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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Dec 05. 2023

꽃스님이 불편한 이유를 찾아서

불편하다고 해서 죄송해요 꽃스님은 멋지십니다... 출처: @kkotsnim 

‘미남 감별사’ 홍석천이 팔로우한 스님이라기에 궁금해서 찾아봤다. ‘꽃스님’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2.9만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계정 이름도 꽃스님을 영어 그대로 옮긴 @kkotsnim. 피드에선 젊은 스님이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짙은 눈썹, 19호와 21호 사이일 것 같은 희고 깨끗한 피부, 붉은 입술. 치아는 라미네이트를 한 사람만큼 희고 가지런했다. 어떤 사진들은 전문 사진작가가 찍어준 것 같았다. 만약에 승복 대신에 정장을 입고 있었다면 어느 기업의 사회초년생 모델이라 해도 좋을 호감형이었다. 꽃스님의 프로필 문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수행자는 꽃이며, 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약 없는 누군가에게 제가 품은 향을 맡게 해주는 꽃다운 수행자요. 그래서 저는 꽃이 되고자 합니다.” 사진 몇 장은 밝기와 대비, 채도를 올려 뽀얗게 보정한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실 꽃스님은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인스타를 하다가 수행을 게을리했다는 말은 없다. 혼자 암자를 차지하거나, 하극상을 벌이거나, ‘풀소유’를 하지도 않았다. 물론 외모로 주목받는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는 듯하다. 언론 인터뷰에서 꽃스님의 생각을 일부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수행이 많이 부족하다. 아직 은사 스님을 모시고 은사 스님이 시키면 심부름도 한다. 공부가 필요하면 공부도 하고 그렇게 지낸다. 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고 있고, 외모가 그 안에 들어가 있다 보니 스포트라이트를 조금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것 말고는 다른 스님들과 큰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 스님이 스스로 ‘꽃’이라 지칭하며 외모를 적극 드러내며 포교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가? 나는 잘생긴 정비공이나 축구선수, 회계사에게 분노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축구선수 조규성은 훌륭한 축구 실력에 남자다운 외모를 겸비해 인기가 많다. 그를 보면 불편하지 않다. 넷플릭스의 <솔로지옥 2>에 출연했던 방송인 덱스는 UDT 출신이다. 덱스는 예능에 나와 매력 있는 외모와 말솜씨로 상대를 사로잡는다. 그가 머리를 멋지게 쓸어 넘기거나 웃통을 벗으면 흐뭇할 뿐, 눈살은 전혀 찌푸려지지 않는다. 꽃스님도 인스타그램 프로필 문구에서 밝혔듯, 스스로 꽃이 되어 포교하겠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씁쓸함을 느낄까? 첫째, 나는 스님이 외모로 주목받는 ‘인플루언서’가 되지 않길 바란다. 수행자에게 외모를 향한 애착이 없길 기대하는 것이다. 어릴 적 읽었던 달마대사의 일화에서 감동받아서인지도 모른다. 달마대사가 험악한 얼굴을 갖게 된 이유는, 그의 훌륭한 얼굴을 달라는 마귀의 제안에 망설임 없이 쿨하게 바꿔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외모지상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달마대사에게 감동했다. 따라서 스님이 겉모습을 앞세우는 것은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의 일환으로, 만약에 스님이 벤츠를 타고 다니거나 파텍필립 시계를 찼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불교를 깊이 공부하진 못했기에, 이것이 불교의 가르침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둘째, 마케팅과 셀러브리티 문화가 내 일상에 깊숙이 침투했다는 불편함이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 몇 달 전 여행지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웠던 순간을 언급하려 한다. 


지난겨울, 친구와 전라남도 구례를 여행하며 어느 절에 들렀다. 휴식이 필요했다. 백제 시대에 지어진 절의 고요함에 압도되고 싶었다. 예상외로 경내는 방문객과 공사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처음엔 경쾌한 활력으로 다가왔다. 유적관을 짓는 공사장에선 철근이 드러나 있었다. 우린 웃으면서 농담도 했다. “와, 진짜 크고 바쁜 곳이다. 부유하게 보이는 절이네.” 하지만 법당에 들어가자, 사찰 입구부터 조금씩 쌓였던 불편함이 몸으로 느껴졌다. 높은 나무 책상 앞에 앉아있던 자원봉사자(혹은 신도)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들어올 때 불전함에 돈 넣으세요!” 나는 멀뚱한 얼굴로 주춤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가 불전함을 향해 한 번 더 손가락을 가리켰다. 법당 안에서 직접 헌금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못 들었을 거야’ 싶다가도, 불전함에 1만 원을 넣고 잠시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구례 여행 일주일 뒤, 내가 들렀던 절에 보이그룹 BTS의 리더 RM이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눴다는 기사들이 떴다. ‘BTS 리더 RM, 음악 영감 찾으러 절에 방문. 국방 의무 얘기도 나눠…’ 일주일만 늦게 갔더라면 나 역시 RM과 한 공간에서 숨 쉬는 기쁨을 만끽했을 텐데... 그러나 얼마 뒤 RM이 인스타 스토리에 불편한 심정을 비췄다. “기사까지 내시다니. 다음엔 다른 절로 조용히 다녀올게요.” 어쩌면 RM도 조용하고 역사 깊은 곳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슈퍼스타로 바라보지 않을 곳에서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RM 역시 불편한 심경을 인스타로 밝혔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내가 팔로우하는 마케터의 인스타 계정에 꽃스님에 관한 언급이 올라왔다. “와우, 꽃스님이라니! OO사 마케팅 맛집이네. 네이밍도 마케팅 센스도 근사하다.” 그 문장에 나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근사하지? 절이나 성당에서까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단어들이 있다. 마케팅, 네이밍, 인플루언서, 광고, 홍보, 이윤 창출, 상업화, 자본주의… 물론 그들은 나름대로 MZ세대를 향한 포교를 다각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K-사찰의 희망이나 마케팅에 관한 영감을 발견하려고 절에 가는 게 아니다. 꽃스님을 만나러 절에 가서 절이 출시한 비건버거를 먹으며 자동반사적으로 #비건버거 #대박 #꽃스님존잘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싶지도 않다. 


내게는 케렌시아(스페인어로 피난처, 투우 경기에서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쉬는 공간)가 필요하다. 스님마저도 ‘셀프 브랜딩’에 열심이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올리며, ‘인플루언서’가 되는 세상이 점점 더 숨 가쁘게 느껴진다. 종교 시설이 아니어도 좋다.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을 나눌 공간이 가까이 있기를 바란다. 돈이 없어도, 생산성이 떨어져도, 직업이 없어도, 외모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도, 연애 상대가 없어도,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무교인 내게 산속의 절은 그런 공간이었다. 꽃스님에게 과한 기대를 걸고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나의 휴식처 중 하나가 외모지상주의와 상업화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마케팅이 닿지 않는 장소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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