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배달된 추석
추석의 붉은 보름달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으나, 고공으로 치솟은 야간 램프의 불빛과 뒤섞여 아련한 오렌지색 점으로만 남았다. 이미 집에 충분한 와인이 있음에도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길에 와인과 꽃을 두 다발이나 사들고 왔던 것은 탈고를 축하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꽃과 와인을 선물하고 선물 받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고 위로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과 감사를 나누기 좋은 시대를 살고 있는가....
축하와 고마움과 위로를 나누는데 지리적 거리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지난해 가을, 세 번째 책 출간을 앞두고 귀국을 준비하던 어느 늦은 저녁에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뉴욕에서 친구가 귀띔도 없이 축하 카드와 꽃다발을 보내온 것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다 직장 생활로도 정신없이 바쁠 텐데 그 먼 곳에서 마음 써 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친구가 보내준 꽃의 향기는 며칠간 집안에 머물다 사라졌지만, 그녀의 마음은 앞으로도 나와 함께 세월을 건너갈 것이다. 바쁜 일상에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문득문득 생각할 때 티박스나 향수, 봄의 풍경이 수놓은 스카프 같은 것들을 뉴욕에서 휴스턴으로 사이로 주고받는 동안 20년이 흘렀다.
그제 나는 새집으로 이사한 캐나다의 오랜 친구에게 꽃다발과 와인을 선물했다. 꽃배달을 주문하고 한 시간이 지난 뒤에 친구는 배달받은 꽃과 카드를 사진으로 보내왔다. 내가 인터넷상에서 입력한 축하카드의 글귀를 꽃배달 회사에서 유려한 필기체의 손글씨로 카드에 담아 배달했다. 그 정성은 예상밖의 것이어서 놀라웠다.
우리는 유치원 동창생의 부모들이고 그녀와 나는 여전히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또 아이들에 대해 과장 섞인 허세를 부리며 깔깔거리기를 즐긴다. 전화로 수다를 떨다가 아이들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are you ready? are you ready? now here it goes..." 하면서 ‘자 우리 이제 누가 누가 잘하나 자랑질을 한번 시작해보자 깔깔깔' 하는 그녀가 귀엽다. 유치원 시절 얌전한 내 아이는 그녀의 짓궂은 개구쟁이 아들을 버거워했지만, 그 짓궂은 개구쟁이가 이제 20대의 엘리트 청년이 되고 엄마를 위해 조지안 베이 호숫가의 예술 마을에 작은 싱글홈을 사드린 거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던 해 내가 미국으로 내려와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도 내게 트럭에 집을 통째로 싣고 캐나다로 돌아오라는 농담을 잊지 않는다.
내 품위는 내가 지킨다.
주말 아침, 오스틴을 향해 두 시간 반의 드라이브를 나섰다. 남편은 지난 몇 주간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과의 비즈니스 미팅과 콘퍼런스, 그리고 회사 내의 여러 가지 프로젝트 론칭과 관련한 일들로 정신없이 바빴고, 나는 나대로 신경을 써줄 여유가 없었다.
길고 길었던 한 주 끝에 바람 쐬러 드라이브를 나섰다. 중부 텍사스의 높은 언덕이 있고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고원 아래로 거대한 자연 호수가 펼쳐진 지형은 마냥 평평하기만 한 남부 텍사스와는 전혀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때문에 기분 전환이 된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내릴 때 도로 옆으로 드러난 지층의 하얗게 반짝이는 나이테가 아름답다.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청정하늘에서 시시각각 재미있는 모양을 연출하는 구름의 게슈탈트를 쫓아가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진다. 가분수 아기 코끼리 점보가 오른쪽 하늘에서 날고 있었고, 목이 긴 공룡이 나타나다가, 날개를 떼놓고 한눈팔고 놀러 나간 천사도 모습을 드러냈다. 평야를 끝도 없이 달려가면서 나는 미국 사람들의 나이 들어가는 풍경에 관한 최근의 고찰을 남편에게 들려주었다.
안지는 오래되었지만 최근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 델타 항공의 기장으로 하늘을 날다 은퇴하신 웨인 씨의 이야기며, 근력 운동과 요가 스튜디오에서 항상 마주치는 카르멘 씨의 이야기, 80의 나이에도 손녀와 매주 시간을 정해놓고 테니스를 즐기는 요셉 씨의 일상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은 '내 품위는 내가 지킨다'를 몸으로 보여준다.
인구 절벽으로 연일 곡소리 나는 한국과는 달리 이 동네는 500미터가 멀다 하고 사설 유치원이 들어선다. 어찌나 사설 유치원이 많은지 깜짝 놀랄 정도인데, 내가 박사공부를 시작할 무렵 내 또래의 엄마들은 셋째를 뱃속에 넣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인구 증가 상황이 그러니 할머니 할어버지들이 손주를 봐주는 일이 자연스럽다. 여전히 하루 두세 시간씩 운동하는 요셉 씨와 카르멘과 웨인 씨는 나보다 근력이 더 튼튼한 것 같은데, 겉으로 풍기는 꼿꼿함과 자신만만함은 또 얼마나 단단들 하신 지.... 그들의 일상 스케줄이 자녀들의 근무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손자와 손녀들의 방과 후 시간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it's not a burden. it's privillage 야 하시는 복 받으실 분들...
아침과 저녁시간에는 나는 힘겨워서 차마 못하는 피트니스 프로그램을 나보다 거뜬히 하고, 체력 길러서 어린 손자와 손녀들의 방과 후 일상을 함께하고, 낮에는 취미생활 봉사활동 하시는 그분들을 보면 품위 있는 어른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자기 품위는 그렇게 자기가 지켜가는 것이다. 이름 뒤에 붙은 과거의 타이틀의 후광도 아니고 '의전'을 행해주고 비위를 맞춰주는 시중들이 있어서도 아니다. 오래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품위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이런 신체 건강하고 마음 넉넉한 부모들이 뒤를 받쳐주니 이 동네 사람들은 애를 셋씩 넷씩 낳고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이고, "절대로 손자 손주 봐주지 않을 거야. 내 인생은 나의 것! " 외치는 한국의 세련된 할머니들은 손자를 안아볼 일이 안 생기는 거다.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기 인생이 너무 소중해서 손자들을 절대 돌봐주지 않겠다는 할머니들을 보면 나는 외람되지만 가련한 인생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던가? 육아를 누가 도와주든 말든 내 인생도 나의 것이니까....
하느님이 인간이 외로울까 봐 반려자랑 짝지어 살게 하시고, 그러고도 둘이서만 외로울까 봐 자식을 점지해 주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가끔 손자 손녀들 쪼롬히 줄 세워서 발레와 첼로와 운동을 가르치러 다니고 손자손녀 서포터스로 학교에 봉사하러 다니는 상상을 가끔 한다. 그것이 상상에서 끝날지 실현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리고 손주들을 데리고 유럽의 곳곳을 여행하기 위해 역사공부도 꼼꼼히 해 둔다.
웨스트 교수와 거북이를 만나는 레스토랑
새로운 레스토랑을 찾아보고 싶었으나, 남편은 늘 가던 곳을 고집하는 습관이 있어 매년 한 두 번 꼭 들르는 그. 바비큐 집을 찾았다. 이곳에서 그의 워털루 공대시절 은사인 W 교수 내외와 해후를 한 것이 벌써 작년의 일이다. W 교수는 안식년을 오스틴에 있는 회사에서 협업하며 보내더니, 캐나다의 명성 높은 대학 교수직도 아예 사직을 하고 미국회사의 임원으로 내려왔다. 아카데미아보다 필드에서 더 신나게 꿈을 펼치고 있는 그는 남편보다도 고작 다섯 살이 많았다. 나이를 먹어서도 순수함과 차분한 겸손함을 가진 사람들을 드물게 보는데 W 교수가 그런 분이라 그 자리가 편안했다. 장성한 두 아들까지 모두 미국으로 내려온 상황에 대해서 간호사 생활을 오래 해 온 그 부인은 시니컬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연락을 미리 드리고 다시 한번 만나 뵈고 싶은 분들이다.
식전에 텍사스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피노누아와 로컬 맥주를 주문했다. 이름을 듣지 못한 피노누아는 늘 마시는 메이오미만큼 맛이 좋았지만, 메이오미보다는 feeling less guilty 한 가벼움이 있었다. 맥주는 평소에 안 마시지만 잔이 넘치도록 담아 온 오스틴 로컬 에일은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깔끔하고 향긋한 풍미가 가득한… 눈이 동그래지는 매우 위험한 맛이었다. 계절별로 온갖 곡류와 자몽, 시트러스의 과일 종류와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유사맥주나 사이다를 음미하는 것은 대륙에서 계절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세계 각국의 농작물로 빚은 음료가 오랜 시간을 숙성해 우리 식탁에 도착하는 계절, 와인도 마찬가지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이렇게나 다양하고 색다른 맛과 풍미를 가진 음료들을 하나씩 맛보다 보면 정말 세상은 넓고 풍요로운 곳이고 내가 모르는 비법들로 가득 찬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맛과 향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만족한 절주를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가을은 유난히 향과 색이 충만한 계절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가을을 향해 가고 혔다.
레스토랑의 백 야드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모터보트 정착장을 겸하는 그 녹조 가득한 개울에는 나뭇잎사귀 같은 손바닥만 한 거북이와 작은 물고기가 가득하다. 그 생명체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작년에 왔을 때는 거북이들이 죄다 손바닥만 했는데 이번엔 정말 몰라보게 커져있었다. 나는 암석 위나 수면에 떠 있는 낙엽 같아 보이는 존재들을 눈으로 찾았는데 손바닥만 한 낙엽은 보이지 않았고 정말 어엿한 거북의 자태을 갖춘 녀석들이 짧은 다리를 파닥파닥이면서 밥을 먹으로 다가와서 깜짝 놀랐다.
붉은 귀 거북이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지인이 있었다. 가끔 소셜미디어에 애기 손바닥만 한 거북이 사진을 포스팅하곤 했는데, 자연 상태에서 그 거북이가 최소한 이만큼은 자랄 수 있다니 반가웠다.
2006년 호주의 한 동물원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죽었는데, 그때 나이 176세였다. 해리엇이라는 거북이는 갈라파고스 제도를 여행하던 찰스 다윈이 연구할 요량으로 가져왔는데, 그해가 1835년이었니 거북이는 170년 넘게 생존한 것이다. 오스틴의 저 거북이들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다음에 왔을 때는 얼마나 더 커져있을지 모르겠지만. 저 거북이들도 우리 동네 시니어들처럼 품위 있게 늙어갔으면 좋겠다.
식사 후에 거북이와 물고기들 밥을 주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자라는 마치 퇴화된 공룡의 후예 같아 보였는데 입이 뾰족해서 그런지 정작 던져주는 걸 잘 받아먹지 못했다. 덩치는 솥뚜껑만 한데 저렇게 못 먹어서야 어떻게 할까 걱정도 되었지만, 좀 억울하게 생긴 붉은 귀 거북이는 입이 커서 납죽 납죽 잘 받아먹었고, 수심이 조금 더 깊은 곳에서 유영하는 메기는 입이 귀에 걸렸다. 메기에 비하면 자라의 입은 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상한 퇴화한 흔적기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메기는 무성하게 난 수염이 레이다를 연상시키는 것도, 입이 귀에 걸린 것도 이상해 보였다. 게다가 첨벙 대기도 엄청 첨벙 대서 친해지기 쉽지 않은 물고기였다. 그리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피라미 때의 놀라운 기동력과 흡입력도 재미있었다. 피라미 때가 오히려 거북이들보다 더 잘 먹었다. 피라미는 왜 때로 몰려다니는가.... 쪽수의 힘..
와글와글 모여든 나름 다양한 수종의 수상생물들을 보고 있으니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에게는 우리가 한때의 작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적인 존재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꽤 멀리 있는 녀석들에게도 빵을 던져 주었는데 제법 적중했다. 멀리 있지만 너도 먹어... 그 녀석들은 자다가 떡 받은 거다.
그리고 하느님이 나처럼 팔힘이 세서, 멀리 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축복과 행운을 좀 던져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느님 팔 힘 좀 기르시죠... 눈도 크게 뜨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