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미디어와 방송, 신문사가 디지탈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에 디지탈 전환 강의 자료를 만들면서 다시 한번 미디어 업계 현황을 살펴보았다. 방송사의 광고비 매출은 예상대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특히 지상파TV의 광고매출액은 1.2조로 2018년보다 12.5%나 줄어들었다. 이해 비해 온라인광고비는 2018년대비 14%가 증가해서 6.5조 규모이다. 이중 모바일광고비는 4.6조로 이미 방송광고비를 추가한 상태이다.
어떤 이들은 방송사의 매출이 주는 것이 IPTV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IPTV의 매출에서 광고 비중이 3%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그런 주장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IPTV 매출 향상의 주 원인은 홈쇼핑송출수수료의 성장에 기인한다.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바로 소비자들이 더 이상 실시간 방송을 자주 보지 않는다는 변화이다.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70%는 집에 TV가 없다. 이런 변화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불편한 진실을 듣기 싫어할 수 있다. 즉 젋은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유투브를 본다는 사실말이다.
방송 미디어 업계에서 일해본 사람은 모두 알지만 방송 업계의 오랜 꿈은 "다양한 콘텐츠", "개인화된 큐레이션", "참여형 방송"이었다. 다양한 콘텐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오랜 꿈은 이미 유투브에서 모두 이루어졌다. 단 이런 변화를 방송사가 만들지 못한 것뿐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나스미디어 2019년 인터넷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 10명 중 6명은 유투브를 정보 검색 채널로 활용하고 있으며, 유투브가 1위인 네이버를 제외하면 정보 검색을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젋은 사람들이 모두 비실시간으로만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 브이 라이브의 성장을 보면 젋은이들이 실시간 영상으로 무엇을 소비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네이버 표현으로는 덕질이다. 즉 연예인의 공연 방송과 같은 실시간 콘텐츠도 이제 지상파 방송사가 아닌 네이버 브이 라이브 같은 곳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가 알던 방송국이란 무엇인가?
올드미디어로서의 방송국이란 1) 정해진 "시간"에 2) 제한된 수의 방송을 3) 그들의 시각으로 "큐레이션"해서 제공했다. 우리는 한때 그런 방송국을 사랑했었다.
나같은 X 세대는 토요명화의 오프닝 시그널이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늘 토요일 저녁에 모여 앉아서 온 가족이 토요명화를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다음주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모두들 주말에 봤던 영화와 드라마 얘기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은 더 이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이라도 모두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스크린으로 다른 영상을 즐기고 있다. 더 이상 이런 모습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익숙하다. 거실에서 가족끼리 채널을 가지고 싸울 일도 없고 누군가의 독재(?)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없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사람간의 대화를 더 단절시킨다고 걱정을 한다. 또는 어떤 이들은 유투브에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채널만 보기때문에 더욱 다른 의견을 가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혹시 예를 들어 20년전의 올드미디어의 시대가 지금보다 몇 개 안되는 소수의 채널로 정해진 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9시 정각에 나오는 "뚜뚜뚜 ~ 대통령꼐서는"으로 시작하는, 채널에 상관없이 거의 동일한 내용의 뉴스를 보던 시절이 지금보다 더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더욱 대화를 많이 하고 서로를 이해하던 시절이었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혹시 과거의 우리 미디어는 소수의 채널로 소수의 방송국 사람들이 시각에 맞게 선택한 소수의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일방적으로 그들의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아니었을까?
굳이 1988년 촘스키가 집필한 "여론 조작-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의 내용을 들지 않아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의 언론이라 부르는 신문사와 방송사가 얼마나 자본에 취약한지는 잘 알려진 사살이다. 모든 통제는 소수일때 훨씬 용이하다.
과연 20년 전 과거 소수의 미디어와 지금의 온라인/오프라인의 미디어에서 어느 쪽이 메시지를 통제하기 쉬울까? 과연 지금 어떤 대기업이 유투브와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를 통제할 수 있을까?
과연 BTS와 하이브(옛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에 한국의 방송국은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싸이와 강남 사거리를 글로벌 스타로 만든 것이 한국의 방송국이 큰 역할을 했을까? 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참여, 소통, 개방이다. 즉 글로벌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 유투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수의 채널, 소수의 콘텐츠, 소수의 큐레이터가 만드는 미디어와
무한대의 채널, 무한대의 콘텐츠, 무한대의 큐레이터가 만드는 미디어의 경쟁
그끝은 무엇일까? 다음에도 계속 작성해볼 생각이다.
퓨처워커의 미래 이야기 - 미디어 시리즈
2021년 4월 26일
PS. 관련된 주제로 온라인 대화방이 26일 저녁 8시 30분부터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