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아이이다. 몇 번 더 써봤으면 했는데 도.. 저 히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저대로 학교에 가서 내일 시험을 본다면 50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
다음날 오후, 아들은 하교 후 집에 왔다.
" 아들! 오늘 별일 없었어?
"응."
" 받아쓰기는 어떻게 됐어?"
"........"
" 50점은 맞았어?"
" 아니, 20점. 엄마가 열심히만 하면 괜찮은 거라고 했잖아."
"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
아니 세상에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로서는 받아본 적도 없는 기가 막힌 점수를 그것도 우리 반 애도 아닌 내 아들이, 다른 시험도 아닌 받아쓰기에서 20점을 받아왔다니. 충격적이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학급의 한 친구가 메롱을 했다는데 받아쓰기 20점 맞은 탓인지 그냥 지나가며 장난을 친 것인지 궁금했던지라 왜 메롱한 거냐고 되물어도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는 것이 아마도 받아쓰기 탓이겠지?
틀린 문제를 3번씩 써가는 숙제를 하던 아들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냈다.
" 다 찢어버릴 거야!!!! "
" 아니 왜 그래? 너무 화가 났어?"
" 다 찢어버리고 싶어!!"
" 네가 너무 화가 나는 건 엄마가 이해해. 그런데 그렇다고 시험지를 찢는 건 바른 행동은 아니야. 화가 난다고 모두 그렇게 행동하진 않지. 너 그 시험지 찢어진 거 학교에 다시 가져갈 수 있겠어? 선생님이 보시면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아?"
이성을 찾은 아들은 시험지를 찢겠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씩씩대고 온갖 짜증을 부리며 틀린 글자를 3번씩 썼다. 내가 주방일을 하는 사이 너무도 빨리 숙제가 끝나서 벌써 다 썼냐 했더니 아니 글쎄, 문장에서 정말 틀린 글자만 한 자씩 세 번을 반복해서 쓴 것이다. 너무 웃겼지만 웃을 수는 없었다. 하긴, 이런 숙제가 처음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이건 잘 못쓴 거니 다시 써야 한다는 내 말을 들은 아들은 다시 짜증을 냈다. 다 맞은 친구는 안 써도 되는 거냐며 물으며 더 짜증을 냈다. 이걸 왜 또 써야 하냐며 화가 나서 큰소리로 소리 지르고 싶다고 했다. 여긴 집이라 소리 지르면 안 되니까 좀 있다 마트 갈 때 엄마차에서 소리치는 게 어떨지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트에 다 도착해서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소리 질러도 돼."
"엄마 귀가 아플 텐데? 나 엄청 크게 소리칠 거야!"
"아 그럼 엄마가 내릴 테니까 실컷 소리 질러."
하고는 차에서 내렸는데 어찌나 우렁찬지 그 목소리가 차 밖으로도 들렸다. 이 녀석 진짜 화가 많이 났구나. 그 점수받고 화 안 내고 덤덤한 것보단 낫지 싶었다.
"이제 다 풀렸지?내려. 장보러 가자."
"아니.아직이야. 더 소리 지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