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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Aug 08. 2021

파리일기_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Admission.

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Admission. 오래되어 어깨를 대고 온몸으로 밀어도 도통 삐걱이지도 않던 문을 안에서 누군가가 덜컥 열어주었다. Entrez.


경로를 벗어난 차의 내비게이션처럼 지난 2년 동안 내 귓가에는 내내 경고음이 울렸다. 처음 베개에 귀를 누인 숙소에서의 늦가을은 무척이나 습했다. 겨울 내내 대중교통 파업으로 지하철과 버스는 멈췄고 비가 내려 축축한 도로를 우리는 트후띠네뜨 위에 올라 달려야 했다. 봄이 되자 파리는 이름답게 빛이 났지만 곧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전염병이 다가와 유럽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박물관도 레스토랑도 국경도 문을 닫아걸었다.



반년 동안 파리는 우리의 창문 크기로 줄어들었다. 서울이 못 보여주는 하늘색과 구름들, 무지개, 눈과 번개 등을 보며 지냈다. 프랑스어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나는 핑계처럼 투정처럼 나이를 손으로 꼽아보다 부끄러운 잠에 들었다. 잠시 열었던 학교는 다시 문을 닫았고 똑같은 반복 속에 난 파리도 서울도 아닌 작은 방에서 체류를 연장하고 겨우겨우 작문을 하여 대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내게 몇 년간은 늘 실패의 연속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통과한 것은 프랑스 입국 심사와 간신히 넘은 어학시험, 그리고 체류증 연장뿐이었다. 도무지 환영하는지 밀어대는지 알 수 없는 프랑스인들처럼 프랑스도 적당한 간격으로만 내 곁에 머물렀다. 나머지 것들은 내가 먼저 등을 돌렸다면서 빠른 소리를 내며 배수구 구멍으로 달아나 버렸다. 시커먼 구멍 아래로 더는 경로가 보이지 않아 뒤쫓아 갈 수도 다시 가 어색한 화해를 할 수도 없었다. 0개 국어 능력자가 되었고 그처럼 무중력의 상태에서 부유했다. 꿈을 자주 꿨지만 무엇도 쉽게 쓰질 못했다.


들어와도 좋아.

끝까지 내가 스스로 욕심을 내야 하는.. 나는 끌려가는 게 좋은데 와달라고 졸라주면 좋은데.. 그저 깔끔한 허락 ‘들어와도 좋아’.



며칠 전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우리가 예약한 백신센터는 방센 숲 근처에 있었다. 백신 덕에 처음으로 방센 숲을 걷게 되었다. 최근 비가 잦아서 인지 검지만 한 민달팽이가 개똥처럼 바닥에 널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로 달팽이를 밟고서 그 물렁이는 감촉에 깜짝 놀라 괜스레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늘 그곳에 있었다. 오히려 놀랄만한 침입자는 내 쪽인 걸. 미안해.


구석진 곳까지 가서야 발견한 벤치에 앉아 싸 가지고 온 포도와 차가운 커피를 마셨다. 나무가 굴을 지어 벤치 위에는 해가 전혀 들지 않았다. 뜨거운 커피를 싸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가 이상 고온과 산불에 고통을 겪고 있는 지금 프랑스에는 예년보다 훨씬 낮은 기온이 이어지고 있다. 집어넣었던 긴 팔을 다시 꺼내 입고 민망하게 접어 넣었던 솜이불도 다시 꺼내 덮고 있다.



백신 센터에는 보건패스의 실행 때문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간단한 설문지에 Non으로 줄을 세우고 사복을 입은 간호사 앞에서 또 간단한 질문에 Non을 말한 후 왼팔에 주사를 맞았다. 의사와 또 짧은 상담을 나눈 후에야 1차 접종 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다. 2차 접종은 3주 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후 한국에서 사 온 타이레놀도 챙겨 먹었지만 괜한 두려움에 가슴을 자꾸 문지르며 사흘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뻐근해하던 왼팔을 나도 모르게 사용하며 글을 쓰고 있다.


여전히 프랑스어는 늘지 않았지만 학교는 개강을 할 테고 새로운 생활은 시작이 되고 말 테다.



그저께 갑작스러운 뉴스를 들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메시와 바르셀로나 사이의 새로운 계약이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한 경제적인 제약으로 인해 불발이  것이다. 메시가 바르셀로나를 떠난다는 믿기 힘든 소식에 더해 내가 있는 파리로 오게   같다는 비현실적인 뉴스가 이어졌다. 네이마르가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10 져지를 사양하고 1+9 의미하는 19번의 파란 져지를 입고 파리에서 뛰게  메시.


메시가 뛴 경기는 거의 모든 경기를 직접 눈으로 지켜봤지만 내게 그는 항상 작은 모니터 속에 있는 존재였다. 내가 꿈꾸는 예외를 보여주는 마스터피스처럼.

그 환상 같은 이미지가 실물이 되어 내 눈앞에 움직인다는 생각은 야릇한 기대가 아니라 이상한 메스꺼움을 느끼게 했다.


모든 것들이 이젠 생활이 된다.


어찌했든 이 여름은 새로운 시대인 거다. 그러니 견뎌야지. 아니 즐길 수 있다면 즐겨야지.


W, P. 레오


202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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