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르키 Aug 24. 2023

청운의 꿈

연두 6일, 조리원 침대에 누워 내 꿈을 떠올리다

어제 하루종일 심했던 가슴 통증은 오늘 아침부터 나아졌다. 


유축부터 씻기는 법까지  

하나하나 배워가는 중 

어제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유축기 앞에 앉았다. 북향으로 난 조리원 창밖은 어둑어둑했다. 나는 조리원 원장의 권유대로 3시간에 한 번씩 유축해서 모유를 빼냈다. 간밤엔 통증이 심해져서 가슴에 아이스팩도 올려두고 잤다. 이런저런 노력들이 효과를 본 것 같다. 조리원 원장에게 받았던 가슴 마사지 덕분인지도 모른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아이스팩을 계속하거나 유축을 줄이면 모유가 말라버릴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열심이었다. 3시간에 한 번, 20분씩 유축하면 초유 40ml가 나온다. 사람 몸은 참 신비롭게 진화했다. 아기는 무엇이든 쪽쪽 빨려는 본능을 갖고 태어나고, 젖을 물려야만 엄마의 가슴 통증은 사라진다. 


오늘 낮엔 2시간 넘게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피곤해서 모유수유 중에 살짝 졸았다. 아직까지 아기는 젖 무는 힘이 약하다. 배고플 땐 몇 번 빨다가 지치는지 울어버린다. 아기가 내 품에 안겨 잠들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고, 깨우고 싶지 않아서 한참 바라봤다. 

 

신생아실 선생님에게 아기 기저귀 가는 법과 아래 씻기는 법도 물어봤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선생님은 왼팔에 아기 머리를 눕혔다. 왼손으론 아기의 왼발을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아기 엉덩이를 물로 씻겼다. 볼 때는 끄덕였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청운의 꿈

유축기 앞에서 20분 정도 멍을 때리는데, 갑자기 '청운의 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게도 꿈이 많았지.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지. 지금도 꿈이 참 많지. 


유축을 하면서도 시간이 순삭 되는데, 아이를 키우면 세월이 훨씬 빠르게 흐를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그래도 6개월은 아무 생각 말고 몸 회복에만 집중해."라고 했다. 전에도 그랬다. "임신 기간엔 임신에만 집중해." "서두를 것 없어."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고마우면서도... 시간이 흐르고 한 해 두 해 넘어가는 게 아쉽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남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걸까? 

이름난 좋은 회사에 다니고 싶은 걸까?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걸까?  

명성을 떨치고 싶은 건가? 


갈피를 못 잡겠다. 조리원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든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는데

남들 따라서 비타민D 드롭 주문

내가 있는 조리원 4층 신생아실엔 아기 5명이 일렬로 쪼르르 누워있다. 세상에, 아기들 침대 머리맡에 전부 다 비타민D드롭이 꽂혀있었다. 우리 아기만 쏙 빼놓고 말이다. 비타민D와 유산균이 들어있는 작은 병인데, 분유에 몇 방울씩 똑똑 떨어뜨려주는 거다. 다들 진짜 준비성도 대단하지. 


몇 달 전에 친구가 내게 비타민D드롭을 산후조리원에 들고 가라고 했었다. 나는 '뭘 그런 것까지야'라고만 생각했다. 막상 여기 와서 제 자식 머리맡에 비타민D드롭을 꽂아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까 조리원에 면회온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자, 남편은 "우리 아기만 없다니 그것도 좀 그렇네."라며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쿠팡으로 비타민D드롭을 주문했다.  


다행히도 아기는 하루에 4~5번씩 황금 응가를 쭉쭉 누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