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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allim May 06. 2022

두릅의 맛을 알아버렸다.

쌉싸름한 인생 같은 맛, 두릅

두릅은 그리움이다.

매해 4월 중순 무렵이면 아버지님이 직접 딴 참두릅을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두릅나무에서 원순을 따다 무심히 주방에 놓으면

바지런한 어머지께서 한 봉지 가득 담아 챙겨주시곤 했다.

두릅은 그렇게 우리집 밥상에 봄이 찾아오는 신호탄 같은 음식이다.


산채(산에서 나는 나물)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두릅을 데친다.

끓는 물에 소금 작은 한 스푼을 넣고 두릅의 밑동을 먼저 넣는다.

도톰한 부분과 연한 잎이 골고루 익어 식감을 좋게 하기 위함이다.

수줍은 듯 연녹색 빛깔이 슬쩍 감돌면 얼른 꺼내 흐르는 찬물에 몇 차례 헹군다.

말랑말랑한 두릅을 새빨간 초장에 콕! 찍으면 쌉싸름한 봄기운이 혀끝을 감싼다.

봄을 미각으로 아로새긴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두릅전을 부친다.

두릅 특유의 맛은 약해지지만 노릇하게 부친 고소함에 큰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어 좋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매 순간 내 의지로 사는 것인지, 그저 시간을 타고 넘어 살아가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눈 깜빡이다 멈칫하면 한 계절이 지나고 놀랍게도 한 해가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계절을 넘어가는 틈에 제철 나물과 같은 음식을 먹으면 가속이 붙던 일상의 고삐를 잠시 느슨하게 푸는 듯한 기분이다.

갓 지은 잡곡밥에 데친 두릅을 먹으며 웃는다.

봄기운 가득 머금은 두릅의 맛이 혀끝을 맴돌더니 이내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에 쌉싸름한 맛이 치고 올라온다.

살아생전 며느리와 변변한 대화가 없을 만큼 말씀이 없고 덤덤하던 분이신데

해마다 여린 두릅을 가득 따다 주신 그 마음이 수많은 이야기들보다 더 깊게 와닿는 까닭이다.


생동하는 봄이다.

따스한 햇살이 작렬하는 열기로 순식간에 둔갑하기 전에 올해는 제대로 만끽해보고 싶다.

식탁에 오른 두릅이 그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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