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다, 분해서
어제 12월 3일, 10시 20분이 되기 전에 잠든 사람 중 아침에 이 글을 본다면 '거짓말'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거짓말 같고,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사실은 현재 진행 중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쯤 비상계엄령 선포 소식을 듣고 처음엔 불신했다.
비상계엄령을 검색했고, 국회 과반의 동의로 계엄해제가 결의될 경우 대통령은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다음엔 의아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 그것도 제 손발처럼 다루던 사람들이 이걸 몰라서 했을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분했다, 그저 몹시 분해서 피가 거꾸로 흐르려는 것처럼 가슴이 묵직하게 쿵쾅거렸다.
지금은 70년대와 달라서 그때와 같은, 45년 전 같은 쿠데타는 불가능하겠지만, 군인들도 그때와 다르고, 모든 게 다르겠지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분하고 두려운 마음을 끊어낼 수가 없었다.
계엄사령부가 꾸려지고 포고령 1호가 내려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아마 잠시 숨을 멈췄던 듯하다.
장갑차와 총이 시민을 향하는 무자비한 상상.
일어날 리 없는, 2024년 12월에 일어날 리 없는 그 일이 꿈속의 일처럼, 비현실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떠올랐다.
제발, 제발.
국회는 빠르게 움직였다.
국회 앞 풍경도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시민들이 모여들고, 구호를 외치고, 경찰은 막아서고, 군 헬기 여러 대가 국회의사당 운동장에 착륙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어왔다. 무장을 했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무장 계엄군'이라는 용어가 계속 나왔다. 무장이라니.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할 무기가, 그 무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나타나다니.
현실 같지 않다는 식상한 말만 거듭 나왔다.
자정이 넘으면서 사태는 급박해졌다.
일부 무장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다.
마치 영화처럼, 팔꿈치로 유리창을 깨고 타고 들어가 동료의 무기를 먼저 건네받고, 손을 잡아끌어올렸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 그러고 있었다.
그 시각 국회 본회의실에서는 190명의 국회의원이 계엄 해제 안건의 상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국회의원은 '바깥 상황이 급박한데 왜 서둘러 진행하지 않느냐'며 우원식 의장을 다그치는 듯 보였다. 우원식 의장은 저들이 절차를 지키지 않았더라도 국회는 절차를 지켜 의결해야 나중에라도 흠잡히지 않는다며 기다리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같이 기다렸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1시.
국회의원 190명 재석, 190명 만장일치로 비상계엄령 해제 안건이 의결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의결 결과를 발표했고, 국회에 들어온 모든 군인과 경찰은 즉시 물러나라고 헌법에 의거해 명령했다.
이다음엔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군인들이 순순히 물러날까? 아니면 위에서 다른 명령을 내려서 국회 본회의장 안에 있는 모든 국회의원들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해 권한과 지위를 박탈하고 구속해 가는 걸까?
도대체 이 군인들은 무슨 잘못인가?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속보를 조선일보 사옥 앞을 지나며 봤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마도 다행이라고 안도했을 것이다.
오늘의 기분도 비슷했다.
천만다행.
너무다 당연하게도 군인들은 철수했다.
국회를 떠났고, 국회 문은 굳게 닫혔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국회는 제 할 일을 했고, 국민의 의지는 여실히 드러났다고 믿었다.
하지만 국회의 의결이 있었음에도 2시간 넘게 대통령실과 대통령, 국방부는 계엄 해제에 대해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찾아보는데 기가 막히다.
일단 모든 군인들의 전역은 연기됐다. 만기 전역을 앞둔 기분이 어떤지 알기에, 말년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에 그들의 기분이 어떨지 알듯 했다.
환율은 한 때 1442원 선까지 치솟았다 하고, 비트코인은 30% 폭락했다 하며, 12월 4일 국내 증시 개장 여부는 오전 7시 30분에 정해진다는 소식들.
미국무부, 유엔의 평화로운 문제 해결 기대라는 외신의 보도.
대한민국은 단 네, 다섯 시간 만에 평화로운 나라에서 전시 혹은 내란과 같은 혼란스러운 나라로 평가받고 있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안을 의결한 후 각 당의 대표와 국회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다들 비슷한 얘기를 하는데 가장 뜻이 일치하는 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령 선포는 그 절차와 요건 모두에 부합하지 않는 불법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실제로 찬성한 190명 중에는 현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도 17명 포함되어 있었다.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전시나 내란 같은 상황이 아니므로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조차 비상계엄령 선포를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는 유감 표현과 함께 위법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짚었다.
한 국회의원은 대통령을 향해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비상계엄령 선포 후 5시간, 우린 아직 계엄 하에 있다.
2024년 12월 4일 03시 38분
의외랄까 웃프달까 번역 소식,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만 가졌던 정은문고의 『계엄』을 주문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계엄이 이 시대, 우리의 용어가 될 줄 나도, 우리도,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