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은 어쩌면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해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자인가, 구원받지 못한 자인가. 에 대한 것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여부를 가르는 그 상태에만 머무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구원 그 이후의 성도의 삶에 대해서 더욱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구원 이후의 삶은 우리들 스스로가 발휘할 수 있는 어떠한 능력이나 의지 그리고 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직접 몰아붙이시어 당신이 이루시는 것이 진정한 우리들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하신 축복의 땅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가나안 지역이 그렇게 비옥한 땅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애굽이었지요. 가나안 땅은 그냥 땅으로만 본다면 척박한 땅이었고, 땅이 물을 제대로 머금지 못하고 굳어져 비가 조금이라도 과하게 온다면 강이 되어버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스라엘 민족을 그 땅에 보내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은 그 땅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셔서 직접 무한한 은혜를 주실 땅이었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 제가 이 꼴인데도 그러한 약속을 선포하시다니요! 그럴 수 있습니까?"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아닙니다. 좌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의 구원을 직접 완성시키시겠다고 선포하심에 대한 놀라운 은혜를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삼은 성도의 감격적인 외침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전적으로 타락하여 필연적으로 멸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결코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소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불가항력적인 은혜 앞에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양자 삼아지고 의롭다 칭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 순간 오직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그의 견인하심을 의지하며 성도의 모습을 이루어갑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를 완전케하실 그의 날을 바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지혜나 능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선물처럼 주어진 오직 믿음으로 하루하루의 매 순간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하는 것 외에 우리의 어떠한 보탬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보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의지.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를 기꺼이 의롭다 칭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믿는 것 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며 우리의 살 길이 됩니다.
그 은혜 가운데 진정한 위로와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이후의 삶의 기쁨을 충만히 이루는 데에는 오직 하나님의 의지만이 우리의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무지개를 볼 때 진정 우리는 자유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