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모든 순서가 마친 후 주변을 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현재 포항으로 이사를 한 후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아주 많은 책이 비치되어 있다. 책 곳곳에 담임 목사님의 흔적들이 보인다. 다른 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책을 읽을 때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함께 시선을 읽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내적 친밀감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오늘은 좀.. 나만 혼자 너무 저.... 멀리 친해졌나 싶다.
오늘 읽은 책의 저자인 로이드존스 목사님에 대해서는 개혁 주의 교회에 출석하게 된 이후 꽤 많이 들어보았던 것 같으나, 정작 이 분의 책을 직접 읽어 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이 세상이 즐겁고 흥겨워 책을 읽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에 약간의 갈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마음에 따라 '어쩌면 나도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책을 읽을 수 있을지도..?'라고 용기를 갖게 되었는데 그 구체적인 계기로, 이 책은 포켓북 마냥 작고 가벼웠으며, 두께 또한 당장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본래 책을 아주 천천히 읽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한 시간 반 만에 완독 한 후 원래 있던 자리에 딱 꽂아두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어떤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아 근데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책을 빌려왔어야 했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너무 빈손으로 와서는 이 책에 대해 무언가를 쓰려고 하는 나의 밑바닥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도 오늘은 엉덩이 잘 붙이고 앉아서 뭐라도 적어야 되겠다.
이 책은 유다서 1장 3절의 본문으로부터 시작한다.
" 사랑하는 자 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
유다는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라고 했다고 했다. 기독교란 무엇인가, 처럼 넓은 의미의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곧장 그 마음을 돌려 실제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에 근거하여 "복음주의자"에 대한 설교를 넓혀 나갔다(실제로 이 책은 복음주의캠프??!! 와 같은 곳에서 설교했던 내용들이 담긴 책이었다).
먼저 복음주의자가 '아닌'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복음주의자란 무엇인지 먼저 서두에 짜잔, 하고 밝히지 않고 진행되는 설교에 더욱 흥미진진했다. 이미 그것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 자들을 위한 설교였기 때문일까. 그래서 나는 복음주의자일까? 아니면 그렇지 않을까?
'복음주의자'가 '아닌' 자들은 우리 신앙의 근거가 '오직 성경' 임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 내용들로는, 성경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묘하게 바꾸거나 흐리는 것,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실제 삶의 적용 및 가치 판단을 동일한 선상에 두지 않고 구별하여 따로 두는 것, '믿는다'는 겉모양이 비슷하게 걸친다 싶으면 모두 같은 것으로 묶어 잡다하게 섞이게 하는 것, 성경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도구로 세상의 학문이나 이성, 철학을 대하여 생각하는 것, 설교 시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심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 성경을 함부로 추가하거나 덜어내는 것 등등의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자'들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복음 주의자들은 경건한 자들이었다. 예수께서 거룩하니 우리도 그리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땠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그리고 교리에 대한 중요성을 잃지 않는 자들이기도 했다. 현재 존재하는 교리와 신앙 고백서들은 만들어졌을 그 당시, 다른 믿음을 가진 자들에 대하여 우리가 믿는 믿음에 대하여 명료히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래서 현재의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신앙고백과 교리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음. 이 부분은 읽으면서 떠올렸던 것은 약간 거창한 느낌이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목소리를 냈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에 대한 표명은 분명히 수행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 무조건 '오직 성경'임을 고백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의 후손임을 성경에 표현된 그대로 믿으며, 후에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 뱀의 머리를 부순 둘째 아담으로부터 속죄함을 얻어 구원을 받았음을 고백하는 자들이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나의 고백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유일한 살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임을 받들어 전도하며 부흥을 소망하는 자들을 모두 복음주의자라고 하였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우리들은 계속해서 개혁되고, 개혁되고, 개혁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속성이 가져오는 폐해는 성경 외적인 부분을 계승하게 하고 그것이 짐이 되어 우리를 속박하게 하므로. 그리고 어떠한 개혁이 일어나면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아주 반대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근거지인 성경으로 끊임없이 개혁하며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직 나의 구원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성도에게 있어서 커다란 기쁨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완벽하고 견고한 것이 바로 우리 주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구원임을 다시 한번 확고히 약속받은 느낌이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한 걸음씩 알게 될 때마다 그 완벽 무결함에 그대로 엎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 책은 커다란 위로이다. 그렇구나. 주님만이 옳으시구나, 하나님께서 정말 인도하시는구나. 그래서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말씀을 놓고 도와주시기를 다시 한번 믿으며 기도할 수 있겠구나.
책을 한숨에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본디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이 책을 손에 들지 않아서, 였을 수 있겠고, 빨리 책을 제자리에 꽂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리고 지금까지 가르침을 주셨던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의 기도와 교육 덕분이겠다. 생각보다 책이 어려웠는데, 생각보다 잘 읽힌 것 같다. 맥락으로라도 때려가며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똑똑해서 그런 게 아닌 것이 분명, 분명하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책 읽기에 재미를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