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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IU Apr 28. 2016

길 위의 베트남

베트남 종단 D+12, 하노이

길에서 다 된다.

베트남 종단 12일째, 하노이를 둘러보면서 여행 내내 쌓인 베트남에 대한 그런 인상을 그대로 굳히기로 했다. 베트남은, 모두 다, 길 위에 있다. 식당도, 카페도, 가게도, 이발소도, 주차장도, 사람들도. 번듯한 가게도 인도로 이어지고, 그 끝에는 노점이 자리하고, 그 사이로 행상이 지난다. 행상으로만 치자 해도, 별별 종류가 다 있음은 물론이고, 바구니 속에 화로와 튀김 솥까지 망라한 장비의 수준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베트남은 길에서 다 된다.

호치민 관광지에 와플 행상. 한쪽에 숯불과 와플팬이 있어서, 즉석해 구워 준다.  


서로 어떤 배려와 합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멀쩡한 상가 카페에 붙여, 동종의 노상 카페가 성황 중이라, 손님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상가 카페 앞 인도에 다른 커피를 들고 모여 앉았다. 그 와중에 행상 카페들이 상가 카페와 노상 카페를 사이를 지난다. 더러 오토바이에 차린 행상 카페도 있다. 미리 우려낸 진한 커피를 플라스틱 저그 같은 데다 담아 뒀다가, 조금씩 따라서 연유와 얼음을 타 내는 베트남 커피로 치면, 오토바이 짐 칸에다도 충분히 차릴 수 있겠다. 베트남 커피는 여러모로 현지화, 즉 변형일 텐데, 길에 나오려다 보니 커피가 그렇게 된 걸까, 커피가 그렇다 보니 길에 나오기 쉬웠을까. 여튼, 길에서 다 되는 데는 나름의 질서와 나름의 방법이 있다.  

인테리어 짠한 상가카페 옆에 노점 카페가 성황중이다.
청년의 오토바이 행상 카페...가 상가 카페 옆 노점 카페 옆...에서 또 성황중이다.


하노이 거리에 쇼핑을 나섰을 때 일이다. 안쪽에 진열된 셔츠를 보자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점원이 일어서며 막아섰다. 빠르고 쫀득한 영어를 뱉었는데, 눈치를 보니 신을 벗으라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가게 입구에 점원들 슬리퍼 몇 짝이 뒹굴고 있다. 이분들, 도로는 길이고 밖이지만, 인도는 자기 집 회랑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매트 깔고 신발 벗으며 이 만큼은 내 현관이다 한다. 근데 이거, 한 번 겪고 돌아다니다 보니, 서너 집 건너 하나씩은 그렇다. 베트남의 인도는 참 여러모로 쓰이고 있다. 버라이어티 한 인도의 용도.



길에서 다 한다.

내용에 딱 맞는 사진은 아니지만, 그나마 눈길을 끄는 사진이라 붙인다. 하노이의 유명한 철길 마을이다.


노점과 행상이 다가 아니다. 노점과 행상으로 북적이는 인도는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이 이미 베트남의 전형적인 풍경이기도 한 만큼, 그걸로 길에서 어쩌고 단정을 짓고 말고 할 것까진 없을 것이다. 실제 인상을 깊이 남긴 것은, 그런 풍경에 녹아 있는 노상에서의 일상이었다. 굳이 식당 밥이 아니어도 거리에 나와 먹고, 아이들은 당연하게 가게 앞 길에서 놀이를 찾고, 두꺼운 가로수 그늘 아래면 누군가 꼭 앉아 있다. 좀 넓은 인도는, 심지어, 공식적으로 생활체육시설로 정리되어 있다.  

인도 위에 흰 줄 몇개 겹쳐 그리는 것으로 베트민턴 코트가 되었다. 더러 조기축구회처럼 차려입은 선수단이 뜬다 


밤기차로 하노이에 도착하던 새벽이었다. 우리 숙소가 Old Quarter 한 가운데에 있었던 터라, 우리는 외곽에서 내려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른 아침의 거리는 이미 한창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인도를 메운 빨간 플라스틱 의자는 빈자리가 없었고, 그렇다 보니 국수 소쿠리는 이미 반쯤 거덜 나 있었다. 베트남의 하루가, 길 위의 아침 식사로 시작되고 있었다.

이건 사실 퇴근길 풍경이다. 사진이 많질 않아서... 베트남 국수노점의 풍경은 다들 익숙할테니까라며 스스로 위로를.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은 서둘러 일터로 가고, 더러 노상에서 일하거나 노상에서 쉬고, 노상에서 한 잔 하거나 저녁거리를 사면서 하루를 마치다. 그러는 동안 집에 남은 사람들은 대문 밖에 의자를 내어 신문을 읽고, 지인을 맞고, 멍을 때리고, 때가 되면 쟁반 상을 차려 나와 바쁘거나 느긋한 식사를 하고, 노는 아이를 불러 길 위에서 먹인다. 나 사는 방식으로 치자면, 분명히 남들 시선에 걸리지 않는 곳에서나 할 법한 사적인 일들인데, 다들 그렇게 길에서 하고 있다.


(하긴, 그렇긴 하다. 관광객이 잘 다닌다고 해봐야, 결국, 온통 가게들이 즐비한 상가일 텐데, 어쩌면 이건 베트남 사람들의 특징이 아니라, 상가 사람들의 특징일 수도 있다. 그것도 어쩌면 세계 공통의. 가게와 가게가 면한 거리에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인 거지. 그치만, 뭐, 겨우 15일 머무는 것만으로 그곳에 대해 일정 수준의 결론을 내려야 하는 관광객의 입장으로는, 괜한 탐구심을 애써 누르고라도 신속하게 단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하여 굳이 밀어붙이자면, 베트남은 정말 길에서 다 한다.) 

까치집을 한 아저씨 한 분이 대문 밖으로 의자를 끌고 나와, 조간 신문을 펼쳤다. 이 아침에 굳이 길에 나오셔서..
"요 놈! 일루 와. 아 해!" 분명 베트남말이었을텐데, 난 다 알아들었다.  
거리 상인의 오수는 너무나 흔한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작정하신 분은 드물지? 


집안의 일상은 현관을 넘어 길로 이어지고, 길 위에서 내 일상은 스스럼없이 드러나고, 흔쾌히 다른 이들의 일상과 섞인다.  안과 밖, 나와 너 사이에 얄짤없는 실선이 딱 그어진 나 사는 모양새와는 달리, 나 혼자 할 만한 일을 너 있다고 못할 것 없다 하는 듯한 이들의 넉살에, 지나는 나까지 슬쩍 경계를 풀고 싶어 진다.


무장이 해제되는 이런 느낌은 할머니 계시던 시골 마을을 떠올리게 하고, 외가가 있던 돈암동 골목길을 떠올리게 하고, 을지로 상가와 중앙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대략 다 아파트 단지가 되거나 이마트에 밀려버린 그런 곳 말이다. 거기서 우리도 그렇게 살지 않았나. 할머니 댁 대문을 나서면 동네 어른들이 누구네 손자 왔구나 다 알았고, 외가의 별식은 언제나 골목길 식구들 맛볼 만큼 해야 했다. 접시를 들고 골목길로 나르다 보면, 동네 가게 앞 평상에는 한가한 수다가 넘치고, 시장에 상가 주인들은 손님이 들어서고서야 뒤따라 뛰어 들어오곤 했다, 앉았던 의자를 박차고, 혹은 믹스커피나 화투판을 놔둔 채로.


그래서, 북적이는 인도를 들여다보면, 베트남은, 얼마 전의 우리 모습으로, 잃었던 푸근함이 되고, 그리운 정감이 되고, 따뜻함과,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된다. 






pn. 말했던가? 길 위에서 되는 건, 오토바이 위에서도 다 된다는 거. 

오토바이 외발로 세우면 살짝 기울지 않나? 1만시간의 법칙 같은 게 떠올랐다.
베트남식 드라이브스루. 도무지들 오토바이에서 내리지를 않는다. 
이러니, 주인이 길에 나와 앉을 수 밖에 없는 건가? 물고 물리는 길 위의 베트남. ㅎ



* 나는 여러모로 사진으로 여행을 빛내는 타입은 못된다. 장비나 기술 부족은 차치하더라도, 카메라 꺼내길 아주 민망해하기 때문이다. 인상 깊은 순간마다, 나는 카메라가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할 거다라며 짐짓 의도한 척 속말 하지만, 사실은 그저 놓치는 것이고, 진심 아쉽다. 이렇게 글이라도 써놓겠다 손대고 보니, 내 용기 없음과 굼뜸이 한탄스러울 정도다. 급한 대로, 사진 대신 드로잉 몇 개를 간간이 끼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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