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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l 30. 2023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날에도 나는 나를 지지할게

 네 인생은 실패야. 앞으로 네 인생에 큰 반전은 없다고 봐야돼. 그래, 안 그래?

스무 살, 아빠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다시 막말을 퍼부은 그 날 저녁 마치 내 남은 인생에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앞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그렇지..."라고 작게 중얼 거렸습니다.

화도 나지 않았어요. 학벌에 유별나게 집착하는 집안에서 작고 볼품없는 하위권 대학의 입학은 곧 인생의 실패라는 것이 수학공식처럼 규정된 것이었으니까요. 저 역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이었기에 스무살의 저는 한치의 의심없이 받아들였어요.


아, 내 인생은 이렇게 망해버렸구나.


그 말은 각인처럼 새겨졌고, 그렇게 내 인생은 맹렬히 시들어갔습니다.

대학 4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토익 공부를 하고, 학점 관리를 하고, 어학 연수를 가고, 교환학생을 신청하는 등 다시 오지 않을 빛나는 이십대 대학생활을 보낼 때 저는 수업을 빠지고 혼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한량처럼 보냈어요. 단 한 번도 내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죠.

'쟤들은 왜 이미 결정된 미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등바등 애를 쓸까? 겨우 이런 대학에 온 주제에 네들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런다고 네들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마치 아빠가 나에게 하듯 열심히 사는 친구들을 비웃고 무시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턴 차라리 포기하는 게 쉬운 인간이 되어갔습니다.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도, 나를 한심해하는 부모의 얼굴도 더는 보고싶지 않았으니까요. 무언갈 도전하면 따라오는 결과를 마주하는 것이 겁이 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쉬운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내 미래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별볼일 없는 내 인생에 결단코 대단한 반전은 절대로 없을거라 믿으면서요.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내고 역시나  큰 반전없이 직원이 열명도 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규모의 출판사에 들어갔습니다. 대표의 재떨이도 갈고, 소주병도 치우고, 글도 쓰고, 인터뷰도 다니며 150만원도 안되는 적은 돈을 받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들 중에 자신의 길을 찾는 애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자가 되고, 스튜어디스가 되고, 탄탄한 회사에 취직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는 다시 절망했습니다.

'어째서 쟤들은 나처럼 망하지 않았지?' 라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깨달았어요.


아빠가 틀렸다. 아니, 내가 틀렸다.   




선택의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도전 보다는 포기를 선택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 길을 계속 가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아빠의 말이 꼬리표처럼 생각났어요.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작가가 될 수 있겠어?',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에도 직원이 스무명이 넘어가는 회사는 이력서를 낼 생각도 안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저런 데를 들어갈 수 있겠어?', 심지어 남자를 만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저런 사람이 나를 왜 좋아하겠어?'.

늘 번번히 물러섰고, 포기했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체념할수록 마음은 편했지만 내 인생은 점점 더 후져졌어요.  


자수성가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평생 부모의 그늘에 가려져 살며 자기도 모르게 부모의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며 산다고 합니다. 늘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기준이 너무 높은 부모 앞에서 번번히 절망을 하고 맙니다.

생각해보면 저 역시 평생에 걸쳐  부모의 지지를 필사적으로 갈구하고 살았어요.

“괜찮아 다시 하면 돼”라는 가벼운 토닥임과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네 편이야" 같은 든든한 응원을 받고 싶었죠.


지금에 와서 보니, 애초에 응원을 줄 생각도 못하는 부모에게 어떻게든 그것을 받아보겠다고 발버둥치던 시간이 부질없고 가엽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어보려고 해요. 부모의 지지는 내가 "엄마"라고 입을 떼던 그 순간, 첫 걸음마를 떼던 그 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이죠. 그 지점에 미련을 떨며 계속 머물러 있다보니 저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어요. 앞으로 나아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뒤를 돌아본 것은 저 였어요.


엄마, 이거 봐봐. 나 좀 봐봐. 나 잘 하고 있지?

아빠, 제발 저를 포기하지 마세요. 나도 할 수 있어요. 이거봐요, 저 잘 하고 있잖아요.    


그때마다 제 부모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이제는 상관없어요. 아무도 나를 응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지지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건 누굴 원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건 내 삶을 이끌어가는 주체자로서의 당연한 일이라는 걸 이제 깨달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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