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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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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Jul 28. 2021

꿈의 길목

읽고 쓰는 꿈분석 ① 찾을 수 없는, 잃어버린 집에 대한 꿈

꿈은 완전한 심리적(또는 정신적) 현상이며, 바로 어떤 소망의 충족을 뜻한다. 꿈은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는, 깨어 있을 때의 심리적 행위와의 관련 속에 넣을 수 있는 것이므로 아주 복잡한 정신 활동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아, 그렇구나 하고 알았다 싶은 순간, 우리는 또다시 숱한 새로운 문제에 사로잡히게 된다.
<꿈의해석, 127>



이틀간 8시간도 채 못 잔 날을 보상이라도 받듯 일요일엔 거의 15시간을 잘 수 있었다. 새벽 3시에 잠들어서 오후 1시 30분 정도에 일어났고, 오후 5시에 잠 들어 밤 9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어쩌다 보니 수면은 매일매일 수행해야 하는 고난도 과제처럼 어렵고 힘든 미션이 되었다. 어떤 날은 몇 시간이나 잘 수 있을까 불안해 더욱더 잠이 오지 않았고, 어떤 날은 사납고 불안한 꿈이 옷 뒤에 붙어있는 상표처럼 생각에 붙어 떠나지 않았다. 이 날은 만족스럽게 숙면을 취한 날인데도 자고 일어날 때마다 머리가 무겁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새벽에 꿨던 꿈이 오후 낮잠에서도 이어졌고, 월요일 내내 그 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므로 월요일 밤에도 꿈은 이어졌다. 배경과 이미지는 조금씩 달랐지만 내용은 거의 같았다. 돌아가야 할 집을 찾지 못하거나, 내가 가진 집이 더 이상 집의 기능을 못하는 꿈이었다. 깨고 나면 마치 내가 그 시간대를 살다 온 사람처럼 온몸이 뻐근했다. 외롭고 쓸쓸한 기분을 떨치려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꿈은  떨쳐지지 않았다.


첫날의 꿈.

하늘이 다홍색으로 막 물들기 시작한 초저녁 여름이었다. 처음 보는 동네였고, 건물도 시장도 낯설었지만 꿈속의 나는 그곳을 익숙하게 여기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막냇동생과 나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초저녁 즈음의 분위기는 언제나 쓸쓸하다던 동생이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 오른쪽에는 백사장을 끼고 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바다를 구경하기 위해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둘러 걸었다. 그러다 동생이 먼저 자기 집으로 들어갔고, 동생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나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4층까지 있는 다세대 주택 건물에 도착해 2층으로 올라갔는데 분명 외형은 나의 집이었는데 현관문이 우리집이 아니었다. 이상해서 다시 내려와 골목을 아무리 돌아도 집이라고 생각해서 올라가보면 우리 집 현관문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부터 같은 골목을 계속 헤멨다.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 정확히는 현관을 찾지 못해 익숙하다고 생각되는 그 건물과 비슷한 골목을 뱅뱅 돌다가 결국 불안한 마음과 답답한 마음으로 동생을 찾아갔다. 막내동생의 집은 넓은 창에 환한 햇살이 들어오는 2층으로 된 단독주택의 1층에 위치하고 있었고, 중국풍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었다. 같이 장 봤던 내용물들을 식탁에 올려두고 냉장고를 정리하던 동생은 나를 보더니 약간 책망하듯 비웃으며 '집을 왜 못 찾냐고, 바보냐고' 어이없어했다. 나는 거의 울듯한 심정으로 말했다.

"정말 집이 보이지 않아! 내 집이 없어! 내 집 같아서 올라가면 우리 집 현관이 아니야!" 동생은 집을 찾아주겠다며 같이 길로 나섰지만 결국 동네만 계속 헤매다가 꿈에서 깼다.


둘째 날의 꿈.

중간에 주차장을 공유하고 있는 ㄷ자 형태의 오래되고 낡은 연립 아파트의 어두컴컴하고 빛이 들지 않는 지하나 다름없는 공간이 내 집이었다. 첫날 꿈속의 동생네 집에 인테리어 되어있던 붉은 원목의 선반장 같은 인테리어와 비슷한 색상의 큰 천이 거실 벽 한 면에 장식되어 있는 그 집에서 나는 절망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집을 사게 된 나를 스스로 책망하며 도저히 이 집에선 살 수 없어 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갔다. 연립을 둘러싼 중앙 공간에 차들이 서로 마주 보고 주차되어있었고 나는 나가기 위해 제일 마지막에 파킹 되어있는 나의 차를 아주 힘들고 조심스럽게 빼냈다. 그러면서 실제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을 그리워하기까지 했다. 다양한 집을 보러 다녔다. 그중에 몇 집은 꿈에 종종 나왔던 30년 전 인천에서 살았던 다세대 주택과 비슷한 집도 있었고, 경기도 광주에서 살았던 비닐하우스와 비슷한 집도 있었다. 어떤 집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가소유라고 생각했던 지하동굴같은 그 집은 세들어 살던 집이었고 집세가 올라서 강제적으로 셰어를 해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나는 원하지 않는 사람과 집을 셰어 해야 했고 집은 더욱 좁아지고 빛은 전혀 들지 않았으며 누구든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나는 보안이 전혀 되지 않는 그 집에서 절망한 채로 기분나빠 하다가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깼다.


우리의 꿈을 형성하는 근원으로서 두 가지 정신적 힘(흐름 또는 체계)을 가정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힘 가운데 한쪽은 꿈에 의해 표현되는 소망을 형성하며, 다른 한쪽은 이 꿈의 소망에 검열을 가하여 그 표현에 있어 왜곡 현상을 만들어낸다.
<꿈의 해석, 146>


꿈 분석

첫날의 꿈은 깨고 나서도 그 분위기와 느낌, 동생과 나눴던 대화들이 너무 생생해서 한 동안 꿈속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우주 너머 평형 세계가 정말 존재하고, 꿈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생생했고, 외로웠던 기분이 사실 같았다. 그래서 이 꿈은 심리적 현상으로 보는 관점과 사실적 내용을 왜곡된 형태로 반영한 관점의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리적 현상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은 요즈음의 내 기분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이데거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근원적인 고향이 있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근원적인 고향은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근본적인 자신이 속한 세계의 공간이거나 장소일 수 있다. 나를 엄습하고 있는 이 기분은 이러한 고향이 상실된 세계에 살고 있는 자의 것이다. 돌아갈 뿌리가 없다는 것, 근본적으로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상실과 부재로 남겨져 있던 나의 친어머니에 대한 것이고, 자신의 태생적 뿌리를 모른다는 건 영원한 "고향 상실"을 의미한다. 어디에도 돌아갈, 의지할 존재가 없다는 생각이, 모든 건물이 내 집 같았으나 결국 "나의 집"이라고 할만한 입구를 찾지 못한 것으로 반영된 것은 아닐까. 집으로 들어갈 입구가 없다는 건 곧 현실에서 나를 받아줄, 내가 들어가 몸져 뉘일 수 있는 편안한 존재가 없다는 것과 앞으로도 그런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반영된듯 하다.

두 번째 관점은 꿈속의 자아와 꿈을 지켜보는 진짜 자아와의 충돌로 생긴 균열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 골목들과 동네가 익숙한 꿈속의 나와 그 꿈을 바라보는 진짜 나는 그 동네와 골목이 가짜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라고 여기는 꿈속의 나와 충돌한다. 그런데 아직 꿈에서 나는 깨어나지 못했고, 꿈을 꿈이라고 인지하지 못했으므로 꿈속의 나와 꿈을 바라보는 나 사이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무수히 비슷하고 익숙한 그 건물들 사이에서 계속 집이라고 생각했던 건물 2층으로 올라간 건 꿈속의 나, 꿈을 지켜보는 진짜 나는 그 집이 정말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니므로 '나의 집 현관'이라고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는 빌라 2층에서 살고 있으며 예전엔 모양이 비슷비슷한 다세대 주택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꿈속의 나는 건물 2층까지 올라가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지만 익숙한 현관문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한 건 꿈속의 나가 아니라 꿈을 바라보고 있는 진짜 나의 무의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꿈을 꾸면서도 '이게 꿈이구나'라고 인식하는 상태처럼 말이다.  

두 가지 관점의 온도 차이가 꽤 크지만 하나는 심리적 관점에서 하나는 사실적 관점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나를 사로잡는 우울한 기분과 이 침울한 꿈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다는 점에서 언제나 옳다.




둘째날의 꿈은  번째 꿈에서 찾지 못했던 이 생기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집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심리적인 꿈이라기보다는 어린 시절과 지금의 내가 처한 상태를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꿈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 부모 없이 동생들과 셋이서 지낼 때가 있었다. 빛도 잘 들지 않는 반지하방이었는데 어른들의 보호가 없었으므로 동네 애들의 아지트처럼 여겨지곤 했다. 건물 주인집 아들 내미와 친했다가 다퉈서 관계가 틀어진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아이가 더 이상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없도록 모든 문을 잠그고 다시는 우리 집에 놀러 올 수 없어라고 선전 포고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너무 당당하게 우리 집 문을 따고 거실로 들어왔다. 우리 집 현관 열쇠가 자기 집에 언제나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원하면 얼마든지 이 집에 들어올 수 있다고 자랑하는 아이한테서 나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가져본 집에 대한 최초의 두려움이었다. 집이 있어도 어른들의 보호가 없고, 나의 집이 아니라면 타인이 언제든 들어와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사건이 이 꿈에사 집에 대한 안전불감증과 불만으로 드러난 듯 하다. 빛이 안 들고 어두컴컴한 방의 구조는 어린 시절 인천 다세대주택에서 살던 그 방과 닮았다. 그 방보다 훨씬 어두컴컴하고 침울한 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 대한 작은 불만이 반영된 듯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2층에 저렴한 전세 가격으로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해 통풍이 잘되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건물로 막혀있어 햇볕이 들지 않는다는 아주 작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이 단점이 단점 같지도 않았는데 요즈음에는 바깥이 훤히 내다보이는, 햇볕이 잘 드는 창밖 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 시간 날 때마다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집을 알아볼 때마다 금액적인 면에서 안정성의 문제에서 편의성 부분에서 자꾸만 이 집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번 이사로까지 발전하진 못했다. 여기 건물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 건물 사람들을 모두 알고 있다는 면에서 안전하기도 했고, 주차장도 편하다는 장점이 이 집을 떠나려고 할 때마다 발목을 붙잡았던 것이다. 그런 총제적인 불만과 이 집을 떠날 수 없는 갖가지 이유들이 더 안 좋은 집에서 불만스럽게 사는 나의 꿈을 통해 ‘그냥 여기에 있어, 나가봤자 후회할지도 몰라’ 라는 나의 불안을 왜곡된 꿈으로 보여준 것 같다. 덕분에 나는 꿈에서 깨어나 그 집이 꿈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꿈을 기록하고 꿈에 대해서 분석하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그땐 분석도 자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꿈을 소홀히 하고 어떤 때는 꿈으로부터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나의 꿈은 왜곡되긴 해도 언제나 너무 솔직하게 나의 욕망과 소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면 분석할 수 있지만 사실 은폐하고 싶었던 욕망과 마주하는 건 때때로 너무 어려운 일이다. 오늘 꽤 긴 시간 읽고 쓰고 분석하면서 그동안 조금 엉망진창으로 놔뒀던 심리상태가 정리되어감을 느꼈다. 그동안 기록해둔 꿈도 조금씩 다시 들춰보면서 나를 분석해가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꿈분석 #꿈일기 #꿈의해석 #프로이트_꿈의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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