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으로
신영복 선생님이 별세하셨구나. 오늘 아침에 포털을 확인하고는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신영복'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나에게 주는 느낌은 '아이같은 순수함'이었는데, 아무래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은 후 선생님의 이미지가 계속 그렇게 남아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20년을 복역하시면서도 그가 보낸 편지들엔 순수한 소년의 마음, 다른 죄수들을 보며 그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낮은 마음가짐, 가족들을 소상히 신경쓰며 남동생의 처에게, 어머니, 아내, 동생에게 안부를 전하는 애잔한 마음이 녹아있다. '어떻게 그런 상황을 그리 초연히 맞으며 보내셨을까?'하고 혀를 내두를만 한 정신을 보여주셨던 분.
몇 년 전, 철학과 교수님이 신영복 선생님과 인터뷰하셨던 일화를 얘기해주셨는데, 기자로 있던 당시, 수업이 끝나고 잠깐의 시간 동안 빈 교실에서 그분과 마주하셨단다. 자기보다 훨씬 아래 사람이었던 교수님을 위해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놓고 앉아계셨는데, 자꾸만 좋은 향기가 났다는 것이다. 처음엔 교실 창가에 핀 꽃내음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창가 꽃나무에서 나는 향은 아닌 것 같아 계속 그 향을 찾고 계셨다고. 마침내 신영복 선생님과 인터뷰를 끝내고나서야 '아, 이 향이 이 분의 인품에서 나오는 향기구나' 하고 깨달으셨다고 했다.
교수님은 일동 의아하게 생각하는 우리를 향해
"여러분들은 제가 지금 허풍이 세다고 생각하겠지만, 허허 전 그때 처음으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향이 있단 걸 알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대학 수업 내용 중에 그렇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몇 없는데, 저 장면은 유독 강하게 남아있다. 인품에서 나는 향기라.. 감히 어떤 향인지 상상도 되질 않지만, 신영복 선생님이라 교수님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저 말도 수긍이 갔다.
유일하게 이 시대의 거대한 지성 중에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내 마음을 이해해주실 것만 같았던 신영복 선생님, 더 편한 곳에서 맘껏 소년의 모습으로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