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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채 Apr 13. 2021

어쩌면 화가가 아닌 수필가, 윤형근

윤형근 (화가, 1928~ 2007)

윤형근의 그림은 굉장히 단순하다.

윤형근의 그림은 세상을 이루는 구성요소 중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하늘과 땅, 오직 두가지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생명들은 생략 혹은 함축되어 그의 작품에 담긴다. 과감한 생략과 함축을 통해 윤형근의 단색화는 더욱 묵직하고 단단해지지만, 이따금씩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기도 한다.



윤형근의 글은 그의 그림은 완성시킨다.

감동이란 인간사 희비애락(喜悲哀樂)과 같다. 
희(喜)는 곧 차원을 뒤집으면 비(悲)가 아닌가? 
즉 가장 아름다운 것은 희(喜)요 곧 비(悲)이다. 
그래서 예술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슬픈가 보다. 
그래서 가장 슬프면 눈물이 나고 가장 기뻐도 눈물이 나오게 마련인가 보다.

- 윤형근, 1980년 7월 5일 일기 중
이 땅 위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이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살아있는한 생명을 불태운 흔적으로써,
살아 있다는 근거로써, 그날 그날을 기록할 뿐이다.

- 윤형근, 1990년 우메다 갤러리 개인전 작가노트 중 -

윤형근의 문장은 이따금씩 관객과 작품 사이를 가로막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 주고, 윤형근이라는 인간에게 애정을 느끼게끔 만든다. 그는 화가인 동시에 기록을 게을리하지 않는 수필가였다. 살아 있다는 근거로써 기록하던 그는 항상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해 왔다. 매일매일 의무처럼 써내던 그의 문장을 보다보면, 오직 하늘과 땅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그려나가는 그의 표정까지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윤형근을 계기로 문장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글쓰기는 오직 펜과 종이만으로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일상과 가장 가깝고 자유로운 예술이다. 하지만 어느 활동 못지않게 큰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 수많은 사진과 그림 보다 더 직접적이고 명료한 글 한 줄은 스스로에게 찍는 낙인과도 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리니 오해 받을지 언정 무엇이든 써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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