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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Sep 18. 2016

기억해주어 고맙다

우리 서로의 취향을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작년부터 들떠있었습니다. 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수능 시험을 치고 거의 매일 밤 이불속에서 맘을 부여잡고 보고 또 보았던 영화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영국식 영어의 매력에 처음 눈을 뜨고 스크립트를 찾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거의 영화를 외우다시피 할 정도였습니다. 아직 제가 가진 감수성의 깊이를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 기반을 닦았던 시기였다고 나 할까요. 이터널 선샤인과 함께 처음으로 영화에 대한 애착을 시작했던, 덜 무르익은 감성도 어렸기에 예뻤던 그런 때였습니다.


All by myself를 립싱크로 열창하며 시작하는 영화


대학생이 되어서도,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수많은 시와 소설을 접하면서도 제 맘 속 가장 최고의 스토리는 바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였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고 배우면서 제 취향에 대한 자부심은 더 확고해졌어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현대판 <오만과 편견>이라 할 만큼 그 소설과 동일한 플롯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자신의 오만함에 대한 미안함과 상대에 대한 일말의 염려가 호감으로 바뀌는 건 삽시간이고, 오해가 풀리면서 보다 극적으로 상대에게 맘을 열어버리는. 왠지 소설만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감정들이 영화 속에선 모두 수긍이 갔어요. (아마도 콜린 퍼스의 공이 크지 않았을까요)



아니 이렇게나 사랑이 뿜어져 나오는 눈빛이라니요



역시나 명장면은 마지막 키스신이죠


실제로 영국 BBC에서 제작했던 오만과 편견 드라마에서는 콜린 퍼스가 Darcy로 분해 파릇파릇한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에서도 이름이 Mark Darcy인 걸 보면 소설과 영화의 연결성은 실물로도 탄탄해집니다.



풋풋했던 콜린 퍼스의 Darcy



어쨌든 고전은 다 이유가 있고, 제 취향은 고전적으로 우아함을 증명했으니 더욱 이 영화를 끌어안을 밖에요. 그래서 아마 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도 이야기를 했었나 봅니다. 영미문학 리포트로도 제출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말하려는 건 이 영화의 플롯이나 콜린 퍼스의 매력은 아니에요. (이미 너무 넘치게 삐져나오기는 했지만요)



제가 정말 말하고 싶은 건, 그렇게나 제가 좋아하는 것을 시간이 지나도록 기억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에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속속 친구들이 내뱉는 "아 맞다! 브리짓 존스 그거 개봉한대!" 하는 약간 흥분된 말투에 왜 이리도 마음이 안심되고 위로되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려줄 수 있어 기쁘다는 듯한 친구들의 태도와 말투에 저는 "그거 이미 시사회 응모까지 해놨지!"하고 받아치면서도 괜스레 감동이 됩니다. 나의 favorite movie를 기억할 만큼 그네들의 마음에 저의 존재가 박혀있다는 사실에요. 문득 저의 영화 취향은 사소하지만 당신들의 마음은 사소하지 않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말이에요.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우리 모두 나이가 들고 아이를 가지고 지금보다 바빠지더라도, 제 맘 속에도 당신의 사소한 취향 하나쯤 기억해두기로 다짐합니다. 영국스러운 영화나  송중기가 주연하는 드라마나, 뮤지컬 OST 발매나. 이런 것들에 흥분하면서 맨 먼저 당신에게 연락해주는 이가 되길 바래봅니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도 흥해라


저 또한 당신들의 취향을 존중해마지 않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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