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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차정숙을 통해 본 여성 서사의 힘

글쓰는한량의 <냉정과 열정사이> 2편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통해 본 여성 서사의 힘,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있다. 


지난해 드라마 <슈룹>에서 김혜수 배우가 쏘아 올린 공은 <더 글로리>의 송혜교 배우에게 패스되었고 그 후 다시 <퀸메이커>의 김희애, 문소리 배우에게까지 그리고 <닥터 차정숙>의 엄정화 배우로 안착되어 가는 중이다. 그 ‘공’의 핵심은 여성 서사다. 반갑다. 이렇게 연타로 본격적인 여성 서사가 대중들의 눈에 확고히 그것도 꽤 긴 시간 동안 들어온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단, 앞서 언급한 작품 중 드라마 <더 글로리>의 경우 ‘본격 여성 서사’라고 극을 한정 지을 순 없지만 여성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점과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여성 주인공’의 행동이나 전개 방식이 서사의 큰 맥락을 좌우하는, 주요한 요인임을 감안함을 미리 주지한다) 
 
 시작은 ‘엄마콘텐츠’였다. 부족한 자식을 향한 피 끓는 모성애는 시대를 초월하여 한 국가의 왕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드라마 <슈룹>은 말썽꾸러기 왕자들을 피비린내 나는 ‘권력’에서 보호하고자 했던 엄마이자 나라의 국모인 중전 임화령 (김혜수)의 고군분투기였다. 숱한 권력의 아귀다툼에서 자식의 ‘슈룹(우산의 옛말)’이 되어주고자 했던 엄마의 이야기에 모두 공감하고, 모두 가슴 아파했다. 이 드라마에서 ‘엄마’의 위대한 힘은 대체 어디까지이고, ‘엄마’라는 사람은 대체 자식을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지 뼈저리게 그려갔다. ‘엄마’이기에 가능하고, 어쩌면 ‘엄마’이기에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기꺼이 그들을 위해 자신의 ‘슈룹’을 내어 주고, 타인의 ‘슈룹’이 되기를 자처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삶을 다룬 서사였다. 다시 언급하지만 비단 이 드라마는 여성 서사로만 국한해서 볼 드라마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서사에서 이 드라마를 언급하고자 한 것은 주인공 동은(송혜교)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동은은 ‘엄마’에게조차 보호받지 못한 채 폭력의 고통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이를 ‘악’ 물고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가해자들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았다. 드라마 속 동은(송혜교)은 ‘강한 여성’의 힘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한다. 고통을 나눌 힘조차 그녀에게는 없었다. 오직 자신만을 믿고 자신만을 의지한 채 하루하루 ‘복수의 칼’을 갈았던 것이다. 치밀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단단함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조력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은숙 작가는 기존 드라마에서 보였던 절대적인 힘을 소유한 남자조력자의 힘을 대폭 줄이고, 그 자리에 동은을 도울 든든한 여성조력자를 배치했다. 현남(염혜란)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지만 동은과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또 다른 여성인 현남의 딸을 구하고, 현남 역시 폭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게 된다. 또 현남을 만나게 되기 전까지 동은은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그 모든 과정을 준비했다. 현남의 도움은 우연한 기회였고, 신의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반면 드라마 <퀸 메이커>는 여성끼리의 연대와 협력을 전면에 내세워 문제의 해결을 꾀한 여성 서사다. 대기업 전략기획실에서 재벌가의 온갖 비리 척결에 앞장섰던 황도희 (김희애)는 인권 변호사 오경숙(문소리)과의 만남으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권력과 돈의 논리로만 세상을 사는 재벌과 정치판을 뒤흔들 계획을 꾸민다. 도희와 경숙은 함께 연대하여 든든한 조력자이자 러닝메이트로 온갖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갈등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결국 ‘연대’와 ‘협동’, 서로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마무리된다. ‘워맨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게 한 드라마다. 


그리고 아직 2회밖에 방영되진 않았지만 드라마 <닥터 차정숙> 역시 여성 서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의대를 나왔지만 집안일과 육아에만 전념했던 차정숙(엄정화)은 40대 후반의 문턱에 들어서며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에 남편과 시어머니의 이기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장롱면허’였던 ‘의사면허증’ 갱신에 돌입한다.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이를 한 단계 한 단계 스텝을 밟아나가는 것이 흡사 드라마 <더 글로리>의 동은과 닮았다. 그녀는 20년 만에 스스로의 힘으로 전공의 시험에 도전하고, 50점 만점에 49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의사세계’에 입성하는데 일단 성공한다. 

아마도 이후의 드라마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어쩌면 예견되는 것처럼 남편의 외도와 시어머니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 등에 부딪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반가운 이유는 자신을 구원할 힘을 외부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과 성찰, 고민과 질문에서 그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시행착오, 어려움, 고통, 갈등을 직면한다. 그때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할 수 있고,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떤 갈등이나 문제건 그것을 해결하는 마지막 힘이자 결정적인 힘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하다. 최근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에 드러난 일면의 면모들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따로 구분할 필요 없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힘을 믿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감히 ‘자기 구원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하늘을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는 막연한 종교적인 신념이 아닌 스스로를 믿는 힘은 생각보다 꽤 세다. 우리는 자신보다 타인을 더 의지하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타인에 대한 인식을 전면배제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에게 힘을 만들어 주는 자기 구원력 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한다. 이를 위해 일단 갈등과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필요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감정’적인 해석은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게 하는 힘을 떨어뜨린다. ‘감정’이 개입되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문제를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문제의 지점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짚어 나간다. 이때 ‘감정’은 뺀다. 그 후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스스로 마련해 본다. 이때 중요한 것은 ‘힘’이 기르는 것이다. 힘은 물리적인 힘도 될 수 있지만 지혜와 순발력 혹은 빠른 판단력, 통찰력이 될 수도 있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평소의 생각정리나 시뮬레이션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힘을 믿는 긍정적 태도와 실행력이다. 마음만 먹는 것이 아닌 몸으로 직접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익혀놓고 마련하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진짜 힘이다.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충분히 있다. 


이윤영작가 (작가/문해력, 표현력연구가) 




* 본 글은 세계일보 이윤영작가의 <냉정과 열정사이>의 연재물입니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418507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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