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마케터의 커리어 트랙 넋두리 (*환승이직필수)
25살부터 40살이 된 지금까지, 환승해 온 회사들의 종류도 다양하고 지역도 다양하지만
유일한 공통점은 '마케팅'부서에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 총 7개의 회사, 3개의 지역 (서울, 런던, 상해 / 이력서 기준)
그리고, 세 번째 회사부터는 없어진 회사, 없어지기 직전의 회사, 매각된 회사, 매각설이 나오는 회사 등 이력서에 주석을 반드시 달아야 할 회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권고사직을 당하고, 권고사직을 권유하고, 당하기 전 환승회사를 찾고, 팀원 이직할 회사도 함께 알아봐 주는 눈치게임에 도사가 되어있었다.
이 회사들은 모두 투자 단계만 달랐을 뿐, 스타트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 흠흠
회사의 위기 순간,
권고사직의 1순위 부서 : 마케팅
역으로 투자받으면 제일 먼저 뽑아대는 부서 : 마케팅
나만 운이 나빴던 건가.
근데 난, 이런 불안정한 업무 환경을 알면서도 왜. 스타트업에서. 굳이. 마케팅을 하고 싶은 걸까. (*스타트업 마케터를 꿈꾸거나 종사하고 계신 분들의 지지와 공감이 필요한 영혼인가 봅니다)
마케터가 트렌드에 빨라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일단, 내가 맡은 서비스/제품 자체가 시장에서 유니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해부터 시켜야 한다는 얘기). 그렇다면 내가 마켓에서 그 트렌드를 만들어야 하는 역할이 되고, 끝없는 시행착오, 실패 경험 (삽질)에서 오는 맷집이 급속도로 생긴다. 회사에 돈이 많건, 적건 이 과정은 똑같다. 그러다 보면 마케터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유연한 사고'가 발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빌드업돼있는 회사에서 절대 경험하지 못하는 '생존'마케팅을 하다 보면, 분명 나는 마케터인데 어느 날 보면 간단한 코딩과 디자인 툴을 사용하여 콘텐츠 제작, 서비스나 제품 관련 CX 기획안, 응대 가이드라인 제시까지 하고 있는 슈퍼 능력자가 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와우, 이렇게 효율적으로 일을 배울 수 있다니!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해주기 쉬운 환경 - 개인 취향의 서비스나 산업군의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여행이나 액티비티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어서 관련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다 보면 일과 개인 관심사에 부스터를 달아주게 된다. 성덕이 별 건가. 애석하게도,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없어질 정도로 빠져들진 않을 것이다. 일은 일이니깐. 그러다 보니, 열심히 구르다가 내 서비스/제품 론칭으로 이어지는 경우들도 종종 볼 수 있다. (필자도 언젠가는... 하며 꿈꾸는 희망회로이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에서 마케터 연차별로 일하기 좋은 환경은 어디일까 (투자 단계 / 마케팅 지출 금액 기준 등 구체적으로 나눠보자) 다시 한번 리마인드 하지만, 스타트업 마케터와 권고사직의 관계성은 이미 언급하였으니 적어도 내 생계에 안정성을 스스로 확보하며 일도, 삶도 성장시킬 수 있는 맞춤형 스타트업을 찾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주니어(3년 미만 연차)의 경우, 너무 초기단계 스타트업은 비추한다. 가장 많은 유혹의 손길이 있겠지만 이건 마케터뿐만 아니라 다른 직군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시드 투자(5억 이하)를 받았고 시리즈 A를 준비하고 있는 회사여야 한다. 그런 회사라야 마케팅 예산(연 5-6천만 원 정도)이라는 게 있으며, 대표가 마케팅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주로 정부지원사업 등에서 갑작스럽게 받은 마케팅 지원금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으며 당연히 마케팅 선배는 없을 거고, 스스로 실무(광고 운영/ 콘텐츠 SEO 등)를 익혀가며 진행해야 하는 환경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환경에서 1년 이상 버텨낸다면 웬만한 빌드업 회사 마케터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비즈니스를 보는 눈이 생긴다. 또한 이런 환경의 경우, 마케팅 지원금이 적기 때문에 콘텐츠 기획/owned media 채널 운영 쪽의 일을 더 많이 할 확률이 높아서 콘텐츠 업무 70 : 퍼포먼스 업무 30 정도로 시간이 사용될 것이다. 두루두루 해볼 수 있어서 업무 스킬 성장이 빠른 시기지만, 스스로 성장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번아웃될 가능성 역시 높아서 주기적으로 셀프 토닥토닥을 해줘야 한다.
미들급 (3년 이상-8년 이하)의 경우, 스타트업을 겪으며 본인의 메인 업무 경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좀 더 안정적으로 업무 스케일을 넓혀볼 수 있는 환경이 좋다. 프리시리즈여도 투자 금액이 20억 이상정도 된 회사라면 마케팅에 대한 니즈가 일단 크기 때문에, 이것저것 안정적으로 경험해 보기 좋고, 본인이 팀장으로 갈 확률도 있다. 혹은 팀장이 있는 가능성이 높아서 나의 실무 스킬을 더 뾰족하게 다듬어 줄 수도 있다. 마케팅 비용 역시 월 천만 원 정도는 쓸 테니 이런저런 마케팅 데이터를 쌓고, 연속성 있는 테스트를 해보기에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프리시리즈여도 때에 따라서 추가 투자를 못 받을 확률이 높고, 오히려 급속도로 사람을 뽑아대는 구조라 업무 이외에 사람과의 관계 이슈가 생길 확률 역시 높아지지만, 그렇게 또 직장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이제 스타트업 마케터로 8년 이상 굴렀다면, 본인 성향에 따라 기로에 놓이게 된다. 개인에 따라서 권고퇴사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면 좀 더 안정적인 스타트업(시리즈 A이후의 회사)을 추구할 것이고, 운이 좋게(?) 경험해 보지 않았으나 마케팅 예산 스케일이 큰(보통 "브랜드 마케팅"이라고 말하는 ㅋ)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적 100억 이상의 회사를 추구할 것이다. 혹은 권고퇴사도 경험해 봤지만 나의 업무 권한을 넓히고 싶은, 서비스/사업 기획 쪽으로 더 몰입해보고 싶은 찐 스타트업 DNA를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 더 초기 단계 스타트업으로 갈 것이다.
아무래도 마케터와 권고사직에 대한 연관성에 대한 글을 전개하다 보니, 주관적인 견해가 자꾸 투입되어 꼰대스러운 관점이 되는 듯하지만,,,
돌이켜보았을 때, 본인이 스타트업을 만들려는 목표가 있지 않은 한 최대한 안정적인, 런웨이가 긴 회사를 선택하라고 하고 싶다. 회사의 돈을 쓰는 조직이기 때문에, 잘해도 "돈을 그렇게 쓰는데 당연하지"라는 취급과 못하면 "걔네부터 잘라"라는 천덕꾸러기 신세인 마케터들이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마케터의 디테일한 피땀고민들로 이루어진 빌드업 과정들이 적어도 결과를 볼 수 있는 최소시간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회사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케터에게 가장 중요한 "너 얼마까지 써봤니? (얼마나 많이 책임져봤니)"의 답을 할 기회는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또 "효율성"으로 평가하고 평가받는 거에 익숙한 마케터들이기 때문에 회사가 망할 가능성이 높아도, 단기간에 많은 스킬을 배울 수 있어 마케터로서 효율적 성장을 경험하기 좋은 초기 스타트업도 핏만 맞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초기 스타트업 마케팅을 선택했다면
난 뭐부터 해야 할까.
그 얘기를 한번 써봐야겠다. 초기 스타트업 마케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