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글쓰기강좌-5th 과제 : 취미에 대해 쓰기>
요즘의 나에게 취미를 말하라면 독서와 사진촬영 두 가지를 얘기할 수 있다. 난 배낭여행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결혼 후 내 삶을 비추어 볼 때 여행을 내 취미라 말하기는 시간 투입면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본다.
가만 생각해 보면 독서는 내 삶에서 가장 오랜 벗이었다. 사진은 취업을 하면서부터 시작했으니 책이야 말로 내가 어릴 때부터 내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비교해 본다면 사진은 책에게 감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것이다.
요즘에야 곳곳에 도서관이 있어 쉽게 책을 빌려볼 수 있고 상호대차 및 예약 등의 책 대여 시스템도 워낙 잘 갖춰져 있지만 그 시절엔 그게 불가능했기에 어린 시절의 난 항상 책 읽기에 목말라 있었다. 그렇다고 여유가 넘쳐 전집을 턱턱 사주지도 못하는 집이었기에 난 옆 집에 가서 그 집 책을 모두 읽곤 했었다.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자기 자녀들도 안 보는 책을 옆집 딸내미가 와서 다 읽는 그 꼴을 보는 그 집 엄마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싶다.
초등학교 때는 서점 사장님이 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살던 소도시의 시내 중심에 가장 큰 서점이 있었다. 지금은 그 역할을 인터넷 서점이 메우고 있지만 그 당시 대부분의 도시에는 시내 가장 노른자땅에 큰 서점이 자리했다. 그곳의 사장님은 책을 원 없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서점 사장님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고 서점주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걸 보면 어린 나이임에도 자본주의 논리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책도 실컷 보고 돈도 벌고 꿩 먹고 알 먹고처럼 보였던 게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안경을 쓰게 됐는데 안경 맞추러 갔을 때 책을 꿩 같은 자세로 봐서 눈이 나빠졌다고 아빠가 얘기했던걸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책벌레였던 게 분명하다.
5학년, 전교 1등 했을 때도 선물로 책을 사달라고 하고 엄마와 함께 서점으로 달려가기도 했었다. 시험 잘 봤으니 좋은 거 받았냐는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도 내 대답은 항상 '책'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내일 시험을 앞두고 책상 앞에 앉아 책장의 책을 꺼내 한달음에 한 권을 다 읽어내던 기억. 그 시간에 읽던 책은 어찌나 달콤하던지 어쩌면 시험공부가 하기 싫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시험을 앞두고 엄마 눈을 피해 도둑처럼 숨어 책 읽던 시간은 꿀맛이었다. 여러 번 읽었던 책이었는데도 참 재미있었다.
그러던 내가 중고등학교 때는 초등시절에 비해 책을 멀리했었다. 성적도 그만큼 내려갔었고 공부를 왜 해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과서를 의미 없이 외우는 학교 공부는 배워도 쓸모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삶은 어디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하는 질문들로 내 머릿속은 가득했다. 그 답은 책 속에서도 찾을 수 없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철학 관련 책을 읽었으면 됐을 터인데 당시의 나는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에 빠져 있었으니 그 속에서 답을 찾을 리 만무했다. 그 질문들을 어른들이 아닌 주변 친구들에게만 하니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구박받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때 읽었던 류시화의 책은 인도여행을 꿈꾸게 하였고 2010년 즈음 난 그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그러고 보니 책은 내 삶을 지배할 만큼의 영향력을 지닌 존재이다.
다시 책을 가까이하게 된 건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난 힘든 일이 있으면 책 속에서 답을 찾았다. 해결되지 않는 숙제들이 생기거나 힘들 때 읽는 책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책 속에 들어가면 내가 마주한 현실의 문이 닫히고 책 속의 세상이 열린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현실 속의 시름을 잊고 편안해지니 그야말로 다른 세계였다. 그렇게 책 속에 빠져 지내다 보면 세상 속 고민들이나 실연의 아픔도 잊고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온 나를 발견하곤 했다. 때론 책 속에서 나의 문제점을 찾거나 깨달음을 얻고 반성을 하기도 했다.
다만 탐독하는 책의 종류는 내가 나이들어가며 함께 변했다. 어린 시절은 문학 책을 주로 읽었고 입시를 준비하던 학창 시절엔 소설류와 책이 아닌 신문 사설을 주로 읽었다. 20대부터는 자기 계발서, 에세이를 주로 보았고 요즘은 투자, 육아, 교육 관련 서적을 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그중 단연 비중이 높은 책은 투자와 경제에 관한 것 들이었는데 나의 심한 편독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생겼다.
올해 휴직을 하면서 독서모임 두 개를 시작했는데 한 개 모임은 경제 및 투자서를 읽는 모임이고 또 다른 모임은 문학과 비문학을 번갈아가며 읽는 모임이다. 하루빨리 학교를 탈출하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했던 나는 문학을 읽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문학과 비문학을 번갈아 읽는 모임은 하다가 봐서 그만두던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읽기 싫어하며 숙제를 해치우는 기분으로 심드렁하게 집어든 책들에서 난 여러 번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었고 내 마음속 깊은 곳을 흔드는 감동을 받았다.
여러 독서가들이 얘기한 것처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통찰력을 갖게 해 주었다. 이를 통해 책에 대한 프레임이 바뀌었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으며 남편에게도 인문학 책을 권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오랜 시간 꿈꿔왔던 거실 서재화의 꿈을 작년에서야 이루었는데 이게 꿈을 이뤘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거실의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은 내 책이 아닌 아들의 책이기 때문이다. 거실에 티브이 대신 책장을 두어 거실 한 면 가득 책인데 그곳에 내 책은 거의 없다. 슬프게도 내 책은 어두컴컴한 거실장 한편을 메우고 있을 뿐이다.
남편은 나보고 아이 책 사주면서 당신이 더 좋아한다고 하는데 어릴 적 채워지지 않았던 책에 대한 내 욕심을 채우고자 아들 핑계를 대며 책을 산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안방으로 숨은 티브이 덕에 가족들이 책 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들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소파 한쪽 모서리 쿠션에 기대어 내 자리를 차지하고 책 보는 아들을 보면 흐뭇해지도 한다. 근데 거긴 원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인데 자꾸 아들과 신랑이 번갈아가며 차지하는 것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들이 자라서 거실의 책장이 알록달록한 책들 대신 내 책으로 가득 차는 날이 온다면 내가 더 행복할까? 오히려 그때가 되면 도서관에 함께 갈 아들이 곁에 없어 더 쓸쓸할까? 어차피 그러거나 말거나 책이 내 인생의 친구인 건 변함이 없으니 내 인생이 흘러가듯 그 시간 속에 또, 내가 있는 공간 속에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난 오늘도 깨닫고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책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