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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퍼실리테이터 Mar 27. 2022

서른이 되고서야 돈을 깨닫다



나는 돈을 터부시 했었다. 모태신앙이었던 나는 교회에서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말을 익히 들으며 자라서인지 돈을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말은 나는 ‘탐욕스럽다’는 부끄러운 고백과 같았고 남몰래 고해성사해야 할 정도로 자책감을 느꼈었다. 



사회에서도 돈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라 말했다. 위인전 전집에는 워런 버핏과 같이 성공한 부자의 이야기가 아닌 간디 같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만 즐비했다. 내 가슴을 뛰게 한 법정스님이나 사회 활동가 등 검소하다 못해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을 보며 가치와 의미를 위해선 그 정도는 희생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릇된 사고였다. 돈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었다. 



환경의 영향도 컸다. 주변에선 돈이 많으면 좋다는 말보다 돈 이상의 가치를 보라는 어른이 많았다. 바른말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은 생존과 직결되며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가치가 있다, 나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건네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돈에는 무관심한 20대가 되었다. 



무슨 일이든 돈보다는 의미와 재미를 추구하며 보낸 20대, 하지만 30대가 되자 현타를 직격탄으로 맞았다. 얼마 전 나는 한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했다. 2년 동안 글을 쓴 대가는 200만 원 남짓이었다. 아무리 내가 좋아서, 좋은 취지로 시작했다고 한들 2년간 노동의 가치가 고작 200만 원이라니. 최저 시급은커녕 월 10만 원도 못 버는 꼴이었다. 묻고 싶다. 정말 내 글이 고작 이 만큼인가요? 



돈을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적절하지 않은 보상에 나는 허망함을 느꼈다. 한편 그 사이 부모님 집값은 2억이 훌쩍 넘게 뛰었다. 세상에나. 내가 의미 있는 글을 쓰겠다며 머리를 쥐어짜고 발악하는 동안 돈은 이렇게나 쉽게 벌렸다. 기사만으로는 와닿지 않았던 일, 내 일이 되고서야 노동과 돈은 결코 비례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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