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Jul 19. 2023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열살 무렵 혼자서 수영장에 자주 갔었습니다. 

내성적이라 동네 친구도 많이 없었고, 먼저 친구 집에 가서 놀자고 할 변죽도 없었던 제가 혼자서 뭘 하고 놀까 고민하다 찾은 곳이 바로 동네 평생학습도서관 지하에 있는 수영장이었습니다.


물에 뜨지도 못하면서 혼자 발장구도 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수영을 하는지 흉내를 내면서 놀곤 했는데, 그때 가장 좋았던 것이 잠수였습니다. 처음엔 수영을 못하니까 뻘쭘한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잠수를 했는데 수영장의 시끄러운 소리가 일순간에 사라지고 고요해지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그 당시 삶이 늘 불안하고 시끄러워서 그랬는지 물 속에서 부유하는 그 시간은 참 아늑하고 평온한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가족과 연락을 끊은 후 죄책감과 분노의 시기를 지나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지나는 중입니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불안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잠수를 한 것처럼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오전 6시에 눈을 뜨고 남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먼저 화장실을 쓰네 마네 장난을 치며 웃고, 부스스 일어나 출근준비를 합니다. 컨디션이 좋을 땐 타다닥- 가스불을 켜고 후라이팬에 적당히 올리브유를 두르고 계란 후라이를 만들기도 하고, 어젯밤 미리 만들어둔 샌드위치를 나눠먹기도 하고요. 


출근은 보통 일찍 출발해서 회사 앞 카페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낸 뒤 하는 편입니다.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것보다 커피를 마시며 마음 정리를 조금 한 뒤에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이 저는 더 좋더라고요. 책도 보거나 사람 구경을 하고, 자기계발 관련 영상을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죠. 

퇴근 길에는 한 정거장 정도 걸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듣습니다. 제 플레이리스트 목록에는 아이유, 폴킴, 잔나비,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가 반복 재생되고요.


주말은 보통 오전 8시 반쯤 일어납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거실 소파에서 잔뜩 게으름을 피우다가 카페에 가서 글을 쓰거나 책을 봅니다. 주말은 최대한 느긋하게 보내는 걸 좋아합니다. 제 인생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기에 느긋하다는 것은 곧 자유이고 해방이며 평화였어요.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저 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낯선 일이었어요.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그 순간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아빠, 엄마, 오빠로 가득차 있었으니까요. 

그들의 걱정, 불안, 분노, 슬픔을 모두 신경쓰느라 하루에 1초도 온전히 나만 생각하는 시간은 없었어요.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죠. 


'나는 지금 나로 가득 채워지고 있구나.'  


물론 이런 평화로움 속에 짜증나고, 지치고 힘든 일이 왜 없겠어요. 

직장인인 저도 회사가 가기 싫어서 죽겠고, 가끔 사는 게 너무 어렵고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이불 속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기 싫을 때도 있고요.   


하지만 

내 삶에서 오직 내 문제만으로 벅차다 느끼는 것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나의 결정으로 내 삶을 일궈나가는 것

그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스스로 지며 내 인생을 내가 짊어지는 것

그 꽉찬 단단한 마음이 저를 다시 일으켜세웁니다. 


이제는 잠수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내 안에서 고요한 평화를 느낍니다.

비로소 내 인생이 단단히 뿌리내려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니 부디 그대도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오빠는 왜 돈 빌릴 때만 연락을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