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 R15: 맞대면, 일기장, 분노거래소/재업로드
『압박감이 든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어렵지는 않은 일이지만 내키지가 않아.』
“잘 지내셨나요. 미스터 마입니다.”
“네. 거래는 완료되었는가요.”
“물론입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관리 기간이 어제부로 끝나 오늘 전화 드린 겁니다. 다행히 기간 내 규정을 잘 지키셨군요.”
“구매자는 알고 있던데 그거는 상관없습니까.”
“물론이죠. 분노거래소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규정이 적용됩니다. 그 외에는 상관없습니다. 오늘 오후에 방문해주실 수 있습니까.”
“좋습니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천천히 오십시오.”
또 다시 올라가는 언덕길. 생각만큼 힘들다거나 가파르게 보이지 않는 건 확실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 굳은 나의 각오가 정신력과 체력을 지탱해준다. 그저 빨리 거래소에 들어가 거래를 끝내고 일기장도 손에 넣고 싶은 마음 뿐. 내 발걸음이 전보다 두 배나 빨라진다. 조급해 하지말자.
거의 반 년 만에 다시 온 분노거래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음산한 분위기. 녹슨 철문을 힘껏 열며 거래소 안으로 들어선다. 아니, 들어서려다 잠시 멈췄다. 혹시 다른 곳 아닐까라는 착각까지 하게 만들 정도로 내부가 달라져있었다.
환한 불빛,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초라하고 어두운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고급 양옥집 같다. 그러나 여전히 안내원은 없었다. 잠시 달라진 내부에 정신이 뺏긴 사이 미스터마가 비열하게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오랜만입니다.”
왼손을 내미는 미스터 마. 오른손은 여전히 무언가를 만지작거린다. 처음 봤을 때처럼. 살며시 그의 손을 잡는다. 차가운 냉기가 흐른다. 마치 냉동 창고에서 오래 보관되어 있던 동태를 만지는 느낌이랄까.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사무실로 가시지요.”
복도에 걸어진 그림들도 전부 바뀐 듯하다. 우리가 이름을 대면 알만한 화가의 작품들로 걸어져 있었으니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다다랐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놓여 있던 전신거울을 바라본다. 그러나 전신거울이 없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아, 전신거울 말씀하시는 건가요. 보기 흉해 내다 버렸습니다. 왜 그러시죠?”
“아닙니다.”
혹시 그때 내가 했던 말이 거슬려서 치워 버린 걸까. 중요한 단서가 아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사이 어느덧 미스터 마의 사무실에 도착한다. 사무실 안은 처음 봤을 때 그대로였다. 소파에 앉으러 가면서 벽난로 쪽을 유심히 본다. 없다. 위에 놓여있던 일기장이 없다. 어떻게 된 거지.
“마지막 완료 단계를 위해 증서를 가지러 가겠습니다. 홍차 한잔 드시고 계시지요. 향이 좋아 마음에 드실 겁니다. 금액은 조금 있다 계좌번호를 알려주시면 오늘 내로 바로 송금해드리겠습니다. 뭐, 아시겠지만 금액은 규정대로 100억입니다. 저희 거래소 역사상 최고금액이지요. 축하드립니다.”
생긋 웃으며 미스터마가 사무실에서 나간다. 그가 나간 것을 재차 확인하고 바로 벽난로 쪽으로 간다. 확실히 없다. 어디에 숨겨놓았을까. 그의 책상으로 가보자. 책상 위에는 마치 시간이 정지 된 듯 처음에 봤던 그대로였다. 하지만 서랍은 안 열어봤었잖아. 뒷일은 생각지 않은 채 서랍을 열어보려 시도한다. 그러나 잠겨있다. 불안해진다. 지금 이 기회가 아니면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없어. 급한 마음에 서재에 책들을 뒤적거린다. 먼지들이 흩날린다. 그래도 없다. 발만 동동 굴린다. 발소리가 들린다. 우선 자리에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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