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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유나 Sep 04. 2023

영국유학 1년차 PTSD

feat. 딤디

겪었던 감정의 변화에 각을 잡고 글쓰기가 어려웠다.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도, 하다못해 수업 시간에 배웠던 강의 내용 같은 것들도 그 당시 이해한 정도와 지금의 해석 가능 정도가 다르다보니 과거 그 당시 기준으로 새로 배웠던만큼을 정확히 분리해서 쓰는게 무척 쉽지 않았다. 과거에 겪었던 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게 있지만 현재의 삶이 계속 흘러가면서 그에 대한 내 감정 변형되고 수업 시간 부진했던 성적이나 실패에는 관대해졌기 때문이었다. 



마냥 숙제 같은 기분이 드는 걸 살살 다스려가던 중 최근 딤디 영상을 보고 이거였지!하고 브런치 창을 열었다. 여지껏 즐겨보던 여러 유학생채널들 중 단연 손꼽힐만큼 현실적인 상황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vlog라고 생각한다;

나의 1년차 영국 유학생활에 마치 도돌이표를 실행하며 PTSD가 찾아올 것 같을 정도로 극 사실주의다. 덕분에 확실히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들과 한창 엉켜있던 내 기억들을 가닥가닥 잡고 풀어갈 수 있었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처음인 해외생활에 맞이하는 모든 상황이 급했다. 차분히 자리에 앉아 기록을 남기기보단 당장 눈 앞에 있는 상황을 소화하기가 바빴다. 공항에서 내린 순간부터 그랬다. 28인치 캐리어 2개와 기내용 캐리어 + 백팩까지 이고지고 온 짐을 싣고 나갈 카트를 구할 수 없었다. 영국에서는 cart가 아니라 trolley를 찾아야 하는 걸 몰랐고 환전해온 파운드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야 했다. 뭐라도 사고 잔돈을 거슬러 받으면 되었을텐데 그땐 그런 상황이 안되었나? 양손가락을 최대로 벌려가며 캐리어를 쥐고 우왕좌왕하던 기억만 난다. 예약했던 픽업 차량을 놓칠까봐 불안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장거리 비행 후 추레한 몰골이 신경쓰여 호다닥 세수라도 하고 나가려 했다가 화장실 볼일을 보려잠깐 사이 캐리어를 도난당할까봐 자물쇠를 걸었다가 ... 소리없는 아우성들이 가라앉기 전에 마주한 픽업 스탭들 그리고 스몰톡. 그렇게 늦은 시각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영국의 저녁은 벌써 어두운 밤 같았고 몸이 덜덜 떨리도록 추웠다.



임시 숙소에 도착해보니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2층 계단을 올라 방을 잘못 찾아간데서 한국의 1층을 영국은 0층 (ground floor)이라 하는 걸 배웠다. 수화물 무게 제한 끝에 맞춰온 캐리어가 어쩜 그리 원망스럽던지 문 앞에 고스란히 세워놓고 침대로 몸을 던졌다. 몸이 고생하고 체력이 받쳐주질 않으니 마음도 금방 쪼그라들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해프닝도 내가 몰라서 그래 자책하기 쉬웠던 것 같다. 확실히 자고 일어나 이래저래 체력을 회복한 시점부터는 정말 별 거 아닌 것들, 창문을 이렇게 열고 닫아!!까지 사진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찍어대던 사진들로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카메라 녹화된 흔적들에 웃음이 난다. 정식 숙소에서 겪을 상황들을 까맣게 모를때라서 좋았다.



그 당시 나는 학생 기숙사 (Student accomodation)에 9개월 동안 지낼 예정이었다. 플랏 (flat)이라 불리는 구조의 기숙사 방은 4명이서 주방을 공유하게 되어있고 화장실 겸 욕실이 개인 침실에 붙어있어 (en-suite) 작은 고시원 같은 기분이었다. 밥과 김치를 제공하는 주방이 아닌게 당연했는데도 아쉬웠던 만큼, 국룰로 누리던 공동 생활 매너들이 한국에서만큼 상식으로 지켜지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 불합리하다 생각하는 부분들을 내가 예민한건가 의심하면서도 딤디님처럼 관리실 (reception) 시스템을 통해 개선해보려고 했는데 서로가 생각하는 상식이 너무 달랐다. 플랏 메이트 한 명은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 할인을 대폭하는 식재료들을 항상 사오는데 그 중 10%만 소비하고 90%를 주방 쓰레기통에 버렸다. 청소하시는 분이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봉지를 들고 건물 쓰레기장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분리수거도 하나도 안한 채 쏟아 내듯 쌓는 속도가 감당이 안됐다. 돈이 없어 그런가로 이해되지 않았다. 영국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그녀의 배경을 알기에, 이 나라는 원래 이런건가 문화 충격이었는데 6년차가 된 지금에 단언컨데 그건 개인의 문제였다.

영국은 지역마다 쓰레기 배출 방법이 나르고 구역마다 분리수거 분류 정도가 달라서 한국의 잣대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지만, 현 남친을 포함 이후의 다른 플랏 메이트들은 음식물 쓰레기 통 (caddy bin)을 활용해 버릴 것을 구분한다. 캔과 유리병, 플라스틱을 내놓을 때는 한번 물로 헹궈서 내용물을 깨끗이 비운 후 수거함에 넣는다. 환경 운동에 동참한다며 특히 개인 정원이 있을 경우 음식물 쓰레기를 비료화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영국에 많이 있다. 그때 만난 플랏 메이트는 어쩜 한 평생 그렇게 생활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폐기 직전의 식빵 한 봉지를 사서 두어 개 먹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행동이 부모집에서는 그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파티 소음도 일상이었다. 떼로 몰려다니는 취한 사람들에 마리화나 냄새에 ... 그래도 다행인건 여성 전용 층을 신청하고 입주했었던 터라 상대적으로 남여가 우르르 더 많이 몰리는 큰 파티들은 다른 층이거나 다른 건물이었다. 그 대신 다 같이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조용히 해야 한다거나 등은 기대할 수 없었다. 유학 목적에 공부를 생각하고 오지 않았거나 아무튼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애초에 사람들끼리 다름의 정도가 너무 커서 타협할 여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too much, non sense 포기하고 버틴다는 딤디님 정말 응원 많이하고 싶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다른 플랏 메이트는 중국에서 왔는데 내가 2n년동안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던 모든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깨부쉈을만큼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었고 그나마 유학 첫 해에 의지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점점 주방에도 꼭 필요할 때만 가게 되고 밖에서 돌아오면 방 안에 틀어박히던 와중에 정성껏 요리한 중국 가정식 요리를 나눠곤 했다;

동파육 비슷한 돼지고기 요리며 닭발까지 등장할 때면 어디서 식재료를 구하는지 궁금해 물어보고 따라나서기도 했다.



이런 저런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옛날 사진과 동영상들에 한참이나 빠져 일요일 밤을 보다. 그 땐 그랬지 싶은게 몸과 마음이 온통 긴장해서 그런지 하루의 끝은 더 피곤했고 한국에서만큼 활동량이 나오지 않았는데 ...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크니까 모든 가동 에너지를 공부 생산성으로 연결 시켜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 같고 그와중에 이상적이지 않았던 타인과의 관계나 상황에 대한 분노를 스스로에게 쏟아부었던 것 같다. 유학 생활이 길어지면서 생활이 점차 안정되고 괜찮은 대우를 받는 직장 생활까지 나름대로 성공하면서 그제서야 밀린 기록에 대한 부채감을 느꼈다. 유학 초기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이렇게 분명히 정의할 수도 없었던 유학의 가치들을 손에 잡힐듯 말듯하게 어렴풋이 보고 느꼈던 것 같다. 영국 첫 해 2018년에 대한 기록을 이제서라도 시작하게 된 사정이다.



To be continued...

글과 사진 ©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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