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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 정 Oct 03. 2016

고독과 외로움의 경계선

나는 문장을 쓰며 외로움을 견디고, 고독이라는 말로 덮는다.


고독이란 이름을 써두고 외로움이란 이불을 덮고 얼마나 보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나는 늪에 빠진 작은 새처럼 허우적거리면서 늪을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살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렇게 가만히, 늪 속으로 빠져드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허우적거림을 멈추고 한동안 늪의 모든 것에 집중했다. 늪은 나를 잡아먹는 것을 그만두고 나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맞이했다. 


관계라는 걸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몰라 늘 더 적극적으로 대했다. 전학을 자주 다녔던 난, 책상에 앉아 누군가의 말을 기다리는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손바닥에선 땀이 끈적하게 쏟아졌고 눈은 아이들의 모습과 말투를 한참이나 살폈다. 그리고, 먼저 나서서 말했다. 나는 여니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야? 처음에 나를 본 몇몇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잘 받아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을 계기로 한 곳에 정착하게 된 나는 전학 온 친구를 한참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마치 나에게 내가 말을 걸 듯. 그 친구는 내 말 한마디에 모든 친구들과의 벽을 허물고 잘 지냈다. 나의 존재는 그 친구에게서 멀어졌지만 왠지 모를 뿌뜻함은 있었다. 나는 좋은 일을 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것이 한 번이라도 괜찮지 않았다고, 조금은 서운했다고 당시에 인정했더라면 나는 조금 달라졌을까?


적극적이고 당당했지만 내가 한 가지 가지지 못한 건, 솔직 함이었다. 나는 꽤나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남들에게도. 그렇게 쌓아둔 거짓말은 어느 순간 '진짜'가 되어 나에게 부메랑처럼 왔고 받아들이지 않고 싶어도 그렇게 규정해버린 내 입을 원망하며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엄마조차도 나를 어떤 사람이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나는 혼자만의 탑이 생각보다 높았다. 

잔잔한 성격에,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 목소리는 크지만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 나는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틀에서 조금씩 벗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타일렀다. 약간의 일탈도 좋지만 그것은 좀 아닌 것 같더라고. 나는 한 번도 '그 정도의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몇 마디와 몇 문장에 나를 '이 정도의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꽤나 작은 일에도 나는 상처를 받고 있는데 나조차도 그 상처를 다루지 않았다. 사실 다룰 줄 몰랐다. 이미 괜찮아야 하는 상처들이었기에. 나도 좀, 아니라고 해볼 걸. 그건 아니라고 소리라도 내질러볼 걸. 왜 그것이 맞지 않다고 나를 스스로 내려놓게끔 때렸을까. 


불면증에 극심히 시달리던 어느 날, 몇 알의 수면유도제 먹기를 주저했다. 이 몇 알이 해결해주는 건 약간의 잠뿐인데 이보다 더 많은 몇 알은 나에게 천국이라도 알려줄 수 있을까. 나는 결국, 약 먹기를 포기했다. 조금 덜 자더라도 내 모습 그대로 자고 싶었다. 마치 '정상인'으로 꾸며내는 듯한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다 그렇게 비슷하게 산다고 생각하면서 왜 나는 이토록 가슴 안에 담고 말아버리는 이야기가 넘치도록 많은 건지. 토해낼 곳이 없어 이렇게 잘 쓰지 못하는 문장에 담아내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건지. 그마저도 눈치가 보여 몇 번을 쓰려고 하다가 멈칫한 적도 많았다.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과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나 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고 미워하지 않았던 사람을 갑자기 돌아서 죽도록 미운 사람으로 만들고. 나는 그냥 쓰기로 했다. 나중에 보기 싫은 문장이 있더라도, 그 문장 하나하나를 남겨두기로 했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오롯이 나를 위해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디지 못했던 순간도, 내가 너무 혼자라고 느껴서 외로움이 극에 달하는 어느 순간도, 죽도록 누군가 미워지는 그런 순간들도. 고독한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에도, 괜찮다는 거짓으로 둘러싸인, 나는 다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눈치들로 둘러싸인 것들을 던져 버리고 문장 속에서라도 조금은 자유로워지길. 조금은 행복해지길. 


더도 말고,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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