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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_by _S.W.S.T]

이백 열 네 번째, 인권강사와 바리스타 조윤산


5월입니다. 청청한 날씨, 조금씩 무더워지는 것이 활동하기 좋은 계절인 듯 합니다.
오늘 이 분도 그런 날씨 속에서 인권을, 복지를 이야기하고 계시겠지요?


<사회복지 100인의 인터뷰> 214번째 주인공 '조윤산(사회복지사)'씨입니다.


[#  평범한 회사원에서 보수교육 강사와 인권강사로 ]


안녕하세요. 20년째 사회복지 현장에서 근무 중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노숙 분야 위촉 인권 강사는 4년 차고, 작년부터는 사회복지 보수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청각장애인 수어 통역 봉사를 12년 정도 했었습니다. 이 얘기를 먼저 꺼낸 이유요? 자원봉사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거든요. 당시 극단적 선택을 떠올릴 정도로 심각하게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던 상황에서 만난 것이 수어였고 봉사활동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절망에 빠져있던 저를 살렸죠.


어느 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전봇대에 <가톨릭 농아선교회>에서 진행하는 '수어 교실' 모집 공고를 봤어요.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했고 그곳에서 수어를 배우고 청각장애인들을 만났습니다. 수어 통역 봉사한 지 3~4년쯤 되었을까요? 회장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이제 그만 오라고 하는 겁니다. 너무 놀라서 혹시 제가 잘못한 게 있는지 여쭤봤어요. 


그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남들 평생 할 봉사를 다 했다. 이제는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죠. 그땐 봉사활동이 제게 전부였던 시기였습니다. 심지어 직장을 그만두고 낮에는 통역 봉사,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며 지냈었거든요. 그렇게 봉사 기간 11년 차가 되던 해에 결국 사회복지를 업으로 삼아 현재에 이르게 됐네요.


어렸을 때는 장난꾸러기였습니다. 주도적인 성격 탓이기도 하고 또 에디슨을 좋아해서 발명가가 되고 싶었고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즐겨 했습니다. 대학 공부도 뒤늦게 했습니다. 입시를 앞둔 시점에서 대학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름대로 공부는 잘했었는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나니 흥미가 떨어지더군요.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의 가장이기도 했고요. 대학을 안 나와도 무엇이건 열심히 하면 먹고 살 수 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신문 배달, 핫도그 장사, 양초공장, 출판사 등 여러 일을 했지만 가장 오래 일한 분야는 건설회사와 영업 마케팅 분야였습니다. 영업 마케팅 분야에서 학력은 크게 필요 없었습니다. 대신 파는 재주가 있었나 봐요. 무언가를 판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 적성에도 잘 맞았던 것 같고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잘 팔지는 못했습니다. 퇴근하고 구두를 벗으면 발에 피가 날 정도로 수백 명을 만났지만, 못 팔았던 날도 많았죠. 실적이 안 나오는 날에는 퇴근길, 서점에 들러 관련된 책을 사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는 성과로 연결이 되고 조직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잘 먹고 살았죠.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복지(Social Welfare)란?]

* 해당부분은 본 프로젝트의 핵심이기에 최대한 편집을 절제하고 원본에 충실함을 알려드립니다.


처음 자원봉사를 하다 보면 누군가 "봉사가 뭐야"라고 물어요. 그럼 전 "내 것을 내어주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몇 년 시간이 흐른 후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봉사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큰 거예요"라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누군가 자원봉사가 뭐냐고 물어보면 "그냥 삶이야, 일상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생활이야."라고 답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 세상에 사회복지사가 없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사회적 소수자의 삶이 어떘을까?'


그런 상상 등을 통하여 제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현장에서 겪었던 기억나는 일화요? 꽤 오래전 일인데요. 나이가 무척 많으신 분이셨는데 죽기 전 소원이라며 따님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연락처가 없었어요. 수소문 끝에 친척을 통하여 따님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아버님에 대한 원망이 컸던지라 쉽지 않았죠. 


포기하지 않고 몇 차례 국제전화를 통하여 설득했고 결국 따님이 한국에 와서 아버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따님이 아버님을 처음 대면하자 한 말이 "이런 꼴로 살려고 나갔냐?"며 화를 내시더군요. 하지만 원망의 시간이 지나니 서로 부둥켜안고 우시더라고요.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어느새 다 사라진 채로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수시로 연락하고 해마다 한국에 와서 아버님을 만나고 가시고는 했습니다. 그 두 분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인권 문제는요. 구조적인 문제가 인권침해의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마음에 인권의 씨앗을 심고 발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재화하는 훈련이 필요하죠. 이를 위하여 소진되지 않고 에너지를 불어 놓을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세워주는 게 바로 '사회복지''인권 교육'의 상관관계라고 봅니다. 


강남순 교수님의 책 <질문빈곤사회>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존의 구조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결코 질문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선생에게, 직장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무조건 예스라는 게 미덕이라고 여긴다.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절대 발전이나 변화할 수 없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하지 않으면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부당함에 대하여 목소리를 냈을 때 좋지 않은, 혹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미움받을 용기’를 가진 이런 외톨이들이 있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하지만 사회복지 현장에서만큼은 ‘미움받을 용기’ 같은 건 필요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분야이니까요.  


경청은 무척 중요합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내가 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사소한 이야기라 할지라도요. 그래야 내담자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습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죠. 조직의 구성원이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관리자들도 듣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에서 신뢰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상명하복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소통이 어렵습니다. 그러면 변화를 이뤄나가기 어렵죠.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보수교육에서 늘 아쉬운 부분 중 하나는, 수강생들에게 인기있는 강의과목은 대부분 실용학문이라는 점입니다. "사회복지의 가치는 무엇이냐?"라고 정의하였을 때, 그 본질을 찾아주는 나침반이 인권입니다.


실천적 글쓰기, ESG, 회계, 모금, 후원, 생성형 AI 활용 등 모두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이죠. 사실 의무나 평가 때문에 듣는 경우도 있지만요. 하지만 사회복지는 인권을 기반으로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실천 학문입니다. 인권이 사회복지의 본질이자 가치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인권 교육이 필요합니다.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에서 인권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요. 제 가슴안에 숨어있는 불씨를 다시 타오르게 합니다. 왜 사회복지를 시작했는지 깨닫게 함은 물론 또 다른 힘까지 불어넣어 주거든요. 그런 힘이 전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처음 사회복지 분야에 들어왔을 때 전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외부 환경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데 사회복지 현장은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더군요. 제가 근무했던 영업, 마케팅 분야에서는 대체로 자유롭고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회복지 현장은 굉장히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강했고 보수적입니다.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전 지금까지도 적응이 어렵습니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합니다. 사회복지현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후, 환경, 정책 등 여러 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전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사회복지사들이 계속 현장을 떠납니다. 이른바 MZ세대죠. 


MZ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학교에서 인권을 배웠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현장에 와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견디질 못하는 겁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종사자 역량 강화 얘기를 빼놓지 않고 하시던데, 사실 역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조직문화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요. 그들에게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환경 또한 조성해 주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합니다.


기성세대와 MZ세대는 분명 다릅니다. 기성세대의 것을 MZ세대에게 강요나 고집해서도 안 되고요. 이를 위한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담은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현장 곳곳에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약간의 희망적이라는 생각은 해요. 그러나 전체로 보면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복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과거의 사회복지 조직문화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도록 급진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권에 기반하는 인권경영을 선도적으로 수행하는 노력이 우선시되면 좋겠습니다. 국제적인 흐름과 기조에 발맞춰 수평적이면서도 개방적인, 열린 마음으로 사회복지의 가치를 만들어내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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