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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Mar 19. 2024

플랑드르의 성채와 같은 교회

플랑드르의 성채같은 교회와 운하

무엇보다도 맑은 대기와 새파란 하늘 아래서

낡고 낡은 담 아래서 움트는 수선화를 바라보다가

시간의 화살표 법칙에 꼭 속도를 맞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중세의 교회는 성체이자 신앙 고백의 장소이자,

공연장이자 미술관이자 의료빈민 구제 기관이자

교육기관이었다.

그런 세상은 마음을 모으기가 훨썬 편하고

모아진 마음은 견고했을 것이다.


현대의 인터넷은 중세의 교회를 대신하는 것인가.

세상의 현재와 진행방향에 신경을 기울이고

기민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인간의 최소한의 의무라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점점 오리무중의 탁류 속으로 들어가는

세상에 상처받고 한탄하다

인류애마져 거덜나던 와중에


플랑드르의 요새같은 교회 건물과

몇 년이나 저러고 서 있었을까싶은

옹이 가득달고 어깨를 곁고 나란히 선

교회 정원의 십자가 나무 아래를 걷다보니

죽어가던 인류애가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시간도 거꾸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몸은 21세기를 살아가지만 마음은

12세기를 살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을 몇 권 구하고 싶었는데,

미술관도 그 많은 예쁜 서점들에서도

영어로 된 책은 구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가서 할 일이 생긴거다.

현재 진행중인 원고 마감하면,  플랑드르를 알아보겠다.  

.




집의 정면을 이렇게 빈틈 없이 장식하고도

이렇게 예쁜 문패를 집마다 예술적으로 걸어놓는다

저 집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의사 진료실도 있고, 호텔도 있고

1층엔 소리도 없고 소문도 없이 숫한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성업중이다.

다음에는 소리없이 숨어있는 식당을 찾아가자.


집을 이렇게 예쁘고 견고하게 지은 것도

모퉁이 모퉁이 신앙을 세겨 넣은 것도

간절함과 진실함이 전해진다.

거리 모퉁이마다 집의 외벽 가장자리에 또 벽감을 파서

수호성인을 모셔 놓았다.

마음을 모으는 정성이 지나가는 여행자에게까지 느껴졌다.

신앙의 단결된 마음과 힘, 거기서 파생된 모든 예술과 미학.

거대 종교라는 가공의 이야기가 묶어낸 단결된 마음이

무엇을 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중세 도시.


조선의 서낭당 역시 이런 마음이었을텐데.

그냥 쌓아올린 돌무더기들....  

좀 더 간절했더라면 좋았을뻔했다.

어떤 학자는 조선에는 종교는 없고 종교지향성만 있었다고 했다.

종교는 없고 종교지향성만 가졌던 습성은 아직도 남아서  

힘세고 돈 많은 이름 큰 사람들이 서낭당이 되고

그 앞에다 여전히 돌무더기를 쌓아올리는 사람들.  

.


gruthuse hof 벽의 모서리에서 거리를 수호하는 벽감 속의 자그마한 성인에게 눈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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