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떠난 후 남은 집터의 비좁음에 놀라서 남기는 이야기
얼마 전 집 한 채가 사라졌다.
며칠 전 전날까지 고요하던 골목 초입이 아침부터 어수선해 들여다보니 커다란 포클레인 한 대가 반 너머 헐린 집을 밟고 서 있었다. 골목치고는 제법 넓은 길을 다 막고 곁에 선 덤프트럭에는 집이었던 것이 잔해가 되어 한 삽, 한 삽씩 쌓여갔다. 조금 한가했다면 그 집이 다 헐리기까지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서있었을 텐데. 별로 친하지 않은 이웃, 간신히 얼굴을 몇 번 봤을 뿐인 사람의 부고를 들었을 때처럼 지나쳐왔다.
저녁 무렵 아침에 지난 자리를 다시 지나며 보니 집이 있던 자리는 잔해 하나 없이 깨끗해져 있었다.
"깨끗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속으로만 조금 이상하다며 지나치고 말았다.
일부러 들른 건 아닌데 다음 날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그 앞을 지나게 됐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멈춰 서고 말았다. 깔끔하게, 집이 있던 흔적이라고는 지중화되면서 세운 전기와 통신 단자함뿐인 그 집터가 너무 작아 보였던 것이다. 그 집을 처음 봤을 때 있던 디저트 가게, 다음에 들어온 앙금 떡케이크 공방 때 들어가 본 공간의 경험적 면적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민낯 그대로의 집터는 공허할 정도로 작고 좁았다.
큰 걸음으로 열 걸음은 될까. 문득 전날 포클레인이 곁에 선 덤프트럭에 곧바로 잔해를 싣던 이유가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잔해를 쌓아둘 공간이 없어서였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떠올리고 보니 분명 그럴 것만 같았다. 그만큼 집이었던 자리, 이제는 공터가 된 땅은 초라했다.
이 공터를 처음 본 건 2018년 7월이다. 그때는 '허니 밤'이라는 디저트 가게가 있었다. 쿠키, 머랭, 파운드 같은 서울 어느 골목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 이 도시, 원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2020년인가, 21년부터는 '피움 앙금 떡케이크' 공방이 자리를 지켰다. 앙금으로 그렇게 예쁜 꽃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 크지 않은 떡케이크 하나가 만드는 사람에게나 만드는 걸 보는 사람에게나 그걸 받고, 나눠 먹는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도.
2024년 봄, 건물이 팔려서 조만간 헐릴 거라는 소식이 들렸다. 시청에서 매입해서 골목 안쪽에 발견된 대통사 기와 무지와 연결되는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던가.
골목이 사라지며 사람들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건물이 사라지면 그 공간을 채웠던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과 공감이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때는 막연히 생각으로만 그런 느낌이 들겠지 하고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집이 헐린 공터를 보니 그 허전함이 생각보다 더 큰 것이다.
내내 미뤄왔던 골목의 기억과 집과 공간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는 계기가 얼마 전의 그 허전함이다. 처음 만난 공주의 아기자기함, 오밀조밀함, 고요함과 소란함의 모습이 이제는 제법 많이 달라졌다.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설명하기엔 기억력을 못 믿겠고, 사진으로 남긴대도 그때의 느낌이나 생각은 사라질 거라 못 미덥기는 마찬가지라 써서 남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록은 내 기억이며 공간의 기억이 될 것이다.
운이 좋아서 혹 같은 공간을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해진다면 집이 사라진 후에도 기억은 간단히 사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으리라.
"그때 우리, 거기 있었잖아요."
"사실 거기엔 이게 있었어요."
공간이 사라진 후에 더 공터의 서사가 풍요로워지길.
나는 다만 입을 열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뿐, 말이 없는 집을 대신해 이야기를 전해주는 건 또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