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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Jul 26. 2020

파리일기_코로나 속 여름, 뤽상부르 정원

같은 것들에 유치해지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주는 호사다

https://youtu.be/bFbzJPZuezs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 엠마가 냉장고에 넣어두어 시원해진 커피로 잠을 지우고 버터에 구운 빵을 꿀을 발라 먹어 배를 달랜다. 그리고는 바로 책상에 앉아 프랑스어 공부를 한다. 지쳐 잠이 들 때까지 점심과 저녁을 먹으면서 30분 정도씩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게 공부를 하고 있다. 11월에는 DELF B2를 따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찍어 온 영상들도 만져볼 여유가 없다. 살면서 이렇게끔 긴 시간을 앉아 공부를 해본 적이 있나 싶은데도 프랑스어는 도통 늘지가 않는다. 몇 시간도 진득하니 앉아 공부를 하는 엠마와 달리 마흔을 앞둔 나는 몸이 따라가 주질 않는다. 초등학생 마냥 40분이면 몸이 근질하다 못해 아픈 느낌이 든다. 억지로 붙들고 달래어 한 두 페이지를 끝내곤 아이고 큰 한숨을 던지며 슬쩍 침대에 누워본다. 그렇지만 이내 스며드는 죄책감에 애먼 커피만 더 타 와 슬그머니 다시 책상에 앉는다. 


공부하기가 너무 괴로운 나를 달래려 일주일에 하루씩은 쉬기로 엠마가 약속을 해줬다. 오늘 마침 그날이 되어 주문한 책도 받고 한인마트도 갈 겸 뤽상부르 정원에 가기로 했다.


7호선 주시으역에서 네모난 모양의 10호선 열차로 갈아타고 오데옹역에 내렸다. 오데옹역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운영하는 6개의 국립 극장 중 하나인 삼각 지붕의 오데옹 극장이 있다. 오데옹 옆쪽으로 난 고풍스러운 길을 따라 뤽상부르 정원을 향해 걸었다.


작년 가을 캐나다에서 온 어학원 친구가 같은 클래스 친구들에게 함께 가서 맥주 한잔씩 하자고 했던, 선생님이 아름답다고 늘 가보길 권유하던 그 공원을 이제서야 가게 되었다. 그때는 날도 추웠고 또 떠들썩하게 몰려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라 어색한 미소만 보내곤 가지는 않았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파리의 공원들을 다 가보자 했던 것이 코로나 때문에 이제야 여름의 해 아래서야 가게 된 것.



뤽상부르 정원의 구성은 튈르리와 크게 다르지가 않다. 궁전을 두고 인공연못이 있고 인공연못 주변을 광장처럼 비우고 그 외곽으로 나무들과 산책길이 나있다. 다만 정원 자체가 직사각형 모양이라 주변 건물들이 연못에 가까이 다가와 있어 마치 벽을 두른 것처럼 느껴지는 튈르리와는 달리 꽤 길이가 되는 숲길 뒤로 건물들이 물러나 있는 뤽상부르가 사방으로 더 은은한 시야를 제공한다. 더구나 나무들 너머로 얼굴이라도 내밀고 있는 엥발리드, 오데옹, 팡테옹, 에펠탑과 함께 긱 방향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즐기고 있었지만 넓은 정원이라 서로가 의식이 안 될 만큼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인지라 벤치에 나눠 앉아 싸온 음식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우리도 구석 벤치에 앉아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이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모습도 꽤나 보였다.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없었고 미국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이 사진을 담고 간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사진을 찍었다. 그 파도 같은 모습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와 산책을 하던 커다란 리트리버가 큰 돌을 입에 문채 우리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너무 갑작스러운 등장에 우린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놀래지도 반기지도. 아빠의 줄 당김에 씬스틸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큰 돌을 문 채로 퇴장을 했다. 곧 머리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똑같이 커다란 리트리버를 끌고 산책을 나온 친구를 만난 아빠가 비쥬를 나누려는데 아이들이 그 새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서로 뒤엉켜 붙은 것이다. 아이들의 흥분에 주인들까지도 휘청거리며 뒤엉켰다. 간신히 서로의 개들을 진정을 시킨 주인들이 몇 마디의 인사말을 나누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멀어졌다. 아이들은 그러기가 싫은지 끈에 목이 눌리면서도 한참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개는 개와 노는 게 더 재미있겠지.



구름이 많은 날씨라 해가 오래 숨을 때면 서늘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곳의 정원마다 있는 안락의자를 양지로 옮겨와 해를 맞았다. 구름의 기세 좋은 행진에 여름 해는 좀처럼 고개를 못 들었다. 너무 뜨겁지도 않은 게 난 마냥 기분이 좋았다. 별 다를 게 없어도 잠깐의 햇볕만이라도 행복한 시간 그리고 공간이었다. 연못에 보트를 띄우는 아이와 술래잡기를 하는 남매들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책을 읽는 남자와 그림을 그리는 아저씨가 있었다. 엠마는 안락의자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는 못 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공기가 되어 주는 일도 재미가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기 전에 남은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적당히 눌어붙은 엉덩이를 뒤집듯 떼어내고 레고 같은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쪽으로 길을 잡고 걸었다. 네모난 나무들 아래로 난 잔디 위에는 유치원생들이 선생님을 가운데 두고 누워 뒹굴고 있었다. 나란히 눕거나 겹쳐 눕거나 하는 커플들. 이름 모를 운동을 하는 친구들. 누워 바케트를 뜯고 있는 회사원들이 있었다. 돗자리나 손수건 아니면 신문지나 전단지라도 깔고 앉는 우리들과는 달리 이곳 사람들은 잔디를 마치 카펫처럼 여기며 거리낌 없이 앉고 누워 있는 게 신기했다.



살고 싶은 거리를 가상의 이사를 하며 걸었다. 같은 곳을 걷고 같은 것들을 보고 같은 것들에 유치해지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주는 호사다.


프낙에 들려 공부해야 할 책들을 받아 가방의 무게를 더하곤 몽파나스 타워로 이어지는 렌느 길을 걸었다. 파리에서는 드문 고층빌딩인 몽파나스 타워가 서 있는 쪽은 서울 같고 낮은 빌딩들이 쭉 이어진 콩코드 광장 쪽은 파리 같은 신기한 분위기의 길이었다. 여름 세일하는 곳들을 슬쩍슬쩍 들려보며 남은 체력을 아낌없이 깎았다. 망설이는 엠마의 손에 기어이 호브 하나를 들려주었다. 이번 여름, 처음으로 산 옷이었다. 


톨비악역에 잠시 내려 한인마트에 갔다. 20개짜리 라면 박스와 떡볶이, 국수, 메밀 그리고 각종 양념들. 옷보다 더 무겁고 비싼 음식들을 들고 운이 좋게 여유로운 지하철에 올라타 집으로 미끄러져 갔다.


오늘 저녁에는 어묵이 든 떡볶이를 먹겠구나.


글, 이미지 레오.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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